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좋아하시나요? 저는 어릴 적부터 무협만화를 꽤 본 편입니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장풍을 쏘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런 일을 신기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는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무협 관련 영화도 보았고 무협지도 보았고 무협만화도 보았는데 불쑥 떠오르는 것 하나가 바로 무엇이 정통무협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김두한 시라소니로 대표되는 야인시대와 같은 시기가 있었다면 미국에도 미국의 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서부활극은 정통 서부극과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나뉩니다. 정통 서부극은 주인공과 적이 마주보고 총을 쏘는 승부를 가리는 것이라면 마카로니 웨스턴은 주인공 하나가 수 많은 적을 모두 무찌르는 한 마디로 영웅담이 주 내용입니다. 대표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석양의 무법자 같은 영화들이지요.
혹시나 해서 정통무협에 대한 정의가 되어 있나싶어 검색을 해 봤더니 80년대나 90년대 이전에 나온 무협관련 창작물을 정통무협이라 하고 그 이후에 나온 무협 관련 창작물을 신무협이라고 한답니다. 역시 아직 아무런 구분이 없는 것인가? @@ 싶네요. 시기를 구분해서 정통과 신무협으로 구분한다니...
덕후라거나 매니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협 관련 작품들을 여럿 보면서 어쩌면 저도 무협매니아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꾈 수 있는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실상 무협만화를 예로 들면 허술한 부분도 꽤 있습니다. 가령, 무협의 초식 중에 "팔방풍우" 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똑같은 작가에 의한 서로 다른 두 작품 A와 B에서 팔방풍우라는 초식의 평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A라는 작품에서 팔방풍우는 천하제일의 절세신공인데 B라는 작품에서는 아무나 익혀서 별 위력이 없는 무공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웃기지도 않는 모순이지요. ^^
또 하나 읽어보지 않았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유협열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력을 수련하고 단련하면서 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관해 기술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유협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무협관련 만화는 거의 대부분 중국 명(明)나라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타 원나라나 청나라는 모두 오랑캐로 그려지고 있지요. 시대적 배경이 명나라를 벗어나는 무협만화는 본 적이 드문 것 같습니다. 사마천 사기 유협열전을 생각하면 각 시대별로 무력을 수련하여 의로운 일을 한 사람들이 제법 있을 듯한데 우리나라 무협만화계에서는 줄창 명나라만 그려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협사가 전혀 없었을까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만화 역시 거의 볼 수 없기도 합니다. 중국은 방세옥이나 황비홍 엽문 등 현대와 가까운 시기도 영화로 그려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명나라만을 정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구파일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림사, 무당파, 아미파, 화산파 등의 중국 전래의 무예를 익히고 전파한 집단들입니다. 무협만화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이들은 실제했고 현존하기도 하는 문파들입니다. 불교문파도 있고 도가문파도 있고 또 거지들의 집단도 있습니다. 개방이 곧 거지들의 집단이며 항용십팔장이나 타구봉법 등으로 유명한 방파입니다. 예전 무협에는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구파일방은 장식에 불과하고 약간 희안한 문파들이 등장하는 것 같더군요.
이 외에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도무지 어떤 것을 정통무협이라고 하는 지 참 모르겠기도 하고 무협에는 원래 정통이라는 게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가지 사람을 칼로 죽일 때 정파와 사파의 차이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정파는 칼을 똑바로 해서 심장을 찔러 죽이는 반면 사파는 찌르던지 베던지 무조건 사람만 죽이면 되는 것으로요. 똑같이 칼을 써도 활인검이 있는 반면 살인검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생명이던지 그 생명을 죽여야 하는 경우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도리라고 하더군요. 그러므로 정파는 사람을 죽여야 할 경우 칼을 심장과 직각이 되도록 하여 찌른답니다. 반면, 사파는 무조건 죽이면 되니까 그런 구분이 없다고 하네요.
김용이라는 중국의 소설가 이후에 우리나라에도 무협소설이 상당히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김용의 작품은 중국의 교과서에서도 채택을 했다고 하더군요. 김용 이전 우리나라에는 무협소설 보다는 무협지로 총칭되는 작품들이 주류였습니다. 당연히 당시 그 작가들은 작가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작가 뿐만 아니라 무협지 독자도 한심한 인간 취급을 받던 시절이지요.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그 보다 진정 궁금한 것은 무엇을 정통무협 이라고 하는가? 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껏 살면서 진정 쓰잘데 없는 것만 보았는가 싶기도 해서요. 그래도 뭐 하나 "정통" 이라고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면... 에휴... 하긴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500여년을 문치에 치중한 나라이고 역대 임금님들 중에서도 북벌을 주창한 효종 임금님이나 무예도보통지 등을 찬술하신 정조임금님이나 제명에 돌아가시지 못했지요? 그럴수록 얼토당토 않은 상상력으로 자라는 청소년들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역사에 근원을 두던지 실존하는 무예나 또 협사의 인생을 산 사람들의 이념(?) 등을 표현하는 그런 작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중국 명나라 말고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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