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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서문

참그놈 2022. 5. 30. 20:34

주의력 결핍증이라고 하나요? 뭔가 자꾸 주의가 분산되는 듯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 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 와중에 유튜브에서 고미숙 님 영상을 보고 나니 또 주의가 흩어진 것인지...

 

 

유튜브에서 고미숙 고전 평론가의 영상을 몇 개 봤습니다. 말씀을 참 재밌게 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읽다가 덮은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고미숙 님이 쓰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이라는 책입니다. 왜 읽다가 책을 덮었냐면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작가인 고미숙님의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의 교육이 어느 때부터 한글 위주로 전환했으니까요. 그리고 저 자신이 무지하고 무식해서 한문의 문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의 문체가 왜 문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이신 고미숙 님만 혼자 재밌어서 깔깔거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덮었습니다. 불쾌감을 느낀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고미숙님의 영상을 보다가, 도무지 열하일기가 뭐길래? 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열하일기 원문을 볼 수 있나? 싶어 검색을 했더니 볼 수 있는 곳이 있네요. 하지만 한자로 그득한 문서를 무슨 수로 읽어내겠습니까. 또, 한문의 문체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한문의 문체가 몇 개나 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연찮게 검색을 하다 보게 된 열하일기 서문입니다. 한문을 원문으로 볼 수 없다고 했지요? 검색을 하시면 아래 열하일기 서문의 번역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따로 번역문은 복붙 안하려다 복붙해 놓겠습니다. 괜히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열하일기 서문을 여기다 옮겨놓은 것은 우화가 왜 생기는지 설명을 하고 있어서인데, 저를 포함해서 요즘을 사는 사람들은 그런 구별을 잘 못하지 않나요? 어느게 사실이고 어느 것은 우화인지, 금리가 0.25% 오르면 무슨 변화가 생기는지 - 미묘한 차이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 잘 모르잖아요. ㅡ.,ㅡ 백설공주가 백살공주나 뱃살공주가 되는 그런 이야기는 듣고 그러지만...

 

 

熱河日記 序

 

立言設敎, 通神明之, 故窮事物之則者, 莫尙乎易, 春秋. 易微而春秋顯. 微主談理, 流而爲寓言. 顯主記事, 變而爲外傳. 著書家, 有此二塗.

 

嘗試言之, 易之六十四卦所言物, , , 鹿, , , , , , , , , , , 將謂有其物耶. 無之矣. 其在于人, 笑者, 泣者, 咷者, 歌者, 眇者, 跛者, 臀無膚者, 列其寅者, 將謂有其人耶. 無之矣. 然而揲蓍有卦, 其象立見, 吉凶悔吝, 應若桴鼓者, 何也. 由微而之顯故也. 爲寓言之文者, 因之.

 

春秋二百四十二年之間, 郊禘, 蒐狩, 朝聘, 會盟, 侵伐, 圍入, 悉有其事矣. 然而左, , , , 夾之傳, 各異. 從而說者, 彼攻我守, 至今未已者, 何也. 由顯而入微故也, 爲外傳之文者, 因之.

 

是故, , 蒙莊, 善著書. 莊書中, 帝王賢聖, 當世君相, 處士辯客, 或可補正史. 匠石輪扁, 必有其人. 至若副墨之子, 洛誦之孫, 此是何人. 罔兩河伯, 亦果能言歟. 以爲外傳也. 則眞假相混, 以爲寓言也. 則微顯迭變, 人莫測其端倪, 號爲弔詭, 而其說. 終不可廢者, 善於談理故也. 可謂著書家之雄也.

 

今夫燕巖氏之熱河日記, 吾未知其爲何書也. 涉遼野, 入渝關, 倘徉乎金臺之墟, 由密雲, 出古北口, 縱觀乎灤水之陽, 白檀之北. 則眞有其人矣, 四夷, 殊形詭服, 呑刀呑火, 黃禪, 短人, 雖若可怪, 而未必罔兩河伯也. 珍禽, 奇獸, 佳花, 異樹, 亦無不曲寫情態. 而何嘗言, 其背千里, 其壽八千歲耶.

 

始之莊生之爲外傳, 有眞有假, 燕巖氏之爲外傳, 有眞而無假. 其所以兼乎寓言, 而歸乎談理則同. 比之覇者, 晉譎而齊正也. 又其所謂談理者, 豈空談怳惚而已耶. 風謠習尙, 有關治忽, 城郭宮室, 耕牧陶冶. 一切利用厚生之道, 皆左其中, 始不悖於立言設敎之旨矣.

 

 

아래는 위 열하일기 서문의 번역입니다. 인터넷에서 파왔는데, 어디에서 퍼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래 번역문 외에 다른 번역문도 있지만 그 중에 하나만 붙여넣기 했습니다.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되 하늘과 땅의 신령과 통하고 사물의 법칙을 꿰뚫은 것으로서 《역경》과 《춘추》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역경》은 미묘하고 《춘추》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미묘한 글은 주로 이치를 말하여 주며 빗대어 교훈을 주는 우언(寓言)으로 흐른다. 드러내는 글은 주로 사건을 기록하며 정사 이외에 따로 기록한 외전(外傳)으로 변한다. 글을 쓰는 사람 앞에는 이 두 가지 길이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역경》의 육십사괘에 언급된 사물로 용, , 사슴, 돼지, , , , 여우, , , 독수리, 거북이, 붕어 따위가 있지만 그 사물이 모두 (실제로)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진 못할 것이다. 또 거기에는 인간도 웃는 자, 우는 자, 부르짖는 자, 노래 부르는 자, 눈먼 자, 발저는 자, 엉덩이 살이 없는 자, 척추가 벌어진 자들이 적혀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실제로) 있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초를 뽑아서 괘를 벌이면, 그것의 형상이 곧 나타나고 길흉회린이 북채로 북을 치듯 서로 맞으니 무슨 까닭일까. 미묘한 글을 바탕으로 그것의 (진리를) 드러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우언을 쓰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춘추》242년 사이의 기록에 적힌 온갖 제사와 수렵, 조회, 회합, 정벌, 위협과 침입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좌구명, 공양고, 곡량적, 추덕보, 협씨가 주석을 단 《춘추전》은 각각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설을 쫓아 저쪽이 공격하면 나는 (다른 설로) 수비하니 이런 논박이 지금까지 끝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실을 드러낸 글을 바탕으로 그것의 미묘함을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외전을 쓰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러므로 장자는 훌륭한 저서가이다. 장자의 저서에 있는 제왕과 성현, 임금과 정승, 처사(處士)와 변객(辯客)에 대한 일도, 더러는 정사에서 빠뜨린 일을 보충할 수 있다. 도끼를 잘 썼다는 장석이나 바퀴를 만드는 장인이었다는 윤편도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말을 전하였다고만 언급되는 부묵의 아들이나 낙송의 손자와 같은 인물은 어떠한가. 자신의 그림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물귀신 망량이나 강의 신 하백은 원래 말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외전이 되는 것이다. , 진실과 거짓이 서로 섞여 있어 우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묘함과 드러남이 서로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디까지 미묘한 것이고 어디부터 드러낸 것인지) 그 처음과 끝을 가늠할 수 없어 그 이야기들을 그저 궤변일 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끝내 폐기할 수 없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훌륭한 이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저서가 중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연암씨의 《열하일기》에 대해서는 나는 어떤 글인 지 알지 못하겠다. 요동 들판을 건너 산해관에 들어가 황금대 옛 터를 서성이고, 밀운성에서 고북구를 나서 난수 강가와 백단의 북녘을 마음껏 구경하였다. 즉 진실로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적은) 사방의 오랑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 칼을 머금고 불을 마시는 사람, 황교의 선사, 난쟁이 등의 사람들은 괴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망량이나 하백과 같이 허황된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진귀한 새, 기이한 짐승, 아름다운 꽃, 이상한 나무들도 까닭 없이 그 특징과 형태를 묘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등마루 길이가 천 리라느니, 나이가 8천 세라느니 하였을까?

 

장자가 지은 외전에서 비롯된 것은 참도 있고 거짓도 있지만, 연암씨가 지은 외전은 참은 있으나 거짓이 없다. 이 둘을 다 같이 우언이라 부르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같기 때문이다. 둘을 패자에 비유하면 꾀 많은 진 문공과 정직한 제 환공이라 하겠다. 또한 그 이야기로 이치를 드러낸다는 것도 그저 흐릿하게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 지방에서 전하는 노래며 그 지방의 관습은 정치와 관련이 있고, 성곽과 궁실은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생업을 발달시킨다. 모든 이용후생의 길은 이제부터 볼 왼쪽에 있으니 이를 후세에 남길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