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연의

삼국연의를 읽고...

참그놈 2020. 12. 7. 03:55

어제 날짜로 삼국연의 한문본을 어쨌거나 다 읽었습니다. 한 번에 불과하지만... 대략 5개월 정도가 걸렸네요. 제가 읽은 것은 박기봉 역 삼국연의이며 한문본을 읽었습니다. 실제로는 인터넷에서 구한 삼국연의 원문을 구해서 세 가지를 대충 비교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주로 폰트를 키워 모니터 상에서 보았습니다. 시력도 딸리고 척추측만이 있어서 고개를 오래 숙이고 있지 못합니다.

 

인터넷으로 구한 삼국연의 원문은 박기봉 역본보다 협평도 서시평도 더 많았기 때문에 원문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박기봉님 역본에 없는 협평이나 서시평 중에서는 해석이 되는 것도 있고 해석은 안되지만 짐작은 되는 것도 있고 아예 이해도 짐작도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삼국연의에 쓰인 한자는 3000자 정도.

박기봉님 삼국연의 12권 한 질은 번역본 8권과 원문 4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문 4권의 총 글자 수는 3000자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자 급수를 3급이나 2급 이상을 따신 분들은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삼국연의가 총 62만자 정도 된다고 하는데, 중복되는 글자를 빼고 계산하면 그 정도 된다는 뜻입니다. 역사를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려면 어쨌거나 한문을 알아야 하고 결국은 중국사와 비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알기 위해서라도 읽어두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파일 삼국연의와의 차이

인터넷에서 삼국연의 원문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자가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컴퓨터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자를 표기하기 위해서 한자 풀어쓰기를 한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 외에 박기봉님 역본보다 모종강 협평이 훨씬 더 많고 서시평 역시 더 내용이 많습니다. 박기봉 역본의 경우 삼국연의와 관련된 것에 한정해서 일정 부분을 제외한 것 같습니다. 중국 내 출판사에서는 어떤 형태로 출판이 되는지 알 수 없으므로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삼국연의는 중국판 환단고기

삼국연의를 읽으면서 생각한 것 한 가지는 삼국연의는 중국판 환단고기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14억 정도이고 정확한 인구를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건 지금 사정이고 2000여년 전 한나라 때에 중국의 인구는 6000만명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삼국연의에서 표시되는 중국의 영토가 현재의 영토와 거의 비슷합니다. 당시의 인구로 그 넓은 영토를 관리할 수 있었을까요? 이건 의문입니다.

 

한편, 삼국연의는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 환단고기와는 또 차원이 다릅니다. 보유한 문헌들이 많고 천년 이상을 거치면서 관련 사적이나 유적지 역시 많이 남겼으니까요.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의 군대를 막아서지요? 실제로 가 보면 작은 도랑이 있고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주변에 무수히 많은 비석이나 뭐 그런 것들이 있다네요. 관광객들이 기념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사적이나 유적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이냐?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이미 수백년 또는 천년도 지난 이전에 누군가 민담을 듣고 돈 좀 있답시고 찾아가서 기념물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누백년 에 걸쳐 관광객이 만든 기념물이 졸지에 사적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영토 확장과 확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랬다기보다 삼국연의에 감동하여 그냥 찾아가서 기념물을 세웠을 것입니다. 중국판 환단고기라고 할 수 있는 삼국연의는 보다 현실적이라는 말이지요.

 

삼국연의가 민담으로 출발해서 원말청초에 나관중 본으로 귀결이 되었다고 할 때, 위촉오 삼국시대가 지나고 나서 진이 잠깐 통일을 하지만 5호 16국 시대와 위진 남북조 시대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수나라와 당나라가 그 이후에 이어지는데, 수나라와 당나라도 돌궐 계통인 것으로 압니다. 그 이후로 송나라 금나라 요나라... 뭐 이래저래 이어지다 원나라가 중국을 통치합니다. 원나라 다음으로 명나라 청나라. 즉, 한나라 멸망 이후 1천여년 이상 중국은 이민족들의 각축장이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족의 자존심 같은 것을 유지하려는 노력 같은 것이 있었겠죠? 삼국연의는 그 결과물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를 제외하면 아마 거의 다 이민족들이 세운 나라들일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삼국연의에서 표시되는 중국의 영토가 현재의 영토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삼국연의를 읽다가도 나관중이나 모종강이 지리 개념이 있었는지 의아한 부분도 있습니다. 조조가 요동 정벌을 할 때, 사막을 해매다가 제일 젊은 곽가가 죽었는데, 향도관 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물이 얕으면 얕아서 못가고 깊으면 깊어서 못가는 희안한 지역이 등장합니다. 사막에서 갑자기 물이 나오는 지역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맹획을 잡으려 남만을 정벌하러 가는데 50만 대군을 이끌고 그 먼길을... 게다가 여름이면 비도 제법 왔을테고, 후반부에 사마의가 요동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4천리를 가는데만 100일을 잡습니다. 남만은 더 멀어요. 오뉴월 영천에 비맞아가며 산넘고 물건너 진창길을 수레를 끌어가면서 갑옷에 무기를 들고...  오나라 조차도 기후가 맞지 않아 병이 든다고 하더만 남만으로 가서는 병도 안나고 에궁... 지도의 축적을 보고 대강의 거리를 재어봐도 하루에 50km를 걸어야 가는데만 3개월은 걸릴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동하는데만 왕복 6개월이 걸릴 거리임에도 순식간에 해치우고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서평관은 아예 허구의 인물들로 채웠지요?

 

소설 가지고 왜 따지냐? 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저는 30대 이전에는 삼국지와 삼국연의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판매되고 있는 삼국지는 대부분 삼국연의인데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판매가 됩니다. 소설이 역사가 되어서 꾸준히 전파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소설은 역사가 될 수 없지요. 그러나 삼국연의를 읽고 해당 지역을 찾아가 누 백년에 걸쳐 기념물을 만들어버린 까닭에 이미 거의 절반 이상 소설이 역사가 되어 버린 상황으로 생각합니다. 나관중이나 모종강이 지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의도치 않게 역사를 창작해 버렸지요.

 

후주 유선은 진정 무능했을까?

백제성에서 유비가 제갈량에게 후주 유선을 부탁합니다. 자식이 멍청하니까 안되면 공명선생이 대신해도 된다고까지 하죠. 그리고 사마염에게 항복했을 때, 잔치상에서 촉(蜀)이 생각나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마염과 그 주변의 신하들이 모두 비웃습니다. 그 이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해져서 천수를 다하고 죽습니다.

 

후주 유선의 재위 기간이 상당히 깁니다. 그 기간 동안 촉한의 실권을 쥐고 있던 제갈량은 남만 정벌도 하고 여섯 번이나 기산으로 출동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능한 황제가 변고 없이 수 십년을 재위할 수 있었을까요? 삼국연의 중간중간에 후주 유선은 신하들간의 분쟁 등에서 화해를 잘 시키는 군주로 설명됩니다. 또 후주 유선의 아들 유심이 천자가 항복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할 때, "네가 천시(天時)를 아느냐?" 라는 말도 합니다. 어쩌면 유선은 무능했던 것이 아니라 도(道)라도 통한 것은 아닐까요?

 

후주 유선은 어릴 적에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조자룡이 구하지요. 어릴 때부터 죽고 죽이는 광경을 숱하게 보아온 겁니다. 게다가 선주 유비의 근거가 불분명했으므로 유비 관우 장비와 마찬가지로 떠돌이인 채로 성장합니다.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

 

임금이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다음 대에 보위를 잇는 아들은 단 하나입니다. 나머지 아들들은 그냥 백성일 뿐이지요. 신하라고 할까요? 신하도 백성,  백성도 백성.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것은 먹을 것. 그렇게 본다면 후주 유선은 일개 백성인 채로 천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되는데, 천자가 하늘로 여겨야 할 것은 또한 백성이라고 하지요? 삼국연의 작가가 묘하게 숨겨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놈이 정통이니 저놈이 정통이니 제아무리 떠들어봐야 백성을 안락하게 하는 놈이 결국에는 정통이다 라는 역설? 안락공(安樂公 : 백성을 공히 안락하게 하라?) 그러나 결국 진晉도 망하고 오호십육국 시대, 수 당 거시기 거시기.... 백성은 오래도록 공히 안락치 못합니다.

 

사마염이 후주 유선을 꾸짖으면서 죽여야 마땅하나... 어저고 저쩌고 하니까 후주 유선이 움찔합니다. 대의를 외친자들은 하나같이 칼날 아래 죽어갔고 전쟁에 휘둘린 백성들은 편하지 못했지요. 후주 유선은 그저 안락하고 살해당하고 싶지 않은 백성의 모습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요?

 

모종강 협평과 서시평, 읽다가도 짜증이...

박기봉 역본에도, 인터넷에서 구한 삼국연의 파일에도 문장 중간중간 모종강의 협평이 끼어 있는데, 인터넷에서 구한 파일의 경우 박기봉 역본보다 협평이 더 많습니다. 협평을 읽다가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너무 촉한에 치우쳐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무조건 나쁜 놈이고 유비나 제갈량은 무조건 올바르고... 박기봉 역본에는 잡다한 협평은 많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박기봉 역본과 비교해서 다른 것은 다 지워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현재 중국에서 발간되는 삼국연의는 어떤 형태인지 몰라도 어쩌면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파일과 같은 내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혹시 나중에 중국에서 인쇄된 삼국연의를 보게 되는 날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갈공명은 정말 뛰어난 전략가?

삼국연의를 읽으면서 제갈공명을 빼면 이야기가 안되지요? 제갈공명은 진짜 탁월한 전략가였을까요? 본문을 읽다 보면 화살을 하루만에 확보하기도 하고 동남품을 불게 하기도 하여 호풍환우(呼風喚雨)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발바닥에 초를 놓나? 그래가지고 죽어서 사마중달을 쫓기도 하지요. 그러나, 삼국연의의 결말은 위촉오 삼국의 멸망입니다. 즉, 뛰어난 전략으로 위촉오 삼국의 장수나 인재들을 신산귀계로 싸그리 걷어다 죽인 장본인인 것이고 한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주역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맹획을 잡으러 갔다가 어느 계곡에서 요즘 기준으로 지뢰라고 할까요? 그런 것으로 원주민들을 태워죽이면서 "사람을 많이 죽여 수명이 짧아질 것"이라는 걱정을 합니다. 제갈공명이 죽인 것은 맹획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정작 위촉오 삼국의 인민들을 더 많이 죽인 것이지요.

 

도덕경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떤 책을 보다가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한자 생략) 이러면서 삼(3)에 이르고서는 삼라만상이 태어난다고 적힌 것을 봤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삼국연의는 뭔가가 생성하고 자라나고 그런 모습일 것 같은데, 반대로 소멸하고 죽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긴 1년 중에 춘하春夏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추동秋冬도 있기는 하지요. 전하제패의 꿈은 항상 생겨났지만 셋이서 경쟁하다 보니 그만 서리를 맞은 것일까요?

 

 

 

이상이 삼국연의를 원문으로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