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연의

삼국지(삼국연의) : 한문 원문과 한글 역본의 읽기 차이

참그놈 2021. 10. 13. 22:12

강호에 한문 고수들도 많고 삼국연의나 삼국지(정사) 고수들도 많은데 이런 포스트를 쓰는 것이 사실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스트를 하나 쓰기로 했습니다.

 

살면서 열국지나 초한지는 거의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삼국연의는 한 권짜리부터 만화까지 그래도 대여섯 번은 읽어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타의 삼국연의 매니아처럼 삼국연의를 읽으라면서 입에 침을 튀겨가며 추천하거나 하는 독자는 아닙니다. 이는 글자만 읽었지 그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 이맘때 박기봉 역 삼국연의를 원문까지 포함된 것을 구입해서 나름 한문 원문으로 읽으려 애를 쓴 적이 있는데 한글로 읽는 것과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 차이라는 것이 다름이 아니라, 아무래도 한문 원문을 읽으려 했으므로 읽는 속도가 달랐고 그로 인해 번역본 삼국연의를 읽는 것과 달리 한문으로 되어 있어 모르는 글자를 찾는다거나 하여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보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 와중에 뭔가 숨은 뜻이 보이는 듯했다는 것입니다. 뭐 저는 삼국연의 매니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삼국연의 애독자도 아니었습니다만 몇 가지 제가 느낀 것을 써 보겠습니다.

 

삼국연의 1회의 요약이라고 해야 할까요?

 

宴桃園豪傑三結義(연도원호걸삼결의)

斬黃巾英雄首立功(참황건영웅수립공)

 

호걸은 잔치를 자주 하지요. 술과 함께. 그러다 결의를 맺기도 합니다. 즉, 宴桃園豪傑三結義(연도원호걸삼결의)구는 유비 관우 장비 세 명에 한정한 묘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삼국연의에 호걸이 어디 유비 관우 장비 뿐이겠습니까. 조조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나 만화 등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 정사나 연의나 관점을 달리하면 원소나 여포 손책 등도 각각 어딘가에서 결의를 맺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宴桃園豪傑(연도원호걸) 豪傑三結義(호걸삼결의) 두 구를 하나로 합친 것과 같을 것입니다. A ∩ B 로 글자들을 중첩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斬黃巾英雄首立功(참황건영웅수립공) 이라는 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황건 영웅의 목을 베었다(斬黃巾英雄) 라는 뜻과 영웅이 처음으로 공을 세웠다(英雄首立功)는 중의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비 관우 장비야 황건적과 싸우면서 성장하지만 삼국연의에서 장각 형제는 이미 중원의 절반을 장악한 세력이었고 영웅이었습니다. 그 영웅의 목을 치고 또 다른 영웅이 공을 세웠지요.

 

아시다시피 삼국연의는 滾滾長江東逝水, 浪花淘盡英雄.로 시작하는 노랫말과 시작됩니다만, 해당 노랫말은 삼국연의를 다 읽어봐야 느낄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생략

 

삼국연의 시작 부분입니다. 아래 부분이 나관중 삼국지통속연의에는 없습니다. 모종강본 삼국연의에는 아래 문장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아래 문장을 포함하는 것으로 독자로 하여금 역사라는 것이 가지는 순환적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이라는 구에 대해서는 모종의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遂分為三國. 으로 끝나는 것으로 인해 다시 통합될 것을 암시하고 있고 또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열할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話說,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周末七國分爭, 並入於秦. 及秦滅之後, ·漢分爭, 又並入於漢;漢朝自高祖斬白蛇而起義, 一統天下, 後來光武中興, 傳至獻帝, 遂分為三國.

 

아래 구는 위 문장에 이어지는 구입니다.

 

桓帝禁錮善類, 崇信宦官 (환제가 금고선류를 하고 환관을 지나치게 믿었다)

는 내용인데, 금고선류는 당고의 화 라는 말로도 불리기도 합니다. 선비들을 내쫗고 종신토록 벼슬길에 진출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지요. 그런데, 위 구를 잘 보시면 환제 자신이 금고선류 상태입니다. 문장이 桓帝下詔禁錮善類 또는 桓帝命禁錮善類로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환제 자신이 환관들과 시중드는 궁녀 또는 태후나 후궁 등에 의해 갇혀 있습니다. 즉, 환제가 관리들에게 금고선류를 명하기 이전에 이미 환제 자신이 금고선류 상황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崇信宦官(숭신환관)이라고 환관들 말만 믿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해당 구는 桓帝崇信宦官, 命禁錮善類, 乃尤崇信宦官  정도로 쓰여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을 안했을 수도 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大將軍竇武·太傅陳蕃共相輔佐.

 

대장군 두무와 태부 진번이 함께 영제를 보좌했다는 내용인데 나관중 본에는 사도 호광(胡廣)이 추가되어 있는 반면 모종강 본에는 사도 호광(胡廣)이 빠져있습니다. 솥(제왕, 국권, 나라)이 쓰러지지 않고 서 있으려면 다리가 최소한 3개는 있어야 하는데 조정에서 그 세 개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3공(三公)일 것입니다. 그런데 둘 만 기록했습니다. 대장군과 태부, 정확하게는 삼공이 다 빠져 있고 대장군과 태부만 표시를 한 것입니다. 삼공과 대장군, 태부를 합쳐서 5부라고 한다는데, 대장군과 태부가 3공은 아니지만 3공과 거의 동급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장군과 태부를 모두 3공의 반열에 포함시키더라도 3공이 빠짐으로써 솥 자체가 다리가 없는 형국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3공과 동급이랄 수 있는 대장군과 태부가 있으므로 3공 중 누군가 한 사람이 추가되었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지만 두 사람만 적혀있습니다. 즉, 3개의 다리 중 두 개만 있는 형국인 것입니다. 환관이 국정을 전횡하므로써 솥(제왕)은 이미 위태한 모습인 것입니다.

 

구정(九鼎)이라는 것 혹시 들어보셨지요? 솥()은 제왕이나 왕권, 나라를 뜻하기도 한답니다. 삼공이 빠졌더라도 삼공 중에 하나가 포함되던지 해서 셋이서 함께 보좌했다고 썼으면 보다 안정감이 있었을 것인데 그 중에 하나를 쏙 빼버린 것이지요. 솥이 쓰러지지 않으려면 다리가 최소한 3개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가 없어졌으니 솥(왕권, 제왕, 나라)이 기울게 되겠지요?

 

竇武·陳蕃謀誅之, 機事不密, 反為所害. 中涓自此愈橫.

대장군 두무와 대부 진번이 환관들을 죽이려 했지만 환관들의 반격으로 두무와 진번이 오히려 당합니다. 대장군은 군부 최고 통수권자이고 태부 역시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거느리고 있는 부하나 식솔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단지 두 사람만 해를 입은 것이 아니겠지요? 뒤에 이어지는 中涓 이라는 말은 환관이라는 말입니다. 왜 환관을 中涓이라 달리 썼을까요.

 

아래 구는 영제가 온덕전에 행차했을 때 푸른 뱀이 또아리 튼 것을 보고 헌제가 쓰러졌을때 영제 주변의 행동에 대한 묘사입니다.

帝驚倒, 左右急救入宮. 百官俱奔避.

左右急救入宮은 환관들이 했겠지요? 그러나 百官俱奔避.에서 보는 것처럼 관료들은 다 도망을 했답니다. 환제 금고선류에 이어 영제금고선류 라고 할만한 일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미 신하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한편, 위 구절이 나관중 본에는 좌우 무사들이 급히 구해갔다라고 적혀 있기는 합니다.

 

鉅鹿郡(거록군) 이라고 장각 3형제가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근거지입니다. 제가 보는 책에는 鉅자 대신 巨로 써도 된다고 해설을 했던데, 巨와 鉅는 같이 쓰일 수 있지만 뒷 글자에는 金자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金은 황금이나 순금같이 귀금속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칼이나 창 같은 병장기를 나타내기도 하지요. 또, 노루나 사슴 사냥은 왕권 경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단지 큰 사슴을 나타내는 사냥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삼국시대라는 난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巨보다는 鉅가 나아 보입니다. 즉, 巨鹿이라 쓰면 실제로 동몰로서의 사슴을 말하지만 鉅鹿으로 쓰면 군사행동을 하는 사슴(?)이 되는 것이지요. 삼국연의에 장각 형제가 모여든 추종자들을 36방을 만들고 대방은 1만 소방은 6~7천으로 구분하여 장군을 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며 巨鹿으로 쓰는 것보다 鉅鹿으로 쓰는 것이 더 좋아보이네요.

 

 

한글이 있어서 어려운 책들도 쉽게 볼 수 이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로 읽으면 읽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인지 뭔가 내용을 두고 생각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우연히 한문으로 된 삼국연의를 읽어보게 되면서 한글로 된 삼국연의를 볼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이는 것 같네요. 저야 어쩌다 삼국연의를 한문으로 보려고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것들을 발견하여, 음~~ 한문으로 삼국연의를 읽으면 이런 면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만, 한글로 번역된 삼국연의를 읽으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생길 수 있고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경우를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문 원문으로 읽으면서 곳곳에 그런 부분이 있는것 같아서 "이게 무슨 뜻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뜽하고 검색도 하고 전후 사정을 따져보기도 하는 등의 일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 쓴 삼국연의 한문본에 관한 내용은 저 혼자 느끼는 것이므로 정확한 해석이나 번역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삼국연의를 한문본으로 읽는 분이 계시다면 그리고 고수이시라면 그냥 한문을 두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