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5번째 구는 운등치우 노결위상(雲騰致雨 露結爲霜) 입니다. 구름이 올라가서 비가 되고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1년이 4계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봄과 가을에는 태어나고 성장하고(生長) 가을과 겨울에는 거둘어들이고 움추린다(收藏)는 것을 압니다. 온도나 습도 변화를 비와 서리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초목이 변화하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혹시나 적도부근에서 천자문 같은 글이 지어졌다면 운등치우 노결위상(한자생략) 같은 구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중남미 마야 문명은 적도와 가까운데 고도의 천문관측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 1492년 콜럼버스가 처음이지요? 당시 유럽의 천문학보다 더욱 앞서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천자문 같은 글은 전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천자문의 네 번째 구는 운여성세 율려조양(閏餘成歲 律呂調陽) 입니다. 1년을 몇일로 할 것인가? 태양력을 쓸 것인가, 아니면 태음력을 쓸 것인가? 그런 고민을 고대인들이 했을 것이고 결국, 고대인들이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다는 한계 때문에 윤달을 두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쓴 천자문 젓번째 구 천지현황 우주홍황에 대해서 쓰면서 해당 구를 인식하고 체계화하고 추상화하여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구를 얻는데 대략 400만년이 걸렸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류의 기원이 4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이 운등치우 노결위상(雲騰致雨 露結爲霜)하여 초목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전에 역법에 관한 구가 먼저 천자문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윤여성세 율려조양은 네 번째 구이고 운등치우 노결위상은 다섯 번째 구입니다. 천자문 후반부는 수양이나 일상생활을 많이 묘사하고 있지만 앞부분은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아득한 시공간을 표현하고 있고 역사인지 전설인지 또는 신화인지 구별하기 힘든 용사화제 조관인황이라는 구가 10번째 구가 됩니다. 즉, 천자문을 후반부부터 보게 되면 점점 더 추측하기 어렵고 시간적 간격도 아득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천자문에 관한 포스트를 쓰면서 앞에서부터의 순서와 뒷부분에 천자문 후반부로부터 몇 번째 구인지 적어놓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3황이나 5제가 있는데, 중국 사마천의 사기는 오제로부터 역사기록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3황 중 한 명은 복희씨인데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3황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역사가 아닐 경우 그 시간적 범위를 특정하기는 더욱 힘듭니다. 인간의 인식이 발전하여 천지현황 우주홍황으로 시작되는 천자문을 작성하였다고 하지만 천자문 11번째구인 시제문자 내복의상까지는 정확한 역사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날씨의 변화보다 천문현상을 관찰한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앞에 한래서왕 추수동장이라는 계절의 변화를 인식한 부분은 나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삶이 유목형태였는지 아니면 정착형태였는지 그도 아니면 부분 정착형태였는지 모릅니다. 다만, 3황이 살던 시대 이전이라면 만리장성조차 없던 시절입니다. 문자를 만들고 옷을 입었다는 시제문자 내복의상도 3황이 살던 시대를 표현한 용사화제 조관인황보다 나중에 나오므로 만약이지만 부분적으로 정착을 하는 시기이거나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면 운등치우 노결위상(雲騰致雨 露結爲霜)은 농사와 무척 관련이 깊은 구가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벼농사를 지은 곳은 한반도라고 합니다. 소로리 볍씨 외에도 여러 곳에서 벼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6000년 전쯤(?)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5세기 무렵에 이미 벼농사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 콩이나, 조, 보리 등도 길렀겠지요. 중국의 역사를 대략 5000여년이라고 하는데 16000년 전에 벼농사의 흔적이 발굴되었으므로 그 보다 훨씬 더 전에 농사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1만년 이상... 물론 뒷부분에 과진이내 채중개강 이라는 구가 나오므로 농사가 더 나중에 시작된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진이내 채중개강은 고대를 살던 사람들이 가장 중하게 여긴 작물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운등치우 노결위상 다음에 이어지는 일곱번째 구가 검호거궐 주칭야광 이라는 구절인데,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생산력이 급격히 발달하고 계급이 분화되며 또 부족간 전쟁이 생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천자문이 고대에 남아 있던 기록들을 근거로 시간적 순서로 배열을 한 것이라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 물론 당시에는 오스트랄도 피테쿠스는 몰랐겠지요. - 매일 밤 하늘에 뜬 별을 보고 잠들어서 다음날 또 밝은 해를 보게 되기를 400여만년간 계속하면서 어느 때부터 천문현상을 관측했는지는 알 길이 없기는 합니다만, 윤달을 지정하여 1년을 확정할 수 있을만큼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하고 계산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농사 짓는 법을 알게 된 것이 지금으로 부터 16000여년 전이라면 그 16000여년간 인간은 천문 관찰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고, 그 이전 몇 천년? 또는 몇 만년?이 될 지 모르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천문을 관찰했다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천문현상이 어떤 의미가 있었길래... 춘추나 삼국사기 등을 읽어보시면 꼬박꼬박 일식이 있었던 날을 기록하고 또 각종 천문현상을 기록하고 있는데, 드라마 세종대왕의 어느 회차를 보시면 일식날 세종대왕께서 하얀 예복을 입고 하늘에 사죄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세종대왕만 그런 의식을 치른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아마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측을 하는데, 조선왕조가 100여년 전에 임시정부를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니 몇 만년간 천문현상에 대한 인식은 고대를 살았던 그들과 같거나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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