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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라고 쓰고 임나로 읽는다 (임나일본부론의 핵심 : 이덕일)

참그놈 2021. 8. 30. 19:48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제가 배운 국사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억합니다. 한사군은 있었고요. 낙랑, 대방, 임둔, 현도 이러면서 한사군을 외우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전혀 언급이 없었으므로 임나일본부라는 말 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 임나일본부라는 말을 어떻게 듣게 된 것 같은데 저 자신이 역사라는 것에 대해서 그닥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던 시기라 듣는둥 마는둥 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좀 더 먹어서인지 역사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피상적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게 된 것은 임나일본부라는 주장 또는 학설이 단지 오랜 옛날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 하기 위해 억지와 무논리로 조작된 이론이며, 2021년 현재에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의 이론적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개 서민에 불과하므로 또 역사에 무지한 세월을 살았으므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원문사서를 읽어보았다거나 한 적은 없어서 누군가 임나일본부를 사서를 인용하면서 긍정하는 말을 제가 듣는다고 해도 반박할 지식이나 뭐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이덕일 역사의 창TV에서 임나일본부 라는 망설에 대한 무논리, 맹점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관련 사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런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가운데 아래 영상이라도 한 번씩 보셨으면 좋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5lC6EQrfFZg&list=TLPQMzAwODIwMjHdR5_z92lRWA&index=3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략의 내용만 들어도 허구요 창작이고 날조라는 것을 사실 대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일본서기를 근거로 임나일본부를 제시하고 있다지만 북한학자 김석형 이라는 분의 삼국 일본열도 분국설이 더욱 타당성이 있는 학설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논문을 제가 읽어본 것은 아니고 개략적인 내용만 들었습니다. 왜가 한강 이남을 장악하여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에서 성장한 국가들이 일본에 건너가 여러 분국들을 세웠다는 주장입니다. 역사 전문가도 아니면서 특정 학설을 지지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는데 일개 서민에 불과하면서도 김석형 이라는 북한 학자의 설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에 남아 있는 고대 문서가 적거나 없다.

아시다시피 한반도는 중국이나 만주 등지에서 명멸했던 왕조들과 숱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남아 있는 역사서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적지 않은 역사서를 일본으로 가져가거나 또는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누천년 동안 외부의 공격이나 침략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일본 자체의 전국시대 등이 있어서 내전의 시기는 있었지만 2차 대전 때 핵폭탄 2발을 두드려 맞은 것 외에는 외적으로부터 이렇다 할 본토 피해는 당한 적이 없지요. 본토가 외국의 공격이나 침략을 받은 적이 없는데 남아 있는 역사서는 일본 역시 거의 없습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요? 물론 일본에도 일본서기, 고사기, 속일본기, 신찬성씨록 등등의 문서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할 문서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인구는 국가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더욱 그러했지요. 삼국연의만 읽어봐도 각각의 주요한 군현에 대해서 인구가 얼마였다거나 어떤 물산이 풍부했다거나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무려 2000여년 전의 일인데 숱한 전쟁을 치른 중국에 그 문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면 본토 피해를 거의 받지 않은 일본으로서는 한강 이남의 인구나 물산 지리 등에 관한 문서들이 일본에 상당수 남아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식민지 근대화론 이라는 것을 만들어서는 조선은 무식하고 무지하고 거지떼들만 득시글 거리는 나라여서 일본이 개화를 시켰다는 망발을 하는데, 그런 조선도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서 오대산 사고 강화도 사고 태백산 사고 등을 만들어 기록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런 노력을 기울였다는 기록이 있나요? 제가 알기로 그런 사고(史庫)가 조선시대에 다섯 곳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려 5중 백업을 한 것입니다.

 

반면,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사(士)는 선비 즉 문사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무사(武士)라고 한답니다. 역사나 철학과 같은 문학은 고사하고 실생활이나 행정 등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일본인들에게는 무리였을 수 있습니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시기가 위 영상에서 말하는 근초고왕 때라고 알고 있습니다. 문자조차도 없었을 수도 있는 일본이 진정 고대로부터 강대국이었다면 외부의 침략을 거의 받지 않았던 일본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역사 뿐만 아니라 각종 행정관련 문서나 문학 등 하다못해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라도 기록물들이 적지 않게 또는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일본의 조선술과 항해술

저는 일본의 조선술과 항해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임진왜란 때 조선의 판옥선에 비하면 일본의 배는 가볍고 빠르긴 했지만 충돌시 쉽게 부서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6세기에 이르러서도 중국에 가기 위해 신라의 배를 빌려타고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임진왜란이 1592년에 발발했는데 그때까지도 일본의 배는 그닥 튼튼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 을돌목에서 12척의 판옥선으로 왜선 133척을 깨부순 그런 이야기를 함께 고려해보면 일본은 한반도 남해의 조류 특성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는 말이 됩니다. 4세기부터 몇 백년간 임나일본부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면 인력이나 각종 조공물자 등을 실어나르기 위해서 바닷길을 숱하게 왔다리갔다리 했을 것인데, 더구나 호남은 곡창지대였습니다. 김해에도 넓직한 평야가 있어서 금관가야의 생산력은 높았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남부의 여러 섬들과 조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을돌목에서 12척 판옥선에 왜선 133척이 왕창 깨진 것은 남해안의 조류 특성에 관한 기록이 일본에는 전혀 없다는 말이고 임나일본부는 후대의 망상이나 조작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배들은 바닥이 오목하여 빠르기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주로 일본 근해나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고기나 잡고 뭐 그랬다는 말이지요. 장거리 운항은 해 본 적도 없다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본이 임진왜란보다 무려 1000년이나 전에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배로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날랐다? 차라리 사자가 풀을 뜯어먹는다고 하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하여 일본 열도로 쫒겨간 이후에 끊임없이 독도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임나일본부 라는 것이 일본 망상학자들의 주장대로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면, 그리고 자신들의 터전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쫒겨난 것이라면 그걸 되찾기 위해서 얼마나 불철주야 조뺑이를 까면서 조사도 하고 염탐도 하고 그랬을 것 아닌가요. 그런 관련 기록 있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임나일본부는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짐작이 되겠네요.

 

 

3. 가야의 철기문화와 기마병

가야는 철기문화가 융성했던 나라였습니다. 거푸집 등과 같은 관련 사적도 발굴이 되고 했습니다. 또, 고구려는 기마병력을 보유하고 있던 국가이기도 했습니다. 김유신이 활을 쏘고 말을 달려 자신이 쏜 활보다 말이 늦게 당도한 것으로 착각하여 말을 죽였다는 이야기도 우리에게는 전합니다. 어떤 군대가 대외 진출을 하면서 해당 지역을 장악하면 더 이상 정찰이나 조사, 탐구 등을 그치나요? 세상 천지에 그런 병신같은 군대가 어디 있나요. 정상적인 군대라면 장악한 지역보다 훨씨 더 먼 지역을 정찰하고 탐문하고 조사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 일본이 고구려의 기마병 등에 대해서는 몰랐다? 병신들 육갑했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잠깐 딴 이야기지만 군대의 대외 정찰이나 탐색, 탐문 조사 등의 그런 관점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한무제를 병신으로 만드는 학설이 또한 한사군 재 한반도설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우스워요. 한강 북쪽에서 딱 멈춰섰다니까. ㅋㅋㅋ

 

일본이 일본 망상학자들의 주장대로 가야를 임나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철기가 융성한 가야 지역을 장악했다고 하면 당연히 말을 확보하고 기마병력을 생성하고 확충했을 것입니다. 고대 전투에 있어서 기마병은 전차부대와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기문화가 융성한 지역을 장악하고도 기마병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는 말이 됩니다. 가야 옆에 있었던 신라조차도 말의 기동력을 중시했는데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어느 날 그냥 왕창 깨져서 일본 열도로 쫒겨갔다? 개가 다 웃겠네요. 진짜...

 

또 다시 기록물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일본이 외침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한강 이남에 세웠다면 자신들의 정찰이나 탐문기록이 티끌만치라도 남아 있어야 정상 아닌가요? 한때 제국주의적 팽창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본도 그 기세에 편승했었지만, 제국주의 팽창의 시기 이전에는 힘있는 나라가 인접한 국가를 침략하여 복속시키는 것은 제국주의 팽창의 시기보다 더욱 상식이었습니다. 중국사만 보아도 5호 16국이니, 오대 십국이니 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있고 서구에도 로마로부터 쭉... 그렇게 서로를 침략하면서 살았지요. 알렉산더 대왕, 투르크 제국 등도 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잖아요.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이 급속히 증가하고 여유가 생기자 인간의 이지 역시 발달하여 인간이 인간 스스로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에 제국주의적 팽창이나 확장을 하던 그런 인간같지 않았던 무식한 시기가 있었다는 자기반성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만 꿈을 못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직도 독도 도발에 쿠릴열도 댜오위다오 등으로 영토분쟁을 일삼고 있고 역사왜곡이나 조작 그리고 로비질은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오랫동안 장악했는데 말이나 철기는 활용할 줄 몰랐다? 일본서기 뭐 읽어본 적도 없지만 혹시 개가 풀을 뜯어먹었다는 그런 이야기는 없나요? 나오려는 아기를 다시 들어가라고 했더니 들어가더라는 신공왕후? 뭐 그런 이야기도 있다고 하던데... 그러고보면 일본서기라는 책은 참으로 신비막측한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면서...

 

역사서를 꾸준히 읽은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어서 자세한 근거는 대지 못하지만, 일개 서민에 불과한 저도 위와 같은 몇 가지 상식만으로도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말은 엉터리나 진배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역사를 자주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을 것이라고 하려니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ㅡ,.ㅡ  (위 영상 외에도 가야특별전에 관한 이덕일 소장의 영상이 더 있습니다.)

 

한 가지 더욱 우스운 것은, 위 영상에 나오는데, 이덕일 소장은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와 재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김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 라는 책을 펴냈는데, 제목만 봐도 임나일본부가 허구가 아니라는 식으로 책의 내용이 서술될 것처럼 보입니다. 이덕일 소장이 책 내용 곳곳을 지적하며 임나일본부를 긍정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며 김현구 교수를 식민사학자라고 평했습니다.(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참고) 그것을 계기로 김현구 교수가 이덕일 소장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 재판정에서 김현구 교수가 자신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모른다고 말했답니다. 역사 쪽으로는 문외한인데도 코미디가 따로 없어요. ㅋㅋㅋ 그럴거면 교차검증이라는 말은 왜 있고, 환단고기는 어쩌자고 그럼 위서일까요.

 

아니면 차라리 일본 내부에 있던 임나일본부를 설명을 하던지. 일본서기나 고사기 등 일본 사서만 읽었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일본서기나 고사기 등 일본 역사서만 주구장창 읽고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바다 건너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여러 나라가 인접해 있었다고 하면서 가야(임나) 그 주변에 있었던 나라의 역사나 역사서는 전혀 모른다? 그러고선 가야가 임나라고...  또 그러고선 가야(임나)가 있었다는 것이 참일까? 거짓일까? 하는 책을 쓴다는 말이에요? 읽어본 적도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뭐 그런 뜻일까요? 역사에 문외한인 일개 서민이 봐도 쌩코미디에요.

 

인터넷에 김현구 임나일본부 학자설 이라는 나무위키 문서도 있더군요. 김현구 교수의 입장을 대변하고 김현구 교수를 비판한 이덕일 박사를 비판하는 문서이던데, 그 문서를 작성한 사람은 김현구 교수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모른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썼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이런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해외 여행을 너무나하고 싶은데 형편이 되지 않아 해외여행을 한 것처럼 보고 들은 정보를 기초로 여행기를 소설형식으로 썼습니다. 그 사람이 죽고 그 아들이 부친의 유품 속에서 여행기를 발견한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해외 여행을 다 다니셨어?" 싶어 아버지가 갔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으려 하면 그 행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물며 그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 행적을 추척하려 여행기에 나오는 해외 여행지 각각을 찾아가 보지도 않은 채 우리 아버지는 해외 여행을 많이 하셨다며 주변에 알리는 것은 정당한가요? 김현구 교수의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 라는 책이 그런 형국이지 않습니까.

 

 

우스개는 우스개로 넘기시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은 오랫동안 중국과 조선 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오랑캐였고 야만적이었다는 것인데, 그런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우월감을 갖자! 뭐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 문물교류가 원활하지 못하던 시기가 너무 길기도 하였고,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는 대한해협이라는 바다가 놓여 있어서 그러한 교류는 더욱 드물었을 것입니다. 먼바다도 아니고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나라들 사이도 좋지 않은데 그 보다 거리가 먼 중국과의 사이는 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대적 공업기술은 누 천년에 걸친 그런 장애를 극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근대적 공업기술은 물질적 여유나 풍요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군사력의 증강이라는 양날의 칼이 되기도 했습니다. 누 천년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기억이 일본인들의 가슴에 사무쳤는지 일본은 대동아공영을 외치면서 난징을 쳐들어가 수 십만명을 까닭없이 죽이기도 했고 사람 200명을 각 100명씩 줄지어 세워서는 장교 두 사람이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칼로 자르느냐는 내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팽창을 온 세계가 참회하고 있는데 일본만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그런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 하루 빨리 미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영상 내용을 제외하면 모두 일개 서민의 근거 희박한 뇌피셜입니다. 그냥 재미삼아 보시고 그럴 듯하다 싶으시면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