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록

사람들은 그러고 사는 거였어?

참그놈 2019. 10. 24. 18:27

근 25년만에 오늘은 잠깐 웃었습니다. 맛집을 찾아 다니고 꽂놀이 단풍놀이도 다니고 등산도 하고 낚시도 하고 아니면 술도 마시고 축구 중계 야구 중계도 보고 여자친구나 애인과 섹스하고 노래방 가요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사람들이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생각하면서 제목처럼 사람들은 그러고 사는 거였어? 라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잠깐이기는 이지만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분좋기도 한 웃음을 몇 분간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겐 그런 일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로 비슷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저 자신이 원치 않는 일임에도 해야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학창시절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친구도 보기 드문 미인이었지요. 제눈에 안경이라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미인이라고 인정하는 외모였고, 평생에 저런 미인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을만큼 제게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 여학생에게 차를 한 잔 마시자는 말을 건넸는데 그 이후로 알 수 없는 사건들을 겪습니다. 그 여학생과 사귄다? 뭐 그런 일을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겐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공부를 게을리 하는 저 때문에 항상 표정이 굳어 계셨습니다. 공부는 죽어라 안하는 놈이 여자 친구를 사귄다? 제게는 일어날 일도 아니었지만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로 여기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여학생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게 된 것은 당시 제가 뭘 잘못 먹고 실성을 했는지 책읽기에 열심인 시기가 있었습니다. 항상 굳어 있던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고 저는 저 나름의 독서 계획을 세우고 제가 원하는 독서의 기초를 닦기 위해 휴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게 되면서 아버지의 굳은 얼굴에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 것에 용기가 생겼는지 그런 말을 하게 되긴 했지만, 제가 원한 것은 진짜로 차나 한 잔 같이 마셨으면 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언제 그런 미인을 다시 볼 수 있으려고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 건넨 이후 제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 여학생과 그 여학생의 부모님 또 그 여학생의 친구에게까지 주변 사람들이 보았을 때 미친놈? 또는 죽일놈? 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만큼 크나큰 대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여학생 뿐만 아니라 그 친구 또 그 여학생의 부모님들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한통속으로 짜고서는 저를 괴롭히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 저질렀는지 생각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부터 실성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여학생에게 말을 한 마디 건네기 전의 제 일상은 눈을 뜨자 마자 무언가를 읽기 시작해서 길을 다닐 때도 책을 두어권 정도는 들고 다녔고 버스를 타거나 벤치에 앉거나 항상 무언가를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지 않으면 이전에 읽은 책의 내용을 떠올리거나 연상하면서 보냈지요. 한 마디로 책에 푹 빠졌다고 할까요?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웬종일 책을 읽거나 아니면 신문을 읽거나 그도 아니면 전에 읽었던 것들을 생각하거나했는데, 매일매일이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1년 반 정도를 그렇게 생활했는데 저 혼자 독서 계획을 세운 것이 최소 10년이었습니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가 나름의 기준이 생겨 좀 더 심도 있는 독서(?)를 계획했던 것이지요.


사람이 무엇인가에 골몰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한 가지 일, 제게는 책읽기였지만,에만 몰두한 채 1년이 넘도록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당시 그렇게 살았지만, 그리고 지금도 사실은 다시 그렇게 살게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20여년이 넘도록 사람들로부터 겪은 일 때문인지 두려움도 또한 없지 않습니다. 어느 때 제게 사람은 곧 공포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 자신이 책읽기에 몰두한 이래 첫단락에 열거한 그런 일상들을 전혀 원하지도 않게 되었으므로 또 그냥 책 외에는 모두 잊었다고 해야할까? 뭐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까닭으로 제정신이 아니라서 내가 이런 일을 겪었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쩌면 사람같지 않은 짓을 하는 제게 정신을 차리라고 이런 벌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저 자신이 이 포스트 첫단락에 언급한 일들을 책을 읽기 위해서 제 의지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 제가 실성을 하면서 책을 잡았고 그 이후로 제 의식에서 책 외의 나머지 것들은 그냥 사라져 버렸지요. 이런 사실을 저 자신이 스스로 자각하는데 20여년이 걸렸습니다. 참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20여년 동안에서 최근 5년여간은 술도 먹고 가요방 출입도 하고 뭐 갖가지 일들을 하기는 했지만 저 스스로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부처님일 수도 있고 신령님일 수도 있고 조상님일 수도 있지만 그냥 하느님이라고 하십시다)이 이렇게나 야단을 치시는데도 아직도 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야단을 안맞으려면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꽃놀이 단풍놀이도 다니고 축구장이나 야구장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는 등등 하면 되는데, 저 스스로가 원하는 일들이 아니므로... 이걸 뭐라고 해야 할런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그런 생각들이 제 의식에는 없습니다. 이게 환장할 노릇이지요.


사람들은 그러고 사는 거였어?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머리 속에 어떤 남자의 얼굴이 보였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노래지는 표정이 되었고 금방 사라지기는 했습니다. 장기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 저는 환상도 자주 보이고 환청도 자주 들리고 뭐 그렇습니다. 조울증 진단을 받은 지 25년 정도가 되어 가는데 조울증 자체는 현저히 감소한 것을 저 자신이 느끼겠는데 환청이나 환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네요.


저야 앞으로도 얼마나 더 야단을 맞게 될 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모두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