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는 거짓말... (한사군은 원래 고조선의 군명이었다)

참그놈 2022. 5. 13. 00:03

2000여년 전에 한민족과 중국간에 조한전쟁(고조선 VS 중국 한漢나라)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조한전쟁에서 고조선이 패하여 중국 한(漢) 나라가 사군(四郡)을 설치했다고 요즘도 그렇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한 무제는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한사군을 설치한 것이 아닌데 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했을까요?

 

아래 내용은 사기 조선열전 일부를 옮겨온 것입니다. 한사군(漢四郡) 설치했다는 내용 나오나요? 정(定)이라고 되어 있잖습니까. 치(置)한 것이 아니라...  為四郡四郡설치했다고 해석한 것일까요? 행정명칭이므로 설치했다는 해석이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한(漢)나라가 사군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군(郡)들 중에서 네 개의 군이 한(漢)나라와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元封三年夏,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己又反, 複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降, 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 誅成己, 以故遂朝鮮為四郡. 封參為澅清侯, 陰為荻苴侯, 唊為平州侯, 長為幾侯. 最以父死頗有功, 為溫陽侯.

 

아래 내용 역시 사기 조선열전을 복사했습니다. 初定 이라고 된 것 보이시지요? 한(漢) 나라는 초기에 시끌시끌했다고 합니다. 한 고조가 죽고 혜제 시기에 흉노와 평화협상을 하고 나서야 근근이 조용해 졌다고 흉노열전에는 적혀 있는데, 그러고도 세월이 50여년 지나면서, 즉, 문제 경제 때를 지나서 좀 더 기반이 좋아집니다. 그리하여 한 무제가 발흥하는 기반이 되지요. 이라는 글자가 한(漢)나라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會孝惠, 高後時天下初定, 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 保塞外蠻夷, 無使盜邊;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 真番, 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마찬가지로, 첫번재 인용 단락에서

 

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 誅成己, 以故遂定朝鮮為四郡.

 

라는 부분을 보면, 한(漢) 나라에 맞서 써운 성기(成己)를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전쟁이 그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漢) 나라에 협조한(?) 이들이 홰청후, 적저후, 평주후, 기후 등으로 봉받는 것을 보면 당시 조선의 기층은 한(漢)나라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기도 하지만 광대한 상품시장이기도 한데, 고대 조한전쟁이 발발했을 무렵에도 전쟁보다 교역을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평화협상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조한 전쟁이 발발한 것이 한(漢)나라 안정(初定이후)을 찾아가면서 방자해졌다는 말이겠지요. 당시의 무역거래 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方數千里가 고작 네 개의 군으로 편성될 수 있습니까? 이는 고대 우리 선조들의 행정체계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읽어 보면 삼조선 체제를 말합니다. 환단고기에도 삼한관경제나 삼조선체제 등을 설명하지요. 그리고 천리장성을 설명할 때도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줄지어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조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위만조선은 당시 고조선의 서쪽 변방이었는데 고조선이 지방 분권체제이므로 인해 자치적인 성격이 강해서, 또 어쩌면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교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특징 때문에 어중간한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당나라 장수절은 사기정의에서 현도 낙랑 2군이다.

 

라고 적었다고 하는데 그 보다 앞선 남송(439~589) 시대의 배인은 낙랑 현도 임둔 진번 이라고 4개 군을 모두 적었다고 합니다. 장수절이 배인의 사기집해를 못봤을 리 없는데 현도 낙랑 2군만 언급한 것이 이상하다고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에 적혀 있네요. 아시다시피 수나라와 당나라는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지... 그런 관계로 아는데, 수나라가 4차례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무려 100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하기도 하지요. 당나라도 30만 대군을 이끌고 옵니다. 고구려와 수나 당은 거의 무슨 철천지 원수급으로 싸웁니다. 당나라 장수절이 사기정의에서 현도 낙랑 2군이다 라고 적었다는 것은 현도 낙랑군이 그 만큼 당나라 입장에서는 중요했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삼국사기나 흉노열전 등을 읽어보시면 옛 고구려에는 좌보 라거나 우보 라는 관직명이 있고 흉노에는 좌현왕이나 우현왕이라는 관직명도 나옵니다. 현도 낙랑이 혹시 그런 관직명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지...  수나라나 당나라나 선비족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누구보다 고구려의 행정체제를 잘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조한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真番, 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라는 구에서 보듯, 진번이나 임둔 등의 명칭은 이미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를 읽어봐도 곳곳에 낙랑(樂浪)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한(漢) 나라가 설치했다고 알려진 네 개의 군 진번(真番), 임둔(臨屯), 낙랑(樂浪), 현도(玄菟) 등은 한(漢) 나라가 설치한 것이 아니며, 한(漢) 나라에 협조한(?) 이들이 홰청후, 적저후, 평주후, 기후 등으로 봉받는 것을 보면 당시 조선의 기층은 한(漢)나라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고 그리하여 당시 고조선 서쪽 변방이 한(漢)나라와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거나 한 상황으로 이해가 됩니다. 진번(真番), 임둔(臨屯), 낙랑(樂浪), 현도(玄菟) 등의 군들은 원래 고조선의 군명이었다는 것이지요.

 

 

 

역사를 모르는 평범한 서민의 생각입니다. 참고삼아 보시고 그럴 듯하다 싶으시면 공부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혼자 역사에 대해서 짱구를 굴리다가 알게 된 것을 이미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 한 분이 계시네요. 그 외에 동명왕이 고두막한이라고 적힌 환단고기 내용도 설명을 해 주시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A3zj_GKst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