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천자문

천자문을 지은이(저자)는 누구일까?

참그놈 2021. 1. 15. 06:29

보통 천자문을 검색하면 주흥사 천자문이 검색됩니다. 중국 남조의 양나라 무제 때 주흥사(周興嗣)가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자문은 4자 250구로 되어 있는데 그것 모두를 주흥사라는 사람이 모두 지었을까요? 공식적으로 주흥사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주흥사가 지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종요가 지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천자문은 작자가 미상이라고 합니다.

 

명문당 출판사에서 나온 설문에 의한 신역 천자문을 보면 진(晉) 무제 때, 종요가 천자문을 지어 진무제에게 바쳤다고 되어 있지만, 종요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이고 기록에 따르면 230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위나라를 이어 진나라가 성립하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 무슨 수로 천자문을 바치겠습니까.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역사 기록에는 진(晉) 무제가 종요의 천자문을 너무 사랑하여 항상 손에서 놓지 않고 애송하였다(手不釋卷:수불석권)고 되어 있다네요. 우습지 않나요?

 

같은 책 11쪽에 순화각법첩을 이야기하면서 한(漢) 장제의 서(書)라고 하여 진숙열장(辰宿列張)부터 기집분전(旣集墳典)까지 100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漢) 장제(AD 57~88)는 종요가 살았던 시기보다 100년도 더 이전의 중국 임금인데 천자문 전부는 아니지만 현재의 천자문과 똑같은 구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주흥사가 천자문을 짓고 나자 1000개의 글자로 글을 짓는 것이 유행하여 수 많은 천자문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면서 대동천자문 같은 것을 지은 이가 있습니다. 또 한편, 고대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주흥사 천자문 외에 二儀日月로 시작하는 천자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천자문의 지은이와 그 시기에 관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주흥사가 천자문을 짓고 그것이 유행하여 숱한 천자문이 지어진 것도 틀린 내용이라고 할 수 없지만, 주흥사 이전의 고대에 이미 1000개의 글자로 글을 짓는 어떤 풍습이 있거나 아니면 1000자로 지어진 어떤 중요한 서적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예전에는 8살이 되면 지금의 초등학교, 즉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처음 배웠습니다. 요즘은 8살이 되기도 전에 유치원에서 한글 다 배우고 입학하지요? 대부분? 누구나 교육을 받는 시절이지만 한자가 주로 쓰이던 옛날에는 아무나 글자를 배운 것이 아닙니다. 문자는 귀족들이나 지배층이 배운 겁니다. 불과 10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역시 양반들이 주로 글자를 배웠지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지으신 까닭으로 우리는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깝지만 아직도 문맹인 사람들이 있는 선진국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천자문을 지은이가 누구인지는 사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에 관한 자료를 찾고 모으고 검토하면서 전후사정을 따지고 추측도 하고 뭐 그럽니다. 중국에 천자문이라는 글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후대에 누군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보니, "이건 신이 내린 글이다" 할 만큼 명문이었던 까닭에 지은이가 누구인지 추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추적을 하다가 하다가 하다가 주흥사가 천자문의 저자로 최종 낙점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자문을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므로 주흥사라는 인물에게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진무제가 이미 죽은 종요에게서 천자문을 받고 손에서 놓지 않고 항상 애송하였다는 말에 우습지 않느냐?며 말을 하였지만, 요즘처럼 문서들이 디지털화 되어 있지 않은 시절에 천자문의 기원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비웃거나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중국에 춘추필법 이라는 것이 있어서 중국 자기 나라 임금에게는 무조건 좋은 것만 가져다 붙이는 습성도 있기는 합니다. 흔히 삼국지로 알려진 삼국연의를 읽다가 조조에 대해 정사 삼국지를 잠깐 온라인 상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조조의 선조가 황제(黃帝:전설적인 중국 임금)로 계보가 이어지더군요. 사실 여부를 떠나 막 웃음이 나왔습니다. 황제(黃帝)는 전설적인 중국 임금인데 중국 역사의 기원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중국 황제들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천자문 해설서를 보면서 기억해야 할 내용은 "임금이 한 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애송했다"는 내용입니다. 청나라 강희제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상소문을 읽었다고 합니다. 중국 역대에 청나라보다 넓은 영역을 통치한 왕조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영토의 넓이에 따라 중국 황제들이 읽었던 문서의 양이 각각 달랐을까요? 조직이 커지면 역할을 분담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라면, 고대에도 상소문이나 기타 여러 가지 문서들을 강희제만큼은 아니어도 읽어야 했을텐데, 그렇게 빡빡한 일정을 사는 임금이 현실적으로 한 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애송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불석권하였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는 천자문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 만큼 뭔가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근원적인고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저자(지은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혹 역시 없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