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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대부분은 왕후장상의 후예들이다

참그놈 2021. 4. 29. 14:54

유튜브 등에서 역사 관련 영상들을 보다 보면 한국인 대부분은 노예(노비)의 후손이다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노비라고 하지만, 노비라는 말은 노예(Slave)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사거나 팔 수도 있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 대접이나 취급은 못받지요? 고대 로마나 미국의 노예제 사회를 드라마화 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 노예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쨌거나, 한국인의 대부분은 조상이 노비라는 영상이 한 두개만 업로드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족보 등으로 유튜브에서 검색을 하면 여러 개의 영상 썸네일을 볼 수 있습니다. 해서 따로 영상 링크는 연결하지 않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면 됩니다.

 

어떤 영상이던지, 한국인 대부분의 조상이 노비였다고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 내용이 그럴 듯합니다. 족보를 사서 양반으로 변신했다거나 하는... 실제 사실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지나가는 한국인 아무나를 붙잡고 너는 노비(노예)의 후손이다 라고 한다면, 또는, 네 조상이 노비(노예)였다면서? 라고 한다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까요? 그럴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해당 영상들을 보시면 성씨도 없이 살던 노비들이 일본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근본도 없던 것들이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근대화시켰기 때문에,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다 노비였다는 말이 됩니다. 일본 왕가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몇몇 한국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노비였다는 말이 됩니다. 웬지, 몹시 일본스러운 주장을 강조하는 내용들 같은 그런 느낌도 듭니다.

 

한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이라고 합니다. 반만년이면 5000년이지요?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명멸한 나라도 많습니다. 부여, 고구려, 대진(발해),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조선 등등 한 두 나라가 아닙니다. 그 외에도 고대사로 올라가면, 낙랑국, 옥저, 동예 등등이 더 있었습니다. 옥저도 동옥저 북옥저가 있었고 부여도 동부여 북부여 등 갈래가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고대사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한국인들은 고대사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고대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저 역시도 고대사는 알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왕조시대였으므로 나라에는 왕이 있었고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거치면서 왕이나 귀족이 천민이 되기도 하고, 천민이 큰 권력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고려 무인정권 시기의 이의민이 떠오르네요. 소금장수였지만 무인시대를 대표하는 장수로 기록되었으니까요.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도 여러 가지 사화나 옥사가 있어서 양반이 천민이 되기도 하고 천민이 관직에 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화나 옥사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관노에서 면천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 장영실이지요. 관노로 있던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만나 각종 과학기구를 개발한 공으로 노비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관직을 받았으니까요. 반대로, 공주나 귀족이었다가 천민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정비 소헌왕후의 친정 어머니가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반만년 이라는 한민족의 역사에서 어느 한 시기에 노비의 숫자가 늘었고, 또 어떤 상황을 계기로 노비들이 성씨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그 조상이 노비였다는 주장은 어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만년 동안의 개별적인 혼인관계를 모두 따져서 확인할 수 있다면, 사실 한국인 대부분은 왕족이나 귀족의 후예들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것입니다. 대부분이 왕후장상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영조 임금님의 모친이 무수리였다는 것 때문에 영조 임금님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후대의 평가가 있는데, 그럼에도 탕평책으로 기록되는 조선의 임금이셨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성씨는 250여개 정도입니다. 반만년 역사에서 그 조상이 높은 자리 안 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 시절을 잘못 만났던지 해서, 누군가의 조상은 왕이나 귀족에서 천민이 되었을 수도 있고, 또, 천민이었다가 귀족이 되거나 한 경우도 숱하게 있을 것입니다. 무수리에게서 태어났다고 하여 지존(至尊)의 자리에 오른 영조 임금님을 우리는 천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법이었던 종모법에 따르면 군호를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잖아요. - 종모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 그렇게 시대를 거슬러 충역이나 변란, 사화, 옥사, 재산 관계등을 모두 소급하여 확인할 수 있다면, 한국에는 모두 귀한 핏줄만 이어진 것이 됩니다.

 

신분제도가 정형화 되어 있을 때에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태어나지만, 현재는 민주주의 시대이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에는 원시공산제 사회였을 것으로 많은 책에서 그렇게 설명을 합니다. 왕도 귀족도 노비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왕국인 나라도 있지요? 가장 가까운 일본이 아직 왕국입니다. 자기들 왕을 일본인들은 천황이라고 부른다지만, 왕이 아직 있으므로 귀족들도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통상 말하는 공작, 후작 같은 이름들을 아실 것입니다. 일본이 일본의 역사를 2600년 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외침을 거의 받지 않았고 왕조가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에 신분제도에 대해서는 고착화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 아직도 천민이 있어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시는지요? 부락민이라고 하던가? 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불가촉 천민이 아직 일본에는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하면서 불가촉 천민이라니...

 

혹시 웹서핑 중에 이 포스트를 보시는 분이 계신다면, 유튜브나 또는 기타 역사 채널에서 한국인 대부분이 원래 노비였다 라거나, 또는 한국인 대부분의 조상이 노비였다 라거나 하는 내용을 만나게 되더라도 너무 불쾌해 하지 마시고 차분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분제도는 사람이 이 땅에 살게 된 이후로 몇 만년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고작 몇 천년간 유지되었던 것이고,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라서 신분상의 차별이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상기하시면 되겠습니다.

 

한편, 옛날 신분제도 상에서 귀족과 천민의 구별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을 한 번 따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귀족은 비단 옷을 입고 천민은 무명 옷을 입었다거나 하는 그런 구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귀족과 천민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문자입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귀족과 천민을 가르던 핵심 기준이었습니다. 또, 천민들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기도 했지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셨지만, 당시에는 종이라는 것 자체가 비싸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한글이 얼마나 일상화 되었는지 사실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젠 인쇄술도 발달하고 교육열도 높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문맹률 0%에 제일 가까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문맹률이 제법 된다고 합니다. 프랑스나 미국 등에도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제법 된다고 합니다. 문맹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근거 한 가지만으로도 한국인의 조상 대부분이 노비였다는 주장은 한 순간, 어느 한 시기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몇 대 위 조상이 노비였더라도, 그 노비의 조상은 왕이었을 수도 있잖아요.

 

누구나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누구나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것과,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대한민국에 더 이상 노비는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대부분의 한국인은 귀족이 되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귀족과 노비 사이에는 평민(양인)이라는 계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평민(양인) 외에 중인도 있었습니다. 평민이나 중인은 귀족이 아니었지만 노비와 달리 형편이 되면 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상업 분야에서 활동하여 거대한 부를 형성하기도 하였지요. 임상옥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보면, 대방, 도방 등의 명칭이 나오는데 모두들 중인 갓을 쓰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귀족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을 귀족이라고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는데, 귀족은 경전을 익혔고 무예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읽었지요. 경전과 역사는 귀족(양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역사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이 이해가 어렵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시기에 아무나 역사서를 소지하거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귀족들만 역사서를 읽었습니다. 흔히들, 우리가 역사라고 할 때, 과거에 있었던 어떤 기억할만한 사건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시기에 역사서는 법령집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덕일,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348~349쪽을 읽어 보시면 나옵니다.

 


홍봉한은 처음 나경언이 고변했을 때 천재지변이라도 난 듯 영조에게 청대를 요청해 그 사실을 알렸으며, 사도세자를 보호하려 한 조제호와 조카 조유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조재호 사건은 마땅히 천의소감처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주 벽사 사건  이후 만들었던 '천의소감'처럼, 사도세자를 죽인 것이 의리에 합당한 것이며 조재호는 사도세자를 보호하려 한 역적이라는 내용의 책을 만들어 국시로 삼음으로써 훗날 뒤집어지는 일이 없게 하자는 주장이었다.

 

홍봉한은 '천의소감'이 경종 당시 노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소론을 역적으로 몬 것처럼 세자를 보호하려 한 조재호를 역적으로 몰고 자신을 충신으로 규정해야 훗날 자신이 화를 입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조는 이 청을 받아들여 의리의 글이라는 '수의편(한자생략)'을 만들어 반포했다. (이하 생략, 한 페이지를 다 옮기려니 ㅠㅠ)


많은 역사책에 거울 감(鑑)자가 들어간 제목이 많습니다. 자치통감, 동국통감 등등. 위 내용의 밑줄 부분을 보시면 역사책이라는 것이 단지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법령집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는 것을 간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웬만해서는 역사 관련 서적을 잘 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귀족이 될 수 있는데, 평민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과 같습니다. 뭐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무협만화나 보고 눈치 봐가며 야동이나 흘깃거리고 뭐 그랬지요. ㅡ,.ㅡ  평민의 삶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본이 대일항쟁기에 역사왜곡을 했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 역사가 사실은 조선총독부에서 100여년 전에 지은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김상태,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이희진, 거짓과 오만의 역사 등을 읽어보시면 현재의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포기하지 않았고 한반도 침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는 한국인 대부분을 노비로 삼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은 아직 왕국이니까. 한국인 대부분을 노비로 삼기 위해서 친일 인사도 필요하겠지요? 100여년 전에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람들처럼. 이는 토착왜구 라는 말이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담론(談論)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뭐 사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이라는 뜻인데,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말 같은 것은 아닐 것이고, 아직 여론이 되지 못한 말들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사람들에게 화제는 되고 있지만 여론은 아직 아닌... 우리 사회의 담론은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소위 말하는 방송과 언론 아닐까요? 5000년이라는 장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현재 한국인 대부분의 조상은 노비였던 시기가 있었다 라고 방송하는 것과 한국인 대부분의 조상은 노비였다 라고 방송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하긴, 대한민국 학교에서 반만년의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을 뿐더러, 고등학교 졸업하면 뭐 사실 역사 관련 서적은 거의 안보잖아요.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비판이 담긴 책을 읽고, 고등학교 졸업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일개 동네 막노동꾼 주제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새로 구입했습니다.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그 문장 하나 추가된 것 외에 전후 문맥은 고조선을 설명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런 문장조차 없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배운 것이 아니라 한사군으로 시작하는 2000년의 역사만, 그것도 왜곡된 내용을 배운 것이었지요.

 

민주주의가 발달한 요즘에 와서 귀족타령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까지 역사왜곡을 계속하고 있고,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나기를 바라는 왕조국가 이웃나라와 한반도를 중국화하려는 공산주의 이웃나라가 있으므로, 모두가 평민인 세상이지만, 역사 관련 서적을 읽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왕조국가이므로 아직 노비가 일본에는 있겠지요? 부락민 같은 불가촉 천민도 있는데... 귀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나라의 노비로 전락하지는 말아야지요. 누가 이 따위 담론을 만들어 내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불가촉천민이 있는 자칭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세계적인 민도의 이웃 왕조국가인지...

 

귀족으로 살다가 즉, 문자를 익히고 무예와 경전을 익히다가 노비가 되면 노동에만 전념해야 하고 사고 파는 대상이 되기도 하며 글이나 무예를 익히지 못합니다. 그렇게 몇 세대를 거치면 까막눈이 되고 이름도 개똥이 소똥이 삼월이 사월이가 되지요. 한국인 대부분의 조상이 노비였다? 망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망발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후손들입니다.

경주 김씨 안동 권씨 - 신라 왕족의 후손들입니다.

밀양 박씨 및 전국의 박씨 - 박혁거세의 후손들입니다.

왕씨 전씨 옥씨 - 왕건의 후손들입니다.

배씨 손씨 안씨 등 6성 - 신라 육촌의 성씨.

이하 생략....

 

 

대한민국에 대략 250여 성씨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그 성씨들을 다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만 따지면 한국인들의 선조가 다 노비였다는 말은 저는 그냥 개소리라고 하겠습니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간혹가다 개소리를 꼭 무슨 학술이나 학문적 연구결과인 것처럼 진지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런말 함부로 듣지 마시고 우리 역사가 반만년 이라는 것과 적지 않은 나라들이 명멸했다는 것을 상기하시고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조선시대 초기에 양반(귀족)의 비율이 10% 정도였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는데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 조선왕조만 있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