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테고리의 포스트는 저 자신이 참고용으로 작성하는 것이고 내용이 계속 누적되는 포스트입니다. 따라서 경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벌식 390 사용자인데 제가 쓰는 포스트에 오자가 종종 있습니다. 자판을 다 외우지 못하고 여전히 세벌식에 익숙치 않아 그렇습니다. 저 혼자 참고삼아 작성하는 것이지만 이미 공간된 책에 나오는 내용이거나 공공연히 알려진 내용들이므로 그냥 공개해 두는 것입니다. 혹시 키보드 사용을 많이 하여 손가락 관절이나 손목에 통증이 있는 분이라면 세벌식으로의 전환을 권해 봅니다. 저의 경우 익숙해질수록 손가락 마디 통증이나 손목 통증이 사라졌었습니다.
한사군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사기 조선열전이다. 한(漢)나라가 사군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원래 진번, 임둔, 낙랑, 현도 등의 4군은 고조선의 군(郡)들이었다. 한(漢)나라에 협조한 참, 음 등이 홰청후, 적저후, 평주후 등에 봉받은 것으로 보아 한(漢)나라에 완전히 복속한 것이 아니라 한(漢)나라와 상호불가침 등의 평화조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元封三年夏,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己又反, 複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降, 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 誅成己, 以故遂定朝鮮為四郡. 封參為澅清侯, 陰為荻苴侯, 唊為平州侯, 長為幾侯. 最以父死頗有功, 為溫陽侯. (사기 조선열전 중)
아래는 한서 『漢書』卷28下, 「地理志」8下 燕郡 부분이다. 법금8조가 60여조로 늘어났다는 기록이다.
樂浪 朝鮮民犯禁八條, 相殺以當時償殺, 相傷以穀償,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 人五十萬. 雖免爲民, 俗猶羞之, 嫁取無所讎, 是以其民終不相盜, 無門戶之閉, 婦人貞信不淫辟. 其田民飮食以籩豆, 都邑頗放效吏及內郡賈人, 往往以杯器食. 郡初取吏於遼東, 吏見民無閉臧, 及賈人往者, 夜則爲盜, 俗稍益薄. 今於犯禁窾多, 至六十餘條.[2]
아래는 서한군국도(西漢郡國圖)이다. 중국에서 제작된 지도에 한사군은 현재의 북경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연의라는 판타지 VS 대륙삼국설
삼국시대가 끝나고 인구가 700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며, 1000리를 가도 사람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삼국연의 지도는 인터넷에서 보이는 삼국연의 지도는 사람이 대부분 죽고 없는 빈땅을 표시한 것이다. 그 넓은 땅에서 700만이 각각 떨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최조 가족 단위로는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고서 진(晉)나라가 들어서는데, 진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삼국에 대해 기록하는 대신 78개 소국을 기록했다. 이는 대륙에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실제 중국 위촉오 삼국지의 주역이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용어 개념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복궁 변천사... (0) | 2023.02.27 |
---|---|
단군조선, 고조선 또는 천왕들을 언급하는 문헌들 (0) | 2021.09.30 |
동북공정 (0) | 2021.09.30 |
한국 민족주의 역사가 (0) | 2021.09.24 |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학자들 (0) | 2021.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