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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演義序
人瑞 金聖嘆
余嘗集才子書者六. 其目曰 莊也,騷也,馬之史記也,杜之律詩也,水滸也,西廂也,已謬加評訂. 海內君子皆許余以為知言. 近又取三國志讀之,見其據實指陳,非屬臆造,堪與史冊相表裏. 由是觀之,奇又莫奇於三國矣. 或曰 凡自周秦而上,漢唐而下,依史以演義者,無不與三國相仿, 何獨奇乎三國乎? 曰:三國者乃古今爭天下之一大奇局, 而演三國者又古今為小說之一大奇手也. 異代之爭天下,其事較平. 取其事以為傳,其手又較庸. 故迥不得與三國並也.
吾嘗覽三國爭天下之局,而嘆天運之變化真有所莫測也. 當漢獻失柄,董卓擅權,群雄竝起,四海鼎沸,使劉皇叔早諧魚水之歡,先得荊襄之地,長驅河北,傳檄江南,江東·秦·雍, 以次略定,則仍一光武中興之局,而不見天運之善變也. 惟卓不遂其篡以誅死. 曹操又得挾天子以令諸侯,名位雖虛,正朔未改,皇叔宛轉避難,不得早建大義於天下, 而大江南北, 已為吳·魏之所攘,獨留西南一隅為劉氏託足之地. 然不得孔明出而東助赤壁一戰,西為漢中一摧,則漢益亦折而入於曹,而吳亦不能獨立,則又成一王莽篡漢之局,而天運猶不見其善變也. 逮於華容遁去,雞肋歸來,鼎足而居,權侔力敵,而三分之勢遂成.
尋彼曹操一生,罪惡貫盈,神人共怒. 檄之罵之,刺之藥之,燒之劫之,割鬚折(切)齒,墮馬落塹,瀕死者數,而卒免於死. 為敵者眾而為輔亦眾. 此天之又若有意以成三分,而故留此奸雄以為漢之蟊賊. 且天生瑜以為亮對,又生懿以繼曹後,似皆恐鼎足之中折,而叠(疊)出其人才以相持也.
自古割據者有矣,分王者有矣,為十二國,為七國,為十六國,為南北朝,為東西魏,為前後漢,其間乍得乍失,或亡或存,遠或不能一紀,近或不踰歲月,從未有六十年中,興則俱興,滅則俱滅,如三國爭天下之局之奇者也.
今覽此書之奇,足以使學士讀之而快,委巷不學之人讀之而亦快, 英雄豪傑讀之而快,凡夫俗子讀之而亦快也. 昔者蒯通之說韓信,已有鼎足三分之說. 其時信已臣漢,義不可背. 項羽粗暴無謀,有一范增而不能用,勢不得不一統於群策群力之漢. 三分之幾,虛兆於漢室方興之時,而卒成於漢室衰微之際. 且高祖以王漢興,而先主以王漢亡,一能還定三秦,一不能取中原尺寸,若彼蒼之造漢,以如是起,以如是止,早有其成局於冥冥之中, 遂使當世之人之事,才謀各別,境界獨殊,以迥異於千古者,非天事之最奇者歟.
作演義者以文章之奇,傳其事之奇書奇矣,而無有人焉起而評之,即或有人而使心非錦心,口非繡口,不能一一代古人傳其胸臆,則是書亦終與周秦而上,漢唐而下,諸演義等,人亦烏乎知其奇而信其奇哉!
余嘗欲探索其奇以正諸世,會病未果. 忽於友人案頭見毛子所評三國志之稿,觀其筆墨之快,心思之靈,先得我心之同然. 因稱快者再,而今而後,知第一才子書之目,又果在三國也. 故余序此數言付毛子,授剞之日,弁於簡端,使後之閱者,知余與毛子有同心云.
順治 歲次甲申 嘉平 朔日 人瑞 金聖嘆氏題
足以使學士讀之而快,委巷不學之人讀之而亦快, 英雄豪傑讀之而快,凡夫俗子讀之而亦快也.
문화혁명 이전 중국의 문맹률은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독(讀)은 글을 알아서 읽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중국에는 맹인(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옛날 이야기를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이야기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 여기서 독(讀)은 들어서 알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信其奇哉
박기봉 삼국연의에 해당 구절을 "그 기이함을 믿어주겠는가" 라고 번역하셨던데, 위 단락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문맹률은 높았습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맹인 이야기꾼이 전하는 이야기를 믿었다기보다, 책을 가지고 상시 읽을 수 없었으므로 썰을 푸는 그 순간에 그쳤을 것이므로 이야기를 실감나게 구성을 했을 것입니다. 해서 본 포스트 작성자는 "어떻게 그 기이함을 실감했겠는가"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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