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사(삼국사기) 55

신라가 한반도로 이주해온 원인 - 자연재해

역사 관련 내용들을 검색하거나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면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황당하게 생각했지만, 그리하여 의도적으로 저는 그런 책들을 안보거나 외면하거나 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 관련 책 몇 권을 읽어보기도 하고 역사 관련 영상들을 보기도 하면서 대륙 삼국설이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 자신이 역사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었다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하게 또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데, 오늘 본 영상에서 신라가 양자강 유역 있다가 한반도로 이주한 까닭을 추론하는 것이 있네요. 아래 영상에서 신라의 초기 일식기록은 관측한 곳이 양자강 유역이었다가 서기 200년무렵무터 500여년간 일식을 기록하지 않다가 다시 기록하게 되는데, 후기의 일식기록은..

고려인들은 미래를 볼 수 있었고 지구의 공전궤도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역사서들 중에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가 있습니다. 그 사서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기록이 적혀있는데, 각국이 모두 일식이나 혜성 등의 천문현상을 각각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문(天文)이 황제의 고유권한이랍시고 세종대왕 당시의 천문연구를 주제로 만든 영화 천문(天問)에서 보듯, 황제가 독점하는 고유권한을 어쩌자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기록했을까요? 고대 별자리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거나 하는 그런 내용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단군조선 때부터도 천문은 연구되고 있었고 삼한 또는 삼조선으로 운영되던 고대의 조선 역시 천문을 각각 기록했다는 사실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까지 이어졌다는 말 아닐까요? 그런데, 삼국사(삼국사기)의 일식 기록 등이 중국 역사서에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

신라의 일식 관측기록 - 중국 기록을 베낀게 아니라네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일식이나 천문현상을 기록한 내용이 나옵니다. 삼국이 모두 일식기록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는 것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내용입니다. 천문(天文)은 천자의 독자 영역이라 오직 천자만이 기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일식을 포함한 천문현상을 각각 기록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기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에도 동일한 일식기록이 있어서 베껴왔다는 주장을 하면서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현재의 풍토라고 해야할까? 뭐 그렇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IyT3GPfoM 위 영상은 신라본기의 일식기록을 중국에서 베꼐왔을 가능성을 확률에 근거해서 추론하는 내용입니다..

진시황의 치작(齒爵)과 신라의 이사금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쓰신 책 중에 "우리는 너무 몰랐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책의 초반부에 박소동 이라는 분과의 치작(齒爵)에 관한 일화가 나옵니다. 사실은 치작이라는 말을 알지도 못하긴 했지만, 어쩌다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에 이빨의 갯수로 왕을 정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치작(齒爵)이란 나이에 따라 벼슬을 준다는 뜻입니다. 진시황이 중국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 주나라는 봉건제도였고, 주나라 왕의 성은 희(姬)였는데, 자신들의 형제나 친척에게 봉지를 나누어주거나 공신들에게 봉지를 나누어주거나 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이 봉건제를 혁파하고 군현제를 도입하면서 치작(齒爵), 즉 나이에 따라 벼슬을 준 것인데, 주나라 시대의 봉건제도에 비해 신분, 계급, 형식이나 절차 뭐 그런 거..

삼국사기 일식기록 비판 ?

삼국사기 일식기록에 대한 비판 역사를 바로 알고 싶지 국뽕에 빠지고 싶지 않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일식기록 중 65개가 중국 사서에 있다고 한다. 2 개는 실제 일식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고구려의 어느 일식 기록은 아시아에서 관축될 수 없다고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일식기록을 어디서 보고 참고해서 썼는지 아니면 아래 내용처럼 추산했는지 모르기는 한데, 뭣도 모르는 서민이 봤을 때는 삼국사기 각국에 일식기록이 전혀있다는 것이다. 3나라 모두 일식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고 본다. 천문은 천자의 것이기 때문에 황제만이 독점한다. 그런데 고구려 백제 신라 3나라가 모두 각각 일식을 기록하고 있고, 신라는 혁거세 4년, 백제는 온조 6년, 즉 비교적 왕조 초기에 천문을 기록하는데, 천문..

강수는 월성 석씨 18세손이다

가야와 관련한 논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니 하는 말이 나오지도 않지만, 가야사 특별전을 개최하거나 가야유적 세계 문화유산 등재추진 등은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진행한다거나 하는 내용의 비판 영상을 몇몇 보았는데, 일본은 임나가 가야다 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사학계도 일본과 비슷한 논리를 주장하고 있답니다. 아래 내용이 그런 주장의 근거를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저는 역사에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1coUjXFxV1I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에 강수열전(强首列傳)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이 강수열전 초반부의 내용인데 강수의 아버지는 석체나마라고 되어 있는데 昔諦 라는 이름(姓名)이 월성 석씨 족보에 나온답..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일식을 각각 기록했다

삼국사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에는 각각 일식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일식에 대한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문(天文) 관찰 기록이 나라별로 각각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천문 관찰 기록을 독자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천문(天問)을 보시면 세종대왕께서 장영실 등 여러 신하들과 측우기, 자격루 외에도 각종 천문 관측 기구를 제작하고 관찰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결국 명나라의 간섭으로 장영실은 장 80대를 맞고 제작한 천문기구를 모두 파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천문(天文)은 황제의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명나라 황제만이 천문을 관찰하고 관측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천문을 독자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반역이었지요. 요즘은 달력이 흔하지만 옛날에는 달력도 중국에서 ..

삼국사기 권49 열전 9 원문 : 연개소문 외. (고대 중국[中國]은 China가 아니다 )

삼국사기 권49 열전 9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연개소문 열전 부분인데, 스크린샷에서 요동본개중국군현(遼東本皆中國郡縣) 이라고 되어 있는 것 보이시지요? 여러분 중국(中國)이 어딘지 아세요? 중국(中國)을 요즘 말하는 China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고대의 중국(中國)은 2021년 현재처럼 만주와 내몽골, 신장위구르, 티벳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이 아니라 낙양 일대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황하가 흐르다 낙양 일대에 거대한 평야를 이룹니다. 그 평야의 넓이는 한반도보다 크다고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중국은 농경을 주로 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리하여 유목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도 쌓고 그랬지요. 요동본개중국군현(한자생략) 에서 중국(中國)을 낙양 ..

삼국사기 권48 열전 8 원문 : 백결선생, 물계자, 효녀 지은, 도미부인 등

삼국사기 권48 열전 8 원문 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삼국사기 열전 곳곳에 고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래에도 실혜라는 인물의 열전을 지으면서 굴원과 이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신라본기 1권에 신라는 조선의 유민이라고 했는데, 혹시나 신라를 구성하던 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래 이야기는 설씨녀에 관한 내용입니다. 모질(耄耋)이라고 해서 연세 많은 분들을 칭하는 글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모(耄)가 아마 90세를 뜻하는 글자로 알고 있는데, 제가 보는 책에는 글자 때문인지 설씨녀의 아버지 나이를 90으로 해석을 했네요. 하지만 그렇게 치면 딸의 나이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막내딸이라..

삼국사기 권47 열전 7 원문 : 계백, 관창 등

삼국사기 권47 열전 7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눌최라는 인물의 열전인데, 눌최에게 활 잘 쏘는 종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네요. 활을 잘 쏘았다니 활명수라던지 편의상 이름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면...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활명수라는 말은 소화제 이름이기도 한데, 웃자는 뜻은 아닙니다. 쌀 4천석, 조 2만 2천 5백석 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쌀보다 조가 훨씬 더 많은 것은 벼농사를 지은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아서 생산력이 조에 미치지 못하였거나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소로리 볍씨라고 최초의 벼농사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그런 내용은 책에서 봤는데, 아무래도 벼농사가 주된 산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백제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