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환이라는 역사학자께서 식민사학이라는 말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면서 말씀하시는 영상이 있네요. 이덕일 역사TV나 매림 역사TV 등에서 주로 식민사학이라는 말로 비판하시지요? 그 외에도 식민사학 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고려의 강역이 축소되었다거나 조선왕조의 강역도 축소되었다거나 하면서 비판하는 분들 역시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예 연구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래 임용환이라는 분의 영상을 보시면 일본이 서구의 근대적 역사연구방법론을 불완전하게 도입하여 동양적 전통과 결합하고 등등 하시면서 현재의 역사학계를 위한 변호? 변명? 하시는 듯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X6Do192Kns&list=TLPQMTUxMDIwMjGXZiYFX56VCQ&index=8
저는 역사학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사는 동네에서 막노동이나 하고 사는 무식쟁이지요. 식민사학이라는 용어에 매몰되지 말라는, 아마 박사님이시겠지요?, 임용환 박사님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뭣하러 식민사학 따위를 입에 올리겠습니까. 또, 영상에도 나오는데 고려의 강역이 함흥 아래였을 수도 있고 두만강을 넘어 공험진, 더 나아가 1400리 밖으로까지 진출했다는 설도 있다면서 설명도 해 주시네요. 그러게 옛날 우리 선조들의 강역이 두만강을 넘어 1000리를 갔던지 10000리를 갔던지 아니면 한반도 밖으로 전혀 진출하지 못했는지 뭐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사실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식민사학이라는 말로 비판을 하는 까닭은 역사를 사실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저는 역사학도도 아니고 역사책도 거의 안보고 살다가 50이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학이라는 분야는 문헌을 위주로 연구하는 방법이 있고 유물을 위주로 연구하는 방법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이라며 비판하는 분들이 인용하는 문헌들 중에 중국 문헌이 아니라 고려사에도 고려의 강역은 철령과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 라고 되어 있다는데 왜 그런 내용은 무시되었고, 또 왜 100여년 전 일본인 학자의 학설을 기초로 교과서가 집필이 되었느냐고 여쭤보고 싶네요. 고려의 강역을 함흥 어느 부분으로 지정한 것은 일본인 학자라고 설명하신 분은 박사님이십니다. 하긴 요즘은 국사교과서에는 고려의 강역에 대해서 지도에 전부 표시를 한다고 합니다. 안변(원산?), 공험진 등을 다 표시한다고 하더군요. 지도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표시하지 않겠습니다.
50년대 60년대에는 연구자도 많지 않았다는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625로 폐허가 되었었으니까요. 세계 최빈국이기도 했고. 그런 시절에 30년이 넘도록 일제의 강압통치 속에서 일본이 가르치는 대로 배웠던 시절도 있었고. 또 잘은 모르지만 왕조시대의 역사서는 원래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하는 것이었지요. 역사서 편찬을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통성을 알린다거나 하는 목적으로 편찬하여 해외사절 즉 외교관 들에게 보이거나 지배층만 읽던 것이 역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을 귀족층만 시키거나 전문 분야를 위해 중인들에게 전문분야에 한한 글자들만 가르치던 시대였으므로 문맹률이 높아서라도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도 하고 또 왕조시대에 역사서는 아무나 읽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는 것은 책에서 봤습니다. 사벌국전을 썼다가 그걸 숨기려 한 어느 분의 이야기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대일항쟁기를 겪고 625를 겪어 폐허가 된 시점에서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유래한 불완전한 근대적 역사연구 방법과 그런 불완전한 연구방법만을 배운 적은 인원으로 역사연구를 시작해야 했겠지요. 이해가 됩니다.
어쩌다 진삼국사기표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고려시대에 한민족 전래의 역사보다 중국 역사를 더 잘 알고 있더라면서 그런 까닭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노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도 "조선인들이 역사를 읽지 않아 조선의 역사를 모르고 있다가 외국인들이 조선의 역사를 더 잘 알고 있어서 부끄러운 마음에 그제서야 조선의 역사를 읽기 시작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당시의 문맹률을 감안하면 이는 당시 조선을 살던 2000만 한국인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쓰기는 고사하고 읽기조차 할 수 없는 개똥이나 소똥이 같은 노비들이나 하층민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식민사학이라는 말로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어느 분의 말씀 중에 사맹화(史盲化) 라는 말이 있더군요. 원래부터 역사는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보편 교육 시대를 맞은데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이라는 너무나 탁월한 문자체계까지 개발을 하여 돈 한 푼 안받고 백성들을 가르치신 덕에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역사서를 읽을 수 있는 시절이 되었지만, 오징어 게임도 재미있고 블랙핑크 춤추는 모습도 섹시하고 검은 태양의 액션도 멋지고 남궁민의 근육도 멋있어 보이는 그런 세상을 역시 살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왕조 600여년간 백성들이 역사를 알게 될까봐 적지 않은 역사책들을 서운관 춘추관에 꼭꼭 숨겨두고서는 아무나 역사책을 보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건만 이제는 아무나 역사책을 읽을 수 있는 세상임에도 사람들이 역사나 역사책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한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1950년대도 1960년대도 역시 아니긴 합니다. 시민들이야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역사학자들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직업이실텐데, 왜 조선총독부가 지어놓은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비판이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 아닐까요? 역사학자분들이 아예 식민사학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연구를 하고 교과서를 집필하셨다면 그런 말이 왜 나오겠습니까.
동네에서 막노동이나 하면서 거지같이 살더라도 죽기 전에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역사는 대강이나마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가뭄에 콩나듯이 들었습니다. 한글로 된 역사책을 샀지요. 그러다 강단사학, 재야사학, 식민사학, 민족사학, 유사역사학, 사이비 역사학 같은 희안한 말들을 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환단고기도 다시 사고 규원사화도 구입을 했습니다. 25년 전쯤에 환단고기를 임승국 한단고기를 통해 1/3쯤 읽은 적이 있지만 제가 배운 역사와 괴리가 너무 커서 이사 중에 그 책을 버리고 왔는지 그렇습니다. 규원사화라는 책은 제목조차 몰랐습니다. 그렇게 나이 50이 다 되어갈 무렵 환단고기도 다시 구입하고 규원사화까지 구입을 했습니다. 환단고기는 원문으로 두 번 정도 읽었고 지금은 삼국사기를 원문으로 읽어보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무식한 놈인데, 식민사학이니 총독부 사관이니 하는 말을 몰랐다면 그저 한글로 된 역사책 한 두어권 읽고 블랙핑크 노래하고 춤추는 영상이나 침흘려가며 보고 있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얼마나들 예뻐요. 무식한 놈이 한문으로 된 원문 사서를 읽으려니 힘도 들고 어렵기도 하고 그러네요. 식민사학이라는 말이 사라져서 그냥 한글로 쓰여진 우리나라 역사책을 아무 것이나 한 권 또는 두 권만 읽어도 되는 그런 날이 올까요? 아니, 그런 날이 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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