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읽기

환단고기(한단고기)를 읽어야 할 필요성

참그놈 2020. 12. 25. 12:59

제목을 보아하면 블로그 주인을 속칭 환빠라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스스로는 환빠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시겠다면 어쩌겠습니까. 세상에서 환빠니 식민빠니 하는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논쟁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환빠가 될 뻔한 적이 있기 때문에 환빠라고 비난을 한다고 해도 감수하겠습니다.

 

환단고기를 읽어 보셨습니까? 여러가지 환단고기 해석서들이 있지만 환단고기를 한문본으로 읽기를 한 번 권해 봅니다. 대표적인 환단고기, 즉 임승국 한단고기나 상생 출판사 환단고기는 고대의 우리 선조들이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분들이었다면서 거대한 대륙을 설명하고 오래된 문명을 설명하고 뭐 그럽니다. 그러나 환단고기를 한문본으로 쭉 읽어보니까 그런 내용이 전혀 연상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홍산문명도 안나오고, 조선 총독부도 안나오고 뭔가 갈등을 유발하는 단어들이 없는 것 같더군요. 아니면 제가 무지해서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단고기나 환단고기를 한문본으로 읽으니까 읽어야 되나 말아야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았고, 중국이 동북공정을 한다느니 일본이 역사 왜곡을 한다느니 하는 것도 연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임승국 한단고기나 상생출판사 환단고기를 읽으면 이거 읽어도 돼?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을 함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 짜증이 나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고 하면서 감정 상태가 불안정 해지는데, 한문본으로 읽으니까 지명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모르는 글자도 많고 다소 안정된 상태로 읽을 수 있게 되더군요. 모르는 글자를 찾아야 하므로 다소 지겹기는 했습니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환단고기는 땅따먹기 하라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미력하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환단고기가 땅따먹기 안내서가 아니라는 것은 저의 느낌이고, 환단고기에서 기술하는 내용들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교차검증이 힘들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제 3자가 봤을 때는 역사서로 인정받기 힘들다고 합니다. 반면, 교차 검증을 할 수 있는 기록이 타국에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환단고기가 조작이라는 근거 역시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으나 역사 연구의 방법에는 문헌을 위주로 하는 방법도 있고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것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단군이 BC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국사교과서) 라고 기술하였지만 본문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가 BC15세기 경에 시작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BC3000년 무렵의 청동기도 얼마든지 발굴되고 있고 그 이상의 년대로 올라가는 청동기들도 있다고 합니다.

 

BC4세기 무렵에 위만조선이 성립하면서 우리나라 지역에 철기가 도입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었다거나 하는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고조선 영토의 일부였을지도 모르는 연해주 일대에서 BC10세기부터 BC4세기까지 철기가 사용된 유물이 발굴된다고 합니다. BC4세기보다 500년 이상 철기 사용 연대가 올라가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우리나라 역사서들이 극히 빈약하여 우리나라는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중국의 역사 서적에 크게 의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서적을 인용해서 기록한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가 청동기 시대를 BC15세기에 시작되었다(BC1500년 경부터 500년 정도 금석(金石)을 병용하였다 기록, 즉 청동기와 석기를 함께 섰다는 말)고 하고 철기를 BC4세기 이후에 사용되었다고 기술을 하고 있는데 반해,  현재의 고고학 발굴 결과는 청동기의 경우 BC3000 이상의 것도 있고 철기는 BC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발굴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과서의 기술이 고고학적 발굴성과와는 위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대대로 내려오는 중국의 역사가들이 고대 고조선을 건국하고 유지했던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사실은 몰랐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역사서가 너무도 빈약해서 우리는 우리 고대사를 정확히 기술할 수 없다고 하지만, 중국 역시 중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중에 변방으로서의 우리 고대의 역사를 일부 기록했을 뿐, 최근의 고고학 발굴 성과 등을 고려하면 그들 역시 우리 고대의 역사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은 기록할 수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 연구의 방법을 떠나서 고대 국가를 건국한 제왕들이 모두 단군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고 백제나 신라에서도 1년에 두 번씩 단군께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범해 왔을 때 양촌 권근이 참성단에서 단군께 제를 올렸다는 제문이 남아 있고, 영조 임금님은 고려사 중에 단군편과 제왕편을 승지에게 읽으라고 한 기록도 발견했다고 합니다.(복기대 교수, 영조 임금님때까지 전해지던 고려사의 단군편과 제왕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창건시 국호반조문에도 대한이라는 국호를 정하면서 단군을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고대로부터 대한제국기까지 단군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구심점이었다는 것을 뜻할 겁니다.

 

우리의 역사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고대 중국을 살던 당시의 중국인들도 모르던 어떤 사실들을 환단고기는 적고 있는데, 문헌상으로 교차검증이 어렵다고 해서 위서라거나 하는 말로 매도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대 역사가(歷史家), 그들조차 알 수 없던 것들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문헌이 입증하지 못하는 것을 고고학적 발굴 유물이 뒷받침하고 있는데 더더욱 외면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중국이나 기타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현재의 역사서적으로 교차검증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