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천자문

천자문은 중국(China)의 역사일까?

참그놈 2021. 1. 14. 15:32

천자문(千字文)은 옛날에 아이들이 한문(漢文)을 처음으로 배우던 학습교재였습니다. 해석을 보면 천자문 일부에서 중국의 유명한 장군들이나 학자 등이 등장합니다. 해설을 그렇게 하니까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었지요. 또,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 고사 등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또 고대 중국에서 지어진 것이므로 중국의 역사를 기초로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고사와 인물 몇 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천자문을 반드시 중국의 역사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천자문 해설서를 처음 읽은 것이 1993년입니다. 그 이전에도 한석봉 천자문 같은 책이 집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만, 한석봉 천자문은 한자를 크게 적고 뜻과 풀이만 적혀 있어서였는지 몇 번 뒤적인 기억은 있지만 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읽은 천자문 해설서는 혜원출판사 이민수 역 천자문입니다. 별로 두껍지 않았지만 천자문을 한자 학습을 위해 단지 글자 1000자를 모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당황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성서(Bible)도 읽던 때였는가 그랬는데 창세기 부분과 천자문 앞부분의 내용이 겹치면서 "천자문이 이렇게나 광활한 내용이었어?" 하는 생각을 다 했었지요.

 

어쨌거나 기전파목 용군최정, 맹가돈소 사어병직, 가도멸괵 천토회맹 같은 중국(China)의 역사나 인물과 겹치는 몇 구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덕건명립 형단표정, 망담피단 미시기장 등을 해석하면 외국에도 그에 상응하는 경구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봉팔현 가급천병 같은 구절도 제가 읽은 해설서에는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옛날을 기준으로 하여 어떤 종족이나 부족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고대로 올라갈수록 후손들이 번창하여 마을을 이루고 군사조직화 되는 것은 상식입니다. 중국(China)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궁전반울 누관비경이나 우통광내 좌달승명, 고관배련 늑비각명 등등의 구절도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만 해도 여러 왕조가 있었고 궁궐이 있었습니다. 서양에도 왕조가 있었고 궁궐이나 기타 관직들이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라거나 부르봉 왕가 등의 가문을 아시지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매일 맛난 음식에 술만 먹었냐 하면, 그게 아니라 저술 활동도 하고 외교, 정보 수집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도 아니면 중앙아시아나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천자문이 한자로 쓰여졌고 중국에서 저작되었다고 하지만 반드시 중국의 역사라고 이해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다시, 가도멸괵 천토회맹 같은 경우도 세계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그와 유사한 사례들 세계 곳곳의 전쟁사에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내걸은 명분이 정명가도(명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길을 빌려달라)였습니다. 물론 천자문이 훨씬 이전에 지어지긴 했지만, 천자문이 지어지기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요? 맹가돈소나 사어병직, 기전파목 용군최정 같은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자문이 한자로 지어졌고 옛날 중국에서 지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적용되는 공통의 모습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헤로도투스가 역사를 지었고, 케이사스(시이저), 롬멜, 넬슨 같은 명장들도 있었지요.

 

말은 있고 문자가 없는 종족이나 부족도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AD. 2020)도 문자 없이 사는 부족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창세 신화가 없는 곳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곳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중국의 경우만 봐도 역사는 후대로 가면 갈수록 고대의 역사가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이 된다고 합니다. 가령, 중국(China) 주(周)나라 때는 그들 역사나 신화의 초기에는 우임금을 최고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를 더 거슬로 올라가 요순이 추가되고 더 시대가 흐른 뒤에 3황 5제가 추가되었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불과 100여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24시간이 걸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걸어다니고 말을 타고 다닐 때라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과학과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상업화 되었고 다국적 기업이 등장한 것도 오래되었습니다. 만약이지만 지금 현재(AD2020) 문자가 없고 창세신화가 없는 부족이나 종족이 호봉팔현 가급천병 같은 구절처럼 계속 후손이 번창하고 문적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창세신화도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 좀 희박해 보이기는 합니다. 기업활동이 확대되어 온 세상이 생산현장화 되었고 생산력이 월등한 곳이 그보다 열악한 지역을 통제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천자문을 반드시 현재의 중국(China)과 짝맞추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천자문의 저작시기입니다. 보통 천자문은 중국 남조의 양나라때 주흥사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 천자문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종요가 지었다고 합니다. 삼국연의에도 종회가 나오는데 종회의 아버지가 종요라고 하더군요. 종요가 지은 천자문을 주흥사가 일부 수정을 했다고 해야 하나? 뭐 그렇다고 합니다.

 

하나의 중국(China)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근거가 중국 한(漢)나라 라고 합니다. 한나라가 성립하기 이전에는 잠깐 진나라가 있었고, 진나라 이전에는 전국시대였고 전국시대 이전에는 춘추시대였습니다. 이는 모두 후대에서 구분한 시대구분이지만 고대로 올라갈수록 역사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애매해집니다. 역사를 전공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고대사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하게 된 생각입니다.

 

진시황이 통일전쟁을 할 때 적지 않은 유민들이 만주나 한반도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고조선과 한(漢)나라와의 전쟁 무렵에도 이주민이 있었고, 오호십육국 시대 등 수백년 동안 만주나 한반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주민들을 당시 만주나 한반도에 터를 잡고 살던 우리 선조들이 그 유민들을 다 받아들이고 땅을 나눠주어 살게 합니다. 이는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적도 아니고 남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친연성이 강했다는 말이지요.

 

종요가 천자문을 지은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魏)나라는 285년엔가 망합니다. 난리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을 모두 원래 있던 지역으로 되돌린다면 고대 중국의 역사가 반드시 중국만의 역사일까요? 춘추좌전을 읽어봐도 곳곳에 이민족들이 등장합니다. 융(戎)족은 고대 중국 전역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현재의 중국(China) 영토는 고대에는 여러 민족들이 곳곳에서 살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화하(華夏)족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호봉팔현 가급천병하게 되고 점점 더 그 세가 커지면서 융(戎)족은 서쪽으로 쫒아내고 이(夷)족은 동쪽으로, 만(蠻)족은 남쪽, 적(狄)족은 북쪽으로 밀어낸 것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것이 진(秦)나라이고 그 다음이 한나라입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근거를 한(漢)나라에서 찾는다고 하는데, 한(漢)나라가 성립하자마자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이 곧바로 생겨났을까요? 그리고는 당시 중국 영토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중국을 외쳤을까요? 중국(China)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세계에서 가장 역사 문헌이 많이 남아 있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것은 진시황인데 왜 한나라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의 모토가 되었을까요?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는 오랑캐라는 인식이 있다고 합니다. 화하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周)나라때 제후국이 된 나라 중에서도 이민족이 제후가 된 경우도 있다고 하고, 즉, 중국 삼국시대에 종요가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중국만을 근원으로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China)의 역사를 부정한다거나 중국을 비하(?)한다거나 하는 뜻으로 쓴 것은 아닙니다. 또, 동이족은 우월했다? 뭐 그런 뜻으로도 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천자문을 읽으면서 이건 중국만의 역사로 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무렵, 저는 한단고기라는 책조차 모르고 있던 때입니다. 한사군이 북경 근처에 있었는지 평양에 있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논쟁은 더더욱 모를 때이지요. 다만, 세월이 흘러 저 나름으로 생각을 해 보건데, 종요가 지은 천자문은 문명을 이룬 곳이라면 어디든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어떤 모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천자문을 보고 "신이 내린 글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