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임금님의 수라, 나라 경제의 보고서...

참그놈 2020. 7. 7. 17:43

임금님의 밥상을 "수라"라고 합니다. 수라상은 몇 첩 반상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임금님의 밥상이므로 반찬의 가짓수가 제일 많았을 것이고, 전국에서 올라오는 각종 특산물로 가득했을 것이므로 어느 누구의 밥상보다 풍요로웠을 것입니다. 중국의 황제가 받는 밥상은 만한전석이라고 하는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밥상인 것은 똑같은 것일테니 "만한전석"이라고 하던지 "수라" 라고 하던지 지금 쓰는 이 포스트의 주제의 관점에서는 같은 밥상입니다. 즉, 왕이든 황제든 이름은 달라도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 지존한 사람이 받는 밥상이라는 뜻입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께 올리는 밥상은 "진지"라고 하는 것을 들었는데,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서 임금님께 올리는 밥상을 "수라"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밥상을 "진지"라 하고 또는 "수라"라고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수라"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임금 혼자 먹는 밥상에 반찬의 가짓수가 가장 많았으니까요. 게다가 임금님은 하루에 다섯끼를 드셨다잖아요. "그 많은 것을 다 먹는단 말이야? 임금님은 돼지(?)였을까?" 하는 생각도 한 것 같습니다.

 

"왕이 된 남자, 광해"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임금님의 밥상 "수라"의 일면을 보게 됩니다. 왕이 식욕이 넘쳐서 남기는 것이 적거나 없으면 정작 음식을 만든 궁녀들은 밥을 먹지 못해 굶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굳이 수라상이 아니라 양반가에서도 똑같았습니다. 요즘을 사는 분들은 예전의 밥그릇 크기를 알기 어려운데, 요즘 고기집이나 식당에서 공기밥으로 내놓는 그릇은 예전 밥그릇의 3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어떤 곳에 가면 밥 공기의 60% 정도 밖에 밥을 담지 않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수 태이가 어떤 예능 방송에서 말을 하지요.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 어머니가 간장 종지에 밥을 담아 주시더라는...  가수 태이의 이야기는 요즘 이야기지만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끼에 먹던 밥공기의 크기는 가수 태이 기준의 간장종지는 아니었습니다. 즉, 예전 양반가에서도 밥은 고봉으로 담았고, 임금님이 드시고 남은 것으로 궁녀들이 식사를 한 것처럼 양반가에서도 제일 큰 어른이 식사를 하고 남은 것으로 가솔들이 식사를 하는 구조였던 겁니다. 

 

누군가는 임금님의 수라상을 보고 맨날 좋은 것만 먹고 후궁이나 궁녀들이랑 재미만 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임금님의 밥상, 즉 수라상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라 국가 경제 보고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즉, 나라에 풍년이 들면 임금님의 밥상에 풍성했을 것이고 반대로 흉년이 들면 임금님의 밥상도 그에 비례해서 초라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음식물을 해외 무역으로 조달하지 않던 시대이므로 임금님의 수라상은 곧 그 해의 농사가 풍년인지 평년인지 아니면 흉년인지 임금에게 알리는 보고서였던 겁니다.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아서 누구나 임금님을 보좌하는 상궁 중에 지밀상궁이나 기미상궁 등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임금님의 수라에 관한 글이므로 지밀상궁은 빼고 기미상궁만 말한다고 해도 나라의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에 따라 수라에 진열되는 음식의 신선도나 땟깔에 따라 맛만 본 것이 아니라, 올해 어디서 고기잡이가 되지 않아.. 어쩌고 저쩌고, 올해 어느 지역에 가뭄이 들어 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임금님께 알리는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농업을 주 산업으로 하던 왕조시대에 임금님의 밥상 - 수라던 만한전석이던 - 은 그 해 경제생산의 보고서와 다름 아닌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중종 역을 맡은 배우(이름 몰라요 ㅡㅡ?)가 "맛있구나!" 라는 대사도 자주하고 대비마마도 미각에 뛰어난 인물로 나오고... 하면서 음식에 대한 평을 늘어놓는 장면들이 많지만, 그런 장면들은 드라마라서 현대적 식도락을 연상케 하는 것이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전제는 그 해의 농사(당시에는 조선총생산)가 풍년이냐 흉년이냐에 따라 달랐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임금님이나 기타 왕족들이 귀족이었으므로 미각이 발달했을 수도 있지만 왕이 되고 대비가 되고 공주가 되어 단순 귀족이 아니라면 미각을 추구하는 식도락이나 하면서 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어릴적부터 가졌던 의문, "왜, 똑 같은 밥상을 때로는 진지라고 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수라라고 하는가... ?" 등등을 살면서 보았던 역사 드라마나 또는 지나다 읽게 된 역사에 관한 짧막한 이야기 등등을 토대로 이리저리 짱구를 굴리면서 내린 저 나름의 결론입니다. 그러니 제가 쓴 글이 정확한 내용은 아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