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삼국연의)라는 책이 수 십년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한중일 삼국에서 삼국지(삼국연의)는 살면서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처럼 권장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삼국지(삼국연의)는 유비, 조조, 손권이 중국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것이 주 내용이라는 것을 아는데 역사상으로 실제했던 사실이기도 하여서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 하나는 누가 정통인가? 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촉한을 정통으로 생각하지만 조조를 정통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이 조조를 정통이라 주장했고 이문열 삼국지(삼국연의)도 조조가 정통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삼국연의를 쓴 모종강은 촉한이 정통이고 조조의 위(魏)는 참국(僭國)이고 오(吳)는 윤국(閏國)이라고 평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삼국연의를 한문원문과 함께 구성된 박기봉 역 삼국연의를 한 번 보았는데 그 속에는 모종강 협평이 군데군데 적혀 있습니다. 협평이란 글 중간 중간에 짧은 글로 간단하게 평을 한 것인데 내용을 읽어보면 모종강은 유비의 촉한빠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모종강의 협평에는 유비가 한 일은 오로지 잘 한 일이고 조조가 한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적혀 있으니까요.
삼국연의 한문 원문에 쓰여진 협평이나 삼국지독법(三國志讀法)을 읽어 보면 모종강이 유비의 촉한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 반면, 한나라와 촉한을 비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 듭니다. 다만, 모종강이 삼국연의를 지을 무렵, 당시 중국의 서민 대중이 대부분 촉한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모종강이 당시를 살던 중국인 서민 대중의 이해와 지지를 수용하여 촉한과 유비를 칭찬하는 협평을 군데군데 끼워넣고 삼국지독법 이라는 글에도 촉한이 정통이라고 주장했기는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나라나 촉한이나 또 유비가 그렇지 뭐!" 하는 식으로 유비를 깐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삼국연의에 쓰인 부분적인 문장 하나하나가 역설이 아니라 삼국연의 작품 전체가 하나의 역설적 표현은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1. 숱한 사람이 죽는다.
중국에서 삼국시대가 끝나고 남은 인구가 1000만이 안된다고 합니다. 황건적의 난 이전에는 인구가 6000만 가까이 되었었는데 삼국시대가 끝나고서는 인구가 절반도 아니고 급격히 줄어든 것입니다. 전란으로 인해 싸그리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삼국연의 지도를 검색하면 중국 영토가 아주 넓지요? ㅋ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올 때가 그러했고 후삼국에서 고려로 넘어올 때가 그렇습니다. 중국에서도 역대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숱한 전란이 있었지요. 그러나 6000만에 이르던 인구가 1000만도 안되는 수치로 줄었다는 것은 죽어도 너무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 역사 기록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2. 劉 : 죽일 류
劉자를 옥편이나 자전에서 찾아보면 죽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보통 묘금도 유 - 劉자를 파자하면 卯+金+刀 세 글자의 합입니다 - 라고 말하는데 어쨌거나 죽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삼국연의를 읽어보면 천하대세 분구필합 운운하는 초기 앞부분을 조금 지나면 마냥 치고박고 싸우다 죽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제왕이 하려는 사업은 천명을 받아 단지 보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 백성을 먹고 살게 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고 제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긴다는 말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삼국연의 초반을 보시면 황건적을 타파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련다는 유관장 3인의 결의는 황건적이 타도되었음에도 물러나지 않았으니 유비 자신이 황건적이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18로 제후가 모두 황건적으로 분류될 수 있을 수도 있고요.
3. 漢
한(漢)이라는 글자는 은하수 라는 뜻도 있고,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 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나이 라는 뜻도 있고 남자를 비하적인 의미로 부르는 글자이기도 합니다. 남자를 뜻할 때는 한마디로 약간 껄렁패? 뭐 그런 뜻인 것이지요. 그 외에 한(漢)은 태세(太歲)라는 고대 천문학의 기준이 되는 목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태세(太歲)라는 괴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태세는 땅 속에 살며 생긴 것은 아르고스 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살덩어리에 눈(目, Eyes)이 숱하게 붙어있는데 누구든지 태세를 보게 되면 당사자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모두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자나 한문을 옥편이나 자전을 찾아가면서 읽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라 한문이 생활인 모종강이 한(漢)이라는 글자의 자세한 뜻을 못랐을까요?
왕업을 누가 무엇하러 이루려 합니까? 백성을 살리고 먹이고 입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먹이고 입히는 문제에서 더 나아가 삼강오륜이나 효제와 같은 이상을 실천하여 문화적으로도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명을 받았다거나 하는 대의명분을 내 걸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요?
1에서 숱한 사람이 죽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 역사서에 기록이 있는 내용입니다. 당시 중국 인구의 2/3 이상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무려 인구 규모의 과반 이상이 죽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구 손실이 발생합니다. 전쟁통에 어디 사람만 죽어나갔겠습니까. 농경에 필수적인 소나 말도 죽었을 것이고 개나 양 닭 같은 가축들도 적지 않게 죽었을 것이고 농토는 황무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漢나라(태세라는 괴물) 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죽인 것(劉)입니다. 삼국연의 전반이 치고박고 싸우면서 계속 죽이는 이야기만 나오지요? 어쨌거나 100여년이 넘도록 마주치기만 하면 디립다 싸우고 죽입니다. 계속 죽입니다. ㅡ,.ㅡ
중국에서는 한(漢)나라를 몹시 좋아한다고 합니다. 평민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였다고 하더군요. 한나라 이전에는 주나라와 진시황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주나라는 왕 외에 공후백자남, 공경대부사 등 신분이나 계급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즉,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은 평민이었으므로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없다는 것을 실증한 인물이라 중국인들이 그래서 한(漢)나라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한 살육만이 중국 역사에 반복되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앞에서 인구 규모가 절반 이상 사망하는 대규모 인구 손실이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오호십육국 오대십국 황소의 난 안록산의 난 이자성의 난 등 각각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숱한 인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 대사건이 날 때마다 보통 중국 인구의 2/3 가량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역사서에 100리를 가도 사람 하나 볼 수 없었다거나 1000리를 가도 사람 하나를 볼 수 없었다는 기록이 시대별로 여럿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모종강 이전에 나관중이 삼국지 통속연의를 먼저 썼다고 하지만 모종강도 삼국연의를 쓰기 위해서 역사 책 외에도 관련 서적을 적지 않게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나라가 정통이고 촉한이 정통이라 인정했다는 것은 당시 중국의 모순과 한계가 한나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그것이 곧 중국인들의 운명이다! 뭐 그런 뜻으로 삼국연의를 편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즉, 한(漢)나라를 중국의 정통으로 삼는 동안은 중국에서는 천하쟁패를 위한 대결과 살육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지요. 평민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성을 보았더니 태세(太歲)라는 괴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삼국연의 마지막에 이것이 바로 천하대세가 나뉘면 반드시 합하고 합하면 반드시 나뉜다는 것이다 라는 말을 다시 적어놓았습니다. 사실 순서는 바뀌어 있습니다. 합하면 반드시 나뉘고 나뉘면 다시 합한다고 적혀 있지요. 순서야 뭐 중요하겠습니까. 어쨌거나 삼국시대 이후로도 분열과 통합은 계속될 것이며, 그 때마다 만나기만 하면 계속 싸우고 죽이게(劉) 될 것이다. 한(漢)나라 - 썅놈, 껄랭패, 태세라는 괴물 - 가 중국인들 마음 속에서 정통인 이상 그 한계를 절대 벗어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총체적인 역설, 그것이 바로 삼국연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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