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된 그림에 20대 남녀가 낙서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전시된 그림 앞에 페이트 통과 붓 등이 놓여 있어 그 사람들은 참여예술로 생각했다면서 그림을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그림은 존 원이라는 유명화가의 작품이며 작품의 값어치는 한화 5억원 정도라고 합니다.
www.youtube.com/watch?v=EZIiaLGR_lU&list=TLPQMzAwMzIwMjFs-qgj2WllGA&index=4
뉴스를 보고 살짝 웃음이 나왔습니다.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데도 그러네요. 한편 웃음이 나면서도 또 한편 작품을 그린 화가는 또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화가의 입장에서는 무척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상황이지 않을까요? 경우에 따라 분노를 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된 그림이 유명화가가 아니라 무명화가의 작품이어서 작품의 가치가 캔버스나 페인트 값보다 훨씬 적은 단돈 5만원이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작품에 붓이나 페인트를 들어 덧칠을 하는 것은 화가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며 문명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소양없는 행위로 여기니까요.
뉴스 영상을 보시면 작품의 가치는 둘째치고라도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안내문구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대형작품임에도 작품에 대한 설명은 A4 용지 정도의 크기에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었던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작품에 손대지 말라는 문구도 있었고요. 크기가 다른 물건이나 형상이 여러 개 있으면 사람의 눈은 큰 것을 우선 보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일 큰 것을 보고 그 다음 큰 것을 보고 순차적으로 시선이 옮겨간다고 합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담은 A4 용지보다 훨씬 큰 작품이니 아마도 두 남녀의 눈에는 작품설명보다 그림에 우선 눈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림 앞에 어지러이 놓여진 페인트 통들과 붓들에게도 시선이 갔겠지요.
20대 남녀라는 두 사람의 관계는 모르겠습니다. 남매인지 친구인지 또는 연인인지 부부인지. 그러나 상황을 보았을 때, 남매나 부부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전시된 그림을 관람하는 것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도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친구 또는 연인이겠지요. 서로간에 여사친이나 남사친도 아닌 친구. 즉, 연인에 가까운 친구.
사랑의 낙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데 웬 낙서? 싶은데, 사람들이 그러더만요. 사랑질이 결실을 맺을 때도 있고 낙서질로 끝날 때도 있고, 결실을 맺기 전에 낙서질을 하는지 아니면, 낙서질을 하다가 또 결실을 맺기도 하고 그러는지 뭐 어쨌거나 사람들이 그래요.
역사가 기록되기 전에도 예술은 있었습니다. 알타미라 동굴 변화나 울진 반구대 암각화 같은... 그 시절에도 사람은 사랑했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린 그림에 값을 매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술은 그저 생활의 일부였지요. 그러나, 수 천 수 만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작품에 값이 매겨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같은 크기의 그림이라도 유명화가의 작품은 억 소리가 나는 값이 매겨지기도 하고 무명화가의 그림은 쳐다도 보지 않게 되기도 하지요. 근대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 한 장 이상의 그림을 그려봤을 것임에도, 그리하여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림은 생활 곳곳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년기가 되면 그림은 먹을 수 없다는 것 때문인지 외면받기도 하고, 또 한편 먹지도 못하는 것을 그리겠다고 남루한 꼴을 하고 붓과 페인트를 잡고서는 고뇌하는 삶도 또한 있기는 하지요?
예술이 전문화 된 세상입니다. 전문화된 예술은 적지 않은 사전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도구 역시 필요로 하기도 하지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또 고뇌하고 그리하여 작품을 완성한 화가는 작품이 훼손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척 당황했을 것이지만, 그러나,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 때문에 어쩌면 복잡한 심정일 것으로 추측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생활의 일부였던 예술이, 이제는 전문화가 되어 생활과 분리되어 버려 값으로 매겨지는 그런 세상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 사랑이라는 낙서질도 첨예화된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인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에궁 모르겠어요.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인간과 예술 그리고 사랑이라는 뭐 그런 관점에서 나중에 혹 상기가 되는 사건이 될지, 아니면 발랄한 청춘남녀가 유명화가가 그린 고가의 작품 가치를 훼손한 단순한 사건이 될지. 인간과 예술 그리고 사랑이라니 아무래도 지나치게 너무 나간 것 같지요? ㅡ,.ㅡ
옛날 삼류영화 평을 보면 그런 말도 있었어요.
누가 저 청춘남녀를 사랑에 눈멀었다고 하겠는가?
그러게 청춘남녀는 돈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보다 사랑에 눈이 잘 먼다고 하기는 하더군요. 사랑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안보이게 되기도 한다기도 해요. 사랑하면 모두 3류가 되는... 왕족이던 귀족이던 평민이던 거지던 사랑에 눈 멀면 다 그냥 3류가 되요. 3류가 되어 보지 못한 자 1류라고 하지 말라.
묘한(?) 사건을 보도한 뉴스 덕분에 존 원이라는 화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잠깐 검색을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실험, 자유, 저항 이라는 타이틀이 보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power)은 지식(knowledge)과 행동(action)을 결합할 때 나온다.” 이 단순하면서도 단순치 않은 명제를 온몸으로 내보인 또 한 명의 아티스트는 존 원이다.
라는 설명도 보이네요. 어느 시기 어느 곳이던지 사랑만큼 더 크고 가혹한 실험은 없기도 하지요. 로미오와 쥴리엣, 프리티 워먼(Preety Woman),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 여러분 혹시 12사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세요? 너무 처참해서... 그러게 사랑은 때로 몹시 가혹하기도...
에구,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ㅡ,.ㅡ
포스트 첫 단락에 적은 사건 하나를 가지고 숱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네요. 팩트는 첫단락에 적은 것이 전부에요. 이 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는 모릅니다. 워낙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이므로 사람들에게 기억은 고사하고 그냥 스치는 사건일 수도 있겠지만, 할일없이 놀면서 뉴스를 보고 짱구를 굴리는 제게는 참으로 묘한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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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낙서 사건에 대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작가는 그림의 복원을 원한다고 하였다네요. 그리고 해당 사건은 착각에 의한 그림 훼손이라는 내용으로 해외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www.youtube.com/watch?v=ZY4CHI9Qb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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