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 3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 파일입니다.
제가 업로드 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1은 원문과 함께 혁거세와 알영 두 분을 성인으로 추앙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아마 시중 서점에서 삼국사기 역주본을 구입해서 읽었다면 혁거세와 알영 남녀 두 분이 함께 한민족의 고대에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무식해서 역사서를 꾸준히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살면서 보게 되는 각종 영화나 여러 잡다한 내용들을 보면서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여성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대강의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다니... 시몬느 보봐르가 제 2의 성(性)을 쓰기 전에 그녀가 삼국사기를 읽었다면, 어쩌면 그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몹시도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놀라운 내용 아닐까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3을 업로드 하면서 의구심이 들었던 것은 아래 스크린샷에서 보시는 것처럼, 신라가 부진이라는 관중 지방의 나라와 교류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스크린샷에서 보이는 주석에도 적었지요?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에는 78개의 소국이 아웅다웅하던 지역으로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설명을 하는데, 신라본기 1에는 6개의 조선 유민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하고 햇수로 400여년이 지났습니다. 고대에는 발전속도가 빠르지 않았습니다. 농경을 기반으로 고대사회는 그 발전 속도가 현저히 느렸지요. 그럼에도 신라는 무려 관중 지역에 성립한 국가와 교류를 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드라마 허준에서 한양에서 연경(북경)까지 왕복하는 거리가 7000리이며 그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은 여정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보다 1000년도 더 전에 신라에서 중국 관중지방에까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십니까? 삼국연의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관중 지방이 어디인지 아실 겁니다. 설령 바다를 통해 중국에 갔다고 하더라도 그 항구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산동이나 북경 근처로 상정한다고 해도 관중까지는 왕복 수 천리가 되는 곳이 바로 관중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신라와 교류가 있었다...?
아래 스크린샷 역시 업로드 한 파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가야도 중국 남제와 교류가 있었다고 하네요. 가야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 끼어 있다가 결국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가야조차도 중국의 남제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가야가 나라의 규모는 크지 않았을망정 활발한 대외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필 가야사가 문헌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임나일본부의 표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반도에 성립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여러 나라들이 78개의 소국들 간에 아웅다웅하면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대륙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는 반증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조선술이나 항해술이 고대에는 첨단기술이었을 수 있는데, 그런 첨단 기술을 고대의 일본에 이전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학자 김석형이라는 분의 삼한삼국 일본열도 분국설이 훨씬 더 납득할만한 주장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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