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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원문 1권 기이 제 1 : 칠십이국 - 고조선은 72개국의 종주국이었다?

참그놈 2022. 5. 14. 07:05

삼국유사 원문 1권 기이 제 1 : 칠십이국 부분입니다. 그냥 혼자 읽어보며 뇌피셜 그리고 있습니다.

 

 

卷一 紀異 七十二國

 

通典云, 朝鮮之遺民, 分爲七十餘國, 皆地方百里. 後漢書云, 西漢以朝鮮舊地, 初置爲四郡, 後置二府, 法令漸煩, 分爲七十八國, 各萬戶.(馬韓在西, 有五十四小邑, 皆稱國, 辰韓在東, 有十二小邑, 稱國, 卞韓在南, 有十二小邑, 各稱國)

 

 

어떤 분들은 한민족(韓民族)을 비하하기 위해 역사를 가장 심하게 왜곡한 것이 수나라나 당나라였다고 비판하기도 하던데, 위 원문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朝鮮之遺民, 分爲七十餘國, 皆地方百里

 

가 아닐까 싶네요. 아시다시피 고수전쟁(고구려 VS 중국 수나라)과 고당(고구려 VS 당나라) 전쟁이 있었는데, 수나라의 경우 100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30만 대군을 몰고 고구려를 공격한 경우도 수나라 당나라가 각각 있지요? 고구려와 수나 당은 완전 철천지 원수급으로 싸웁니다. 그리고는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선의 유민이라고 쓴 것을 눈여겨 봐야 하지 않나! 싶네요. 고구려 백제 신라를 무시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고대사를 끼워넣은 것이지요. 고조선은 70여개국의 조공을 받던 나라였다는 말이 됩니다.

 

수나라나 당나라도 선비족의 일파로 고구려와 민족적으로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수나 당도 조선의 유민이었을 것임에도 중원을 차지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고구려 백제 신라 말갈 거란 여진 등 모두를 조선의 유민이라 표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언급은 없지만...  수나 당도 조선의 한 갈래였을 수도 있으므로 조선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 것이지요. 자신들 선조들의 역사이기도 할 것이고... 그리고 조선왕조 때 태종임금님에 관한 신지비사에 얽힌 일화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신지비사에 70개국에서 조공을 받았다고 하는 내용을 보고 조선왕조의 태종 임금님은 황당하다면서 불태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즉, 고조선은 70여개국의 조공을 받던 나라였음이 은연 중에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通典云

 

당나라 두우가 지은 통전이라는 책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고 합니다. 일연 스님이 뭔가 착오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네요.

 

爲四郡

 

사기 조선열전에는 치(置)라는 글자가 없습니다. 爲四郡이라는 글자들 앞에 置라는 글자를 포함시켜 고당전쟁(고구려 VS 당나라)에서 당나라가 이겼음을 표시한 듯합니다. 사기 조선열전을 읽어보면 조한전쟁에서 한(漢) 나라가 고조선을 이겼다고 할 수 없는데, 일연 스님 당시에는 한나라가 사군(四郡)을 설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고 이해해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後置二府

 

삼국유사 어떤 해설을 보니 二府는 없었다고 하네요. 도독(都督)이라는 관직도 없었다고 합니다.

 

 

法令漸煩, 分爲七十八國, 各萬戶(馬韓在西, 有五十四小邑, 皆稱國...)

 

요즘은 가족이나 가정이라는 말을 쓰지만 옛날에는 가정을 호(戶)라고 했습니다. 그냥 한 집에서 사는 식구들? 뭐 그런 뜻입니다. 요즘은 부모와 자식 둘 또는 하나로 구성된 3인 가정이나 4인 가정이 많은데, 옛날을 기준으로 하면 3인 1호(戶), 4인 1호(戶) 같이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의술이 발달해서 자녀를 많이 낳지 않지만 옛날에는 많이 낳았습니다. 최소가 3명 많게는 10남매 이상의 자녀를 낳기도 했다고 합니다. 앞에 태종 임금님 이야기를 했으니 태종 임금님 경우를 예로 들까요? 검색을 해 보시면 아들 넷에 딸 넷을 낳았다고 나오는데, 성녕대군처럼 청소년기에 죽은 자식 외에 어릴 때 죽은 자녀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총 10남매 정도를 낳은 셈이지요. 어쨌든 어릴 때 죽은 경우를 제외하고 성녕대군까지를 포함하면 태종임금님과 원경왕후 그리고 그 자녀들을 모두 합치면 10명으로 구성된 가정(戶)가 됩니다. 78개국이 각 1만호 였다고 한다면 호(戶) 당 5명으로 계산했을 때 대략 400만명 규모가 되네요. 6명이나 7명으로 잡으면 더 많아질 것이고 태종임금님 경우처럼 10명으로 잡으면 거의 800만 가까이 되지요?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도 본부인에게서 난 아들만 다섯이었잖아요. 그 외에 옛날에는 노비제도가 있기도 했는데 노비도 호구에 포함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法令漸煩

 

를 보면 법령이 번거로워져서 78개국으로 쪼갰다. 라고 되어 있는데, 二府를 두었다가 78개국으로 나누었다면 더 번거로워진 것은 아닐까요. 게다가 앞에서 二府는 사실과 달리 있었던 적이 없다고 했는데, 실제로 二府가 있었다면 어떤 부(府)는 몇 개국을 관리했고 또 어떤 부(府)는 몇 개국을 관리했는지 적지 않았을까요? 뒤 따르는 구절에

 

 

...各萬戶(馬韓在西, 有五十四小邑, 皆稱國...)

 

각각이 1만호이고 소읍(小邑)인데 모두 나라(國)를 칭했다고 했으므로 이는 당나라의 위세를 은연 중에 드러내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무시하려 한 것인데, 오히려 고조선의 구조를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70여개국의 정확한 면모를 모르지만 72국(七十二國)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78개국까지 표시를 했으니 고조선의 규모가 그 정도 되지 않았나 싶네요. 아시다시피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당나라에 패한 이후 한민족은 남북국 시대가 됩니다. 그런 소읍(小邑)들이 나라(國)를 칭하던 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고구려 백제 신라를 깎아내리려다 오히려 고조선의 면모를 일부 드러낸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삼국지(중국 정사)나 진서(晉書) 등을 근거로 삼한 78개국을 설명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성립할 무렵에는 한반도에는 초기 국가들만 형성되어 있었다는, 즉,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뜻으로 그렇게 설명을 한다고 하네요.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일본이 깎아내리려고 그런 학설을 창조(조작, 날조?)했다고 하더군요.

 

혹시 예기 왕제(王制) 편을 읽어보셨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나라가 모두 자그막 자그막하고 중국에는 1000개 이상의 나라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주 나라의 주요 제후국 12개가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 보다 나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종주국 주 나라만 방천리이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제일 큰 것이 방백리(皆地方百里) 였습니다. 다음 큰 나라가 방칠십리(皆地方七十里) 그리고 나머지 나라들은 방오십리(皆地五十里)였지요. 자그막 자그막 하던 나라들이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 춘추시대이고 전국칠웅이 된 것이 전국시대입니다. 그리고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지요. 한나라가 그 뒤를 잇고요. 즉, 당나라가

 

朝鮮之遺民, 分爲七十餘國, 皆地方百里

 

라는 기록을 남긴 것은, 고대의 땅(영역)에 대한 개념으로 이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흉노열전을 읽어 보시면 흉노 왕이 옆나라에서 말을 달라고 하니 말을 주고 미녀를 달라니 자기가 아끼던 미녀를 주기도 하는데 땅을 달라고 하자 우르르 몰려가서 그냥 죽여버립니다. ㅡ,.ㅡ  이는 당나라 입장에서는 - 수나라나 당나라도 고조선의 예하에 속해 있던 선비족이었으면서 - 땅따먹기 해서 큰 땅 차지한 이후 조선을 받들던 거수국들을 향해

 

니들은 다 찌질이들이야!

 

라는 뜻으로 기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해당 내용을 단군사화(檀君史話)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역사의 흐름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런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질서체계가 있었다.

고조선이 요구하는 수련과정을 거쳐서 통과하면 고조선의 거수국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외방으로 밀려났다(곰과 호랑이 = 고조선의 거수국들과 흉노, 몽골, 선비, 돌궐 등등)

중국에서 요순을 시작으로 단군조선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주나라가 성립했다.

고조선은 78개국의 거수국을 거느린 종주국이었고, 당시 중국은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하는 봉건제도가 성립되어 갔다.

주나라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춘추전국을 거치고 진한(秦漢) 통일기에 이른다.

흉노가 한(漢)에 패한 이후 조한 전쟁이 발발하여 고조선이 한(漢)의 발흥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은 넓어서 군현제나 군국제 같은 중앙집권적 통치체계가 안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호십육국 오대십국과 같은 혼란기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당나라 같이 일시(618~907?) 위세를 떨친 나라도 생겨났다.

 

 

한나라 때 비단길이니 뭐니 하는 것을 개척하기도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의 역사가 가장 국제적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 만큼의 위력을 보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하여 단군 조선의 역사를 언급하며 한민족(韓民族) 전체를 깎아내리려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고조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아시아의 질서를 당(唐)나라가 다시 세웠다는 뭐 그런 우월감이라고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