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가르치지 않는답니다. 제목 일본이 임진왜란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아래 링크한 영상의 제목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비(耳鼻)야 라는 말을 아시나요? 요즘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간의 국제적 교류가 활발하여 워낙 당양한 어휘가 쓰이면서 그런 말을 잘 안하지만, 우리나라 수출액이 100억불 무렵이던 1970년대 후반까지 이비(耳鼻)야라는 말은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여러분은 이비야의 어원을 아시나요?
옛날에는 전쟁이 나면 군사들이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 확인을 할텐데 그 기준 중의 하나가 적군 목(수급)의 숫자였습니다. 머리를 몇 개 베었느냐로 전공을 헤아렸다는 뜻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 병사들은 전공을 확인받기 위해 바다 건너 보내야 했으므로 코와 귀만 잘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산사람이 죽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코나 귀를 잘랐다고 하네요. 그래서 생긴 말이 이비야 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링크는 하나만 연결하지만 2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qmEdUd4c9b0
전쟁에서는 적군을 죽여야 하므로 전공을 확인하기 위해서 코를 베었다거나 귀를 베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일반적 속성이므로, 칼의 노래를 읽어 봐도 명나라 장수의 전공을 보장하기 위해서 왜병들의 수급(목)을 명나라 장수에게 양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후에 코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고 영상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른 내용들은 명백한 전쟁범죄지요? 500여년 후인 2차 대전 무렵, 일본이 난징으로 진격해서도 전쟁범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00년 전의 전쟁이나 500년 후의 전쟁이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명분 외에 거대 범죄를 수반했다는 것이 공통점일 겁니다. 그런 행위들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유튜브를 보게 되면 역사 관련 컨텐츠를 최소한 한 두 개는 봅니다. 임진왜란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임진왜란때 일본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살아오면서 읽은 책 등에서 설명한 것을 보아서 대충 알고 있었기에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무신경했을텐데,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제목을 보고 클릭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 영상 2편을 보시면 재미있는(?) 말도 나옵니다. 한국인은 80년이나 된 일을 기억한다고? 하는 어떤 광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말에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풍우에 막혀 실패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의 책사?라고 할 수 있는 겐지가 조선을 침공한 명분을 말하면서 300년 전에 고려와 몽고가 일본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이다 라는 논리를 전개했답니다. 우습지 않나요? 자신들은 300년 전 일도 기억을 하면서, 더구나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공은 실패하여 일본 본토에 닿지도 않았는데, 한국인은 80년이 지나면 잊는다는 뜻이었을까요? 이런 내용을 미국이 알게 되면 일본이나 미국이나 서로가 즐거운 일이 아닐 겁니다. 1945년에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것은 미국이니까요.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 라는 책이 있습니다. 김상태라는 분이 쓰신 책인데, 해당 책에는 士農工商(사농공상) 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합니다. 한국에서 士(사)는 선비, 즉 문사(文士)인데 일본에서는 무사(武士)라는 차이를 설명합니다. 일본인 그들에게 살상은 죄의식을 느끼는 일이 아니다 뭐 그런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책에는 士農工商(사농공상)에서 왜 일본에서는 그 사(士)가 문사가 아니라 무사인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일본에서는 사(士)가 무사일까요? 여러분들은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어떤 사회 어떤 국가에서나 질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질서가 없거나 또는 있던 질서가 무너지면 전투와 전쟁, 갈등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전까지 갈등은 계속되어 디립다 싸우게 되지요. 역사 속에서 발생한 수 많은 정변이나 반란, 국가간 전쟁 등이 모두 질서 확립이나 유지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일본은 누천년간 지진과 화산 분화, 해일(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에 자주 노출이 되었습니다. 잠깐 땅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혼란으로 빠져들게 하는 대규모 지진이나 화산 폭발, 쓰나미 등을 말합니다.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공자왈 맹자왈 운운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요?
과학과 기술이 엄청 발전한 현대에도 자연재해는 무서운 일입니다. 엄청난 재산피해는 둘째치고 인명피해도 상당합니다. 현대와 같은 과학이나 기술이 없던 시대에 발생한 거대 지진이나 화산분화 등의 자연재해는 일본을 살았던 사람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로 빠져들게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무질서와 공황상태를 재빨리 일소하여 질서를 확립하는 데는 공자나 맹자보다는 칼이 보다 효율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농공상에서 사(士)는 일본의 경우 무사일 수밖에 없었지 않나?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말이 세계적인 명언이 되었는데 일본에서만큼은 예외가 된 것입니다.
온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이 서로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어느 날 해외의 친구에게 온 메일을 열었는데 화살이 모니터 속에서 쏘아져 나온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칼이나 창이 불쑥 튀어 나온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메일이나 편지 등의 소식은 문자나 음성 등으로 주고 받으니까요. 일상 서민들의 소식뿐만 아니라 각국 지도자들의 발언도 이제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세월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웃 국가에 난민이 발생하여 자국으로 오는 경우 기관총으로 쏴 죽인다는 발언을 총리급의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곳이 일본입니다. 아시아의 리더(Leader)를 자부하면서...
요즘은 GDP로 한 나라의 경제력을 평가하지만 일본이 한창 세계 경제를 주름잡을 시절에는 GNP(1인당 국민소득)로 측정을 했습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의 1인당 GNP는 500불 정도였던 것으로 압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50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경제력 면에서는 바닥을 헤매던 수준이었지요.
어쩌면 일본은 현대적 과학 기술을 보유한 채 아직까지 중세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임진왜란도 가르치지 않고 2차 대전의 가해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고 해마다 원폭 피폭국임을 기억하는 행사를 하는 반면, 독도도, 쿠릴열도도 센카쿠 열도도 다 일본 영토라고 우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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