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시대는 행정의 최고위권자를 투표로 선출하지만 군주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왕(王)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왕도 규모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가령, 중국에서는 황제(皇帝)가 최고의 왕, 왕중왕이라는 뜻으로 쓰였고 그 보다 등급이 낮으면 왕, 대군, 군, 공, 후, 백, 자, 남 등으로 불렀습니다. 고려시대 임금님들이 태조, 혜종, 정종, 광종... 등 쭉 종(宗)으로 이어지다가 몽골이 정복활동을 하면서 원종 이후는 왕으로 바뀝니다. 충렬왕, 충선왕 등등. 왕의 등급이 깎인 것입니다.
진시황이 황제(皇帝)라는 말을 당시 중국을 통치하는 최고위권자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 전에는 주(周)나라 시대인데, 주나라 때에는 왕(王)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나라 이전에는 제(帝)라고 불렀지요. 제(帝)라는 글자가 왕(王)보다 등급이 높은 글자인데 주나라 왕을 제(帝)라고 하지 않고 왕(王)이라 칭한 것은 역성혁명으로 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보다 이전인 신화에 가까운 시기에는 황(皇)이라고 불렀습니다. 3황 5제라고 하지요.
우리나라 역사 중 고구려가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과 구별되는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최고위권자를 뜻하는 말로 태왕(太王)을 씁니다. 태왕이라는 칭호 외에 조선 말기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자칭 황제를 칭하거나 태왕을 칭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즉, 태왕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인세에 가장 높았던 왕을 뜻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황제를 칭하는데 태왕(太王)이라고 칭한 까닭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한다지만, 환단고기가 실제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면, 환단고기에 환인을 천제(天帝)라고 칭하고 있고 환웅(桓雄)을 천왕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은 보통 왕검(王儉)이라고 부르지만, 봉우 권태훈 옹의 진술에 의하면 1900년대 초까지 대황조(大皇祖)라고 하였다 합니다.
고구려에는 유기(留記)라는 역사책이, 신라에는 국사(國史)라는 역사책이, 백제에는 서기(書記)라는 역사책이 각각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도 전하지 않습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전하지요.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백제나 신라도 1년에 두 번씩 단군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삼국간에 갈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단군을 받들었다는 공통점을 생각한다면, 광개토태왕을 태왕(太王)으로 칭한 것이 환인 천제(天帝)와 환웅 천왕(天王), 대황조(大皇祖) 등을 칭하는 글자를 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황제가 자신을 칭할 때 짐(朕)이라고 합니다. 태(太)라는 글자가 짐(朕, 조짐) 이라는 글자와 의미상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하면, 황제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므로 해서 중국과 다른 천하관을 나타냄과 동시에 황제와 동격이거나 그 이상의 지위에 있다는 뜻, 그리고 천제 환인, 환웅 천왕, 대황조 단군 등 세 성인을 존중하여 그 아래에 있다는 뜻으로 태왕(太王)이라 칭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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