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사(삼국사기)

삼국사기 권39 잡지 9 관직 중 원문 (기자가 조작이냐? 연나라 위치가 조작이냐?)

참그놈 2021. 11. 17. 04:36

삼국사기 권39 잡지 9 관직 중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삼국사기 권39 잡지 8 - 관직 중.o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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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얼음골에는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잡지 관직 편에도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스크린샷에 포함된 빙고전이 여름에도 공무를 보았는지는 모르겠기는 합니다. 삼국사기 본기에 얼음을 하사했다 뭐 그런 내용은 못 본 것 같거든요. 반면 조선왕조실록 등에서는 얼음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제가 기억을 잘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철유전(鐵鍮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유(鍮)를 검색해 보니 동전이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조선시대의 화폐(동전)을 압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해동통보(海東通寶)라거나 해동중보(海東重寶)같은 화폐를 사용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화폐가 쓰였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삼국시대에도 동전을 주조해서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삼국시대보다 훨씬 전에 명도전(明刀錢)이라고 칼처럼 생긴 동전이 있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 중국 연나라의 화폐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명도전을 고조선의 화폐였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왜냐하면 명도전이 주로 발굴되는 지역이 옛 고조선의 강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명도전은 고조선(단군조선)의 화폐라고 생각을 합니다.

 

유튜브에서 윤명철 교수의 영상을 보시면 동북아지중해(?) 라고 해야 할까? 고대의 해양 문명을 설명하는 컨텐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고대사를 설명하면서 대륙삼국설이나 그 이전에도 산동지역이나 발해만 등이 원래 동이족의 영역이었다는 설명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즉, 아주 고대에 현재의 황해를 중심으로 지중해 문화가 성립되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한 전쟁 이후 중국 땅덩이가 너무 컸던지라 해양문명에 관한 기억은 사라지고 대륙은 대륙 한반도는 한반도 식으로 분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즉, 고대에 현재의 황해를 중심으로 해상교역이 활발했다면, 그리고 그 주체가 동이족이라면 명도전은 중국의 화폐일 수 없어 보입니다.

 

 

중국 역사에 따르면 연나라는 주 무왕이 소공 석을 봉한 지역입니다. 최초로 연나라로 봉해진 지역이 현재의 북경 근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연나라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시면, 연나라가 몇 차례에 걸쳐 이동했다는 주장을 하는 내용을 볼 수 있는데 해당 내용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저 역시 그런 분들의 의견을 따라 연나라는 시기에 따라 이동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에 처음부터 연나라가 북경 부근에 봉지를 받았다고 한다면, 제후들과 상호 협력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아야 하는 필요성이 많았던 시대인 점을 감안하면 군사적 목적이나 전략 등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주 무왕이 병신이거나 대가리를 견본으로 달고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무 막말이지요 ㅡㅡ?) 반면, 후대의 조작이나 왜곡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정적으로 후자 쪽에 더 비중이 가네요.

 

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아니었다라는 내용도 중국 역사문헌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나라가 처음부터 북경 근처에 봉지를 받았다면 하필 기자가 봉 받은 지역과 겹치는 애매함도 있습니다. 즉, 연나라의 초기 위치는 조작이라는 말이 됩니다. 중국 한나라 이후 중국의 위력이 상승하면서 영토 역시 점점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억지로 끼워맞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나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춘추전국시대 대부분의 주요 제후국이 황하의 물길을 따라 봉지를 받는데 유독 연나라는 다른 지역의 제후국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주나라 이전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북방 유목민족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들 유목민들의 공격을 방어하려면 제후들간에 상호 협력이 가능한 위치라야 말이 됩니다. 그런데, 주나라 초기에 소공 석(왕자)를 다른 제후국들과 상호 협력하기 힘든 지역인 북경 지역에 봉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위 스크린샷에 칠전(漆典)이라는 관청도 보이는데, 중국에도 나전칠기가 있나요? 제가 알기로 나전칠기는 한국 고유의 공예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칠전(漆典)이라는 관청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전칠기의 역사가 오래되었구나 하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일본에도 비슷한 공예가 있다는 것 같기는 하던데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중국에 나전칠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한중일 삼국의 나전칠기 문제는 둘째치고 나전칠기 라는 공예의 역사가 최소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 문제는 자개장이 좀 많이 비싸서 저같은 서민들은 구입이 힘들기는 하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