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유사 9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오가야 - 11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오가야 부분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三國史 :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BC57년에 건국되었다고 하고, 가야는 AD42년에 건국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왕검조선으로 시작하여 위만조선 등 시간적 순서대로 적고 있는 것 같은데, 오가야(五加耶)가 먼저 나오는 것은 의외입니다. 북부여나 동부여보다도 먼저 나옵니다. 다음에 나오는 북부여는 BC59년이라고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오가야(五加耶)가 먼저 건국되어 있었다는 뜻일까요? 紀異 第一 五加耶 按駕洛記賛云, 垂一紫纓, 下六圎卵, 五歸各邑, 一在兹城, 則一爲首露王, 餘五各爲五伽耶之主, 金官不入五數當矣, 而本朝史畧, 並數金官, 而濫記昌寕誤. 阿羅(耶也)伽耶(今咸安), 古寧伽耶(今咸寧), 大伽耶(今高靈), 星山伽耶(..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이서국 - 10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이서국 부분입니다. 아래 부분이 紀異 편에 실려있는 것이 조금 이해가 어렵네요. 하늘에서 내려왔다거나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ㅡㅡ 紀異 第一 伊西國 弩禮王十四年, 伊西國人來攻金城, 按雲門寺古傳諸寺納田記云, 貞觀六年壬辰(632), 伊西郡今郚村零味寺納田, 則今郚村今淸道地, 卽淸道郡, 古伊西郡. 삼국사 유리왕 - 노례왕은 신라 3대 유리왕 - 14년(AD37)조에는 해당 기사가 없습니다. 김부식은 뺐고 일연 스님은 포함시킨 이유가 뭘까요? 운문사는 경북 청도에 있다네요. 정관 6년이 632년인데 600여년 전에는 나라였다는 뜻일까요? 신라본기 혁거세 19년조 기사를 보면 진한이 나라를 들고 와서 항복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유리왕은 남해 차차웅보다나 나중 임..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대방 - 북대방, 남대방 - 7, 8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대방 - 북대방 남대방 부분입니다. 저는 한사군(漢四郡)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요즘은 해(海) 바다를 뜻하는 글자로 고착화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중국을 해내(海內)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帶方之南海水千里 라고 적혀 있는데, 그런 지역은 어딘지... 紀異 第一 北帶方 北帶方, 本竹覃城, 新羅弩禮王四年, 帶方人與樂浪人投于羅, 此皆前漢所置二郡名, 其後僭稱國, 今來降 紀異 第一 南帶方 曹魏時, 始置南帶方郡, 今南原府. 故云, 帶方之南海水千里, 曰澣海, 後漢建安中, 以馬韓南荒地爲帶方郡, 倭韓遂屬, 是也. 新羅弩禮王四年 노례왕(弩禮王) 신라 3대 유리왕입니다. 알 수 없는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三國史)에는 노례왕이 아니라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이라고 썼는데, 그 보다 15..

삼국유사 원문 1권 기이 제 1 : 칠십이국 - 고조선은 72개국의 종주국이었다?

삼국유사 원문 1권 기이 제 1 : 칠십이국 부분입니다. 그냥 혼자 읽어보며 뇌피셜 그리고 있습니다. 卷一 紀異 七十二國 通典云, 朝鮮之遺民, 分爲七十餘國, 皆地方百里. 後漢書云, 西漢以朝鮮舊地, 初置爲四郡, 後置二府, 法令漸煩, 分爲七十八國, 各萬戶.(馬韓在西, 有五十四小邑, 皆稱國, 辰韓在東, 有十二小邑, 稱國, 卞韓在南, 有十二小邑, 各稱國) 어떤 분들은 한민족(韓民族)을 비하하기 위해 역사를 가장 심하게 왜곡한 것이 수나라나 당나라였다고 비판하기도 하던데, 위 원문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朝鮮之遺民, 分爲七十餘國, 皆地方百里 가 아닐까 싶네요. 아시다시피 고수전쟁(고구려 VS 중국 수나라)과 고당(고구려 VS 당나라) 전쟁이 있었는데, 수나라의 경우 100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이부(二府) - 4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이부(二府) 부분입니다. 아래 기록은 일단 신빙성이 없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전하는 역사서에 이부(二府)를 설치했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紀異 第一 二府 前漢書, 昭帝始元五年己亥, 置二外府, 謂朝鮮舊地平那及玄菟郡等, 爲平州都督府, 臨屯樂浪等兩郡之地, 置東部都尉府. 私曰, 朝鮮傳則眞番玄菟臨屯樂浪等四, 今有平那無眞番, 盖一地二名也. 아시다시피 중국 한(漢)나라는 서한 - 왕망의 신 - 동한으로 이어집니다. 반고가 서한의 역사를 기록하여 한서(漢書)라는 책을 썼는데, 범엽이 나중에 동한의 역사까지 포함하는 후한서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고가 쓴 한서(漢書)를 전한서(前漢書)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제(昭帝)는 한나라의 8번재 왕이..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마한 - 3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마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서민입니다. 역사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삼국유사를 원문으로 보고 싶어서 보고 있는 중인데, 원운에 四夷, 九夷, 九韓, 穢貊 등에 대해서 나옵니다. 모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저는 그 범위가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현재의 중국 동부 연안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卷一 紀異 馬韓 魏志云, 魏滿擊朝鮮, 朝鮮王準率宮人左右, 越海而南至韓地, 開國號馬韓. 甄萱上太祖書云, 昔馬韓先起, 赫世勃興, 於是百濟開國於金馬山. 崔致遠云, 馬韓, 麗也, 辰韓, 羅也. (據本紀, 則羅先起甲子, 麗後起甲申, 而此云者, 以王準言之耳. 以此知東明之起, 已竝馬韓而因之矣. 故稱麗爲馬韓, 今人或認金馬山, 以馬韓爲百濟者, 盖誤濫也. 麗地自有邑山, 故名馬韓..

삼국유사 원문 기이 1 권 : 위만조선 - 2

삼국유사 원문 기이 1 권 : 위만조선 부분입니다. 사기 조선열전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사기 열전에서 고조선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장수들이 참수되거나 속전을 내고 서민이 되었다거나, 또는 고조선의 관리들이 홰청후나 적저후 등에 봉해졌다는 내용 등은 없습니다. 卷一 紀異 魏滿朝鮮 前漢朝鮮傳云, 自始燕時, 常略得眞番朝鮮(師古曰戰國時因是略得此地也), 爲置吏築障, 秦滅燕屬遼東外徼, 漢興, 爲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師古曰, 浿在樂浪郡)屬燕. 燕王盧綰反入匈奴, 燕人魏滿亡命, 聚黨千餘人, 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 王之, 都王儉(李曰, 地名, 臣瓚曰, 王儉城在樂浪郡浿水之東), 以兵威, 侵降其旁小邑, 眞番臨屯, 皆來服屬, 方數千里, 傳子至孫右渠(師古曰, 孫名..

삼국유사 원문 기이 1권 : 고조선(왕검조선) - 1

삼국유사 원문 중 기이 제 1 : 고조선(왕검조선)부분입니다. 卷一 紀異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白州地. 或云: 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堯}同時. 古記云 : 昔有桓國(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 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 神遣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삼국유사 원문 기이 제 1, 서문 : 복희 신농을 우리 역사로...?

삼국사기 원문을 대략 한 번 훓어보고 삼국유사 역시 일단 훓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펴 봤더니, 일연 스님이 복희나 신농을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원문은 삼국유사 첫부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해석은 생략) 紀異 第一 叙曰, 大抵古之聖人, 方其禮樂興邦, 仁義設敎, 則怪力亂神, 在所不語. 然而帝王之將興也, 膺符命, 受圖籙, 必有以異於人者, 然後能乘大變, 握大器, 成大業也. 故河出圖, 洛出書, 而聖人作. 以至虹繞神母而誕羲, 龍感女登而生炎, 皇娥遊窮桑之野, 有神童自稱白帝子, 交通而生少昊, 簡狄呑卵而生契, 姜嫄履跡而生弃, 胎孕十四月而生堯, 龍交大澤而生沛公. 自此而降, 豈可殫記? 然則三國之始祖, 皆發乎神異, 何足怪哉! 此紀異之所以漸諸篇也, 意在斯焉. 삼국유사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