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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역사일까? 신화일까?

참그놈 2021. 1. 10. 22:12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문장이 2009년 7차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추가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6차 교과서이겠지요? 그 이전에는 단군이 신화라고 하여 국사 교과서서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7차 교과서에도 단군이나 고조선에 관한 기술은 거의 없습니다. 비파형 동검 분포도 등을 제외하면, 기원전 20세기 무렵 500여년까지 금석을 병용(청동기와 석기를 함께 쓰던 시기) 하다가 청동기 시대로 넘어간다고 적혀 있습니다. 단군은 역사일까요? 신화일까요?

 

년도를 표시하는 방법, 단기, 서기, 불기, 연호 등등.

요즘은 년도를 서기로 표시합니다. 서기는 After Domini 의 약자인 것으로 알고 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합니다. 주 이후(A.D.)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를 AD, 그 이전을 BC (Before Christ)라고 표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년도표기로 서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제가 알기로는 1960년대 이후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단기(檀紀)로 년도를 표시했습니다. 단기는 BC2333년을 기원으로 하는 년도 표시방법입니다. 그렇게 치면 올해는 단기로 4354년이 됩니다. 개천 기원으로는 5918년이 됩니다. 개천절은 단군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웅천왕이 신시를 여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단기(檀紀)로 년도를 표기한 기간은 얼마나 되나?

사실 단기를 얼마 동안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왕조에서는 중국 황실의 연호로 년도를 표시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께서도 대한제국을 선포하신 이후 건양이라거나 광무라는 연호를 잠깐 쓰셨지요? 그러므로 실제 단기로 년도를 표시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렸던 1970년대에도 단군 할아버지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하던 말입니다. 1970년대에는 이미 대부분의 년도 표시가 서기로 변환되었는데도 사람들의 말 속에는 단군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로 접어들면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오히려 단군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경제 성장을 위해 우리의 부모세대는 힘들게 일을 하셨지요.

 

기록이 없으면 역사(사실)도 없는 것일까?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 곰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 인터넷이나 책에서 보이는 그림에는 곰과 호랑이가 어디에 있는지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있는가 하여 검색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습니다.

 

고조선은 실재했지만 단군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삼국유사가 위서를 인용했다고 하지만 중국에 남아 있는 위서에는 삼국유사가 인용한 내용이 전혀 없다. 라고 하며 단군은 허구라고 설명합니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을 기록하여 그 이후에 뻥튀기 되어 1980년대에 환단고기가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없는 것일까요? 기록은 기억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없으면 사실도 또한 없다는 뜻이 된다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도 성립이 되는 것 아닐까요? 출생증명서 공개를 요청하는데 소견서를 제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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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고있는 고조선 역사 : 언제, 어디서 시작했나?

단군 조선 ● 단군조선은 실제로 존재했나? 고조선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군조선이 존재했다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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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역사서

제가 가지고 있는 7차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역사는 역사가가 선정한 기록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위 블로그에서 "단군을 설명하는 역사서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어불성설입니다. 누천년 역사에서 수많은 역사서들이 전쟁의 참화 등으로 사라졌기 때문이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폐기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또, 역사가들이 단군이 기록된 문헌이나 문서를 배제하면 단군은 역사에서 제외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단군 이외에도 역사가들이 임의로 역사에 추가하고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선언이나 진배가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등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역사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도 사고본 중 하나가 살아남았기 때문인데, 만약이지만 그 마저 다 소실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없는 것이 될까요? 고구려 초기에 유기(留記)라는 역사서 100권이 있었다고 하고 그 유기를 요약한 5권의 신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하지 않습니다. 백제에 고흥이 편찬한 서기(書記)라는 역사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역시 전하지 않습니다. 신라에 거칠부가 쓴 국사(國史)라는 역사서가 있었다고 하는데 역시 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삼국시대를 배우나요? 역사서도 없는데...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태종임금님 때도 세조 임금님 때에도 또 대일항쟁기에도 우리나라 고대 역사서는 숱한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수서령이 그것인데, 누구던 고대 우리의 역사서를 나라에 바치지 않고 소지하고 있으면 죽인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3번째기사-

 

임승국, 한단고기를 읽어보면 이마니시 류 라고 하는 일본 식민사학자 - 오른손으로 글을 쓰다 마비되어 왼손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 가 고려시대에 고조선기와 유사한 구전과 고기가 많았다고 하면서 당시 서운관에 있던 서적들을 소개했답니다. 그 목록은 조대기, 주남일사기, 신비집, 고조선 비사, 대변설,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등등입니다. (임승국, 한단고기 P.39) 조선총독부에서 대일항쟁기에 그때까지 남아 있던 우리 고대의 역사서를 샅샅이 뒤져 의도적으로 우리의 고대사를 폐기한 것이지요. 조선총독부가 민간에 남아 있던 우리의 고대 역사서를 수거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외국인의 진술(나다니엘 패퍼, 기자, Nathaniel Peffer)입니다. 남아있는 기록(역사서)가 거의 없으므로 연구나 규명에 어려운 점이 만겠지만 기록이 전하지 않으므로 역사(사실)도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www.youtube.com/watch?v=FmmEBvRhCQM

 

일본 제국주의의 실수

100여년 전 일본이 제국주의적 팽창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조선에 남아있던 역사서를 거의 불태우거나 수거해 갔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남아있는 역사서는 없애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중국의 역사서는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그들이 기록하지는 않았겠지만 외교라는 것도 있고 교역이라는 행위도 있습니다. 또, 전쟁에 대한 기록도 있지요?

 

동이한국사를 읽어 보면, 왜(일본) 역시 부여의 한 갈래로 4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신라를 장악한 강대한 세력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이 그렇게 강대한 세력이었다면 일본에는 일본서기와 고사기 외에 훨씬 더 많은 문서가 전해지고 있어야 합니다. 인구가 증가했는지 인구밀도가 높아졌는지, 급증하는 인구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될 것이라는 인구론이 나오면서 몇 십년 후 세계는 산아제한을 한 나라가 여럿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지요. 그러나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구가 곧 생산력이고 군사력이었습니다.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이전까지 외침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일본에 고대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이 그다지 발전한 사회나 국가가 아니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4세기 무렵 한반도 남부를 장악했다면, 한반도 남부의 인구(호구수), 행정조직, 외교문서 등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어야 상식적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은 바다를 낀 대외 활동은 고사하고 일본 내부조차도 전혀 발달한 사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지진으로 사라졌다 뭐 그런 주장을 할까요?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의 기록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백업(Backup)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게나 똑똑하고 강성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는데, 게다가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잦았던 일본에서 백업(Backup)을 몰랐다? 기록에 대한 의미조차 몰랐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항을 일본이 먼저 했고 서구와 활발히 교역을 한 것도 일본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한일의정서니 을사늑약 같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이 문서의 의미 중 일부를 그때서야 깨달았다는 것이고, 일본인들 역시 서구의 계약서에 무지했으므로 그들 역시 서구인들에게 당했다는 뜻일 겁니다. 지들도 당해봤으니까 대한제국에 와 가지고 사기를 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항상 한반도를 침략하려다가 성공하지 못했지만, 서구에 먼저 개항을 하여 근대적 공업기술과 과학기술을 습득하고는, 일본인들이 서구인들에게 당했던 방식대로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일테지요. 즉, 일본은 기록의 의미를 갈취나, 침략 뭐 그런 것으로 밖에 이해를 못한 것일 수 있는 겁니다.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몰랐기 때문에 역사서를 없애면 역사도 없앨 수 있다는 믿음까지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한때나마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몇 십년간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나라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돈으로 역사도 살 수 있다고 믿었는지. 현재 일본의 경제가 위태롭다고 하는데, 현재 일본의 경제상황을 가지고 비아냥 거리거나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백악관이나 남극 세종기지, 파미르 고원 등을 웹브라우저 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일도 보낼 수 있고 영상통화까지 가능한 시절입니다. 통신 속도가 빨라져서 국가간 소통 외에 민간의 소통 역시 매우 빨라졌습니다. 거짓이 자꾸 뽀록이 나는 시절이 온 겁니다. 거짓은 이제 발디딜 곳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중국 백신을 맞아야 할지도 모르고, 모든 것의 기원은 중국(China)이 될 것입니다. 한복도 김치도, 천황도 중국인의 후손이 되겠지요. 삼국지 손권은 푸른 눈에 붉은 수염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 역시 장건이 서역로를 개척한 이후로 진출한 중국인의 후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진술에 대한 참,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그 역시 사실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 조선인이 당시 일본인들 눈에 빠가라서 조선인만 속이면 온 세상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가련하기까지 합니다.

 

단군은 역사일까? 신화일까?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에게 단군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로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러나 사람들의 말 속에는 단군이 할아버지로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역사서는 사실에 역사가의 의견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말 속에 단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면,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5000여년의 시간적 간극을 메우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또는 후대의 역사가 중 누군가는 사람들이 5000여년 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말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1000년 후라면, 6000여년 전이라고 표기할 것이고, 2000년 후라면, 7000여년 전이라고 기록을 하겠지요. 환단고기가 나오기 전인 1970년대 이전에는 년도도 단기로 표시했고 사람들의 말 속에도 단군이 살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살아계실 것입니다.

 

환단고기가 나오기 이전에도 살아 계시던 단군을 환단고기가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위서로 몰고 부정해야 할 근거는 무엇일까요?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를 읽어 봐도 환단고기를 인용하지 않습니다. 무려 1000여쪽에 이르는 책인데(고조선 연구, 1995, 일지사 : 만권당 판은 2권 1300여 페이지) 환단고기를 인용해서 우리 역사를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겁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사실)도 없다는 것이 랑케의 역사관이었을까요? 정면에서 자동차가 시속 200km로 달려오고 있는데 눈을 감으면 차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지 않는다는 것이 랑케의 실증주의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물론 환단고기를 확실한 역사서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 교차검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환단고기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교차 검증이 힘들다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을 입증할 수 있는 고대의 서적은 극히 희박합니다. 그러나 임금도 신하도 역사가도 아닌 사람들의 말 속에 단군이 살아 있었으므로 기록(역사)이 말을 적는 것이라면 단군을 부정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발해사 11권이 모두 불탔고 고조선사 45권 역시 모두 불탔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불에 타 없어진 역사서는 더 많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을 일으켜 이웃나라 역사서를 모조리 불태웠다면 기록이나 역사의 의미 자체를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은 알지 못했다는 말이나 진배없을 겁니다. 일본과의 교류 역시 거의 그 당시까지 거의 없었다는 말일 수도 있고요. 대일항쟁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적지 않은 역사서를 불태우고 뺏어갔다고 하는데, 어쩌다 서구 제국주의 영향으로 문서를 약탈이나 수탈, 침략의 수단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선을 억압통치하면서 숱한 역사서를 불태우고 일본으로 훔쳐가거나 했다던데 그래놓고는 근대화를 가장 먼저 선취했다는 자만심만 그득했겠지요. 해당 내용은 나나니엘 페퍼 라는 외국인 기자가 말한 것입니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하느님이 나의 심판관이다 뜻이라고 하던가? 뭐 그렇다는데, 나다니엘 페퍼라는 기자의 이름을 - 돌아가신 분께는 송구하지만 - 한국식으로 해석하면 "나 다니엘이 후추를 뿌리노라(나다니엘 페퍼)" 가 됩니다. ^^;; 즉, 하느님이 들으시고 후추를 뿌린다가 되는 것이지요. 일본의 근대화는 역사서 불태우기나 노략질을 반드시 동반한다는 말이 되나요? 이웃 나라 역사는 대 태원도 되고 자기 나라 역사는 꾸역꾸역 강조하는 까닭은 뭘까요? 참 희안한 근대화지요?

 

잠깐 제목과 무관할런지 아니면 상관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후추를 뿌린다고 해서 그걸 매워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재채기나 좀 하고 물론 헹구고 그러면 잠시 후에 괜찮아지지요? 그러나, 우리는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광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을 알고 있습니다. 모르세요? 까짓거 후추 쯤이야 했는데 일본 경제의 성장과 맞무려 세계는 무진장 많은 화폐를 찍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화폐가 많이 찍히면 언젠가는 공황이 발생하지요. 하긴 일본에는 하느님과 동급쯤 되는 천황은 있어도 기독교인은 거의 없기는 합니다.

 

만세일계니 팔굉일우 등등의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천하사상처럼 일본에도 이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한 집안이라는 사상이 있다네요. 그렇다면, 일본 왕이 곧 가장이겠지요? 그럴러면 일본은 일본서기를 제외한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역사서들을 모두 불태우고 말리라는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서(Bible)나 꾸란 등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서가 사라지면 이제 역사(사실)는 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서기나 고사기 등 일본의 역사서만이 남게 되지요. 성서(Bible)는 이스라엘 인들에게 가지고 다니는 조국이라고 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교훈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많이 발행된 것이 바로 성서(Bible)입니다. 베스트셀러 정도가 아니라 초초초 베스트셀러가 곧 성서(Bible)라는 역사서인 것입니다. 쓰다가도 웃음이 나오네요. 성서(Bible)를 모두 불태우고 중국에 전하는 그 모든 역사책들을 불태우거나 파쇄하여 일본 역사문헌만 남기겠다는 거대한 야망 아니겠습니까?

 

단군을 신화로 규정한 것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라고 합니다. 그 최종 목적은 가까이에 있는 중국의 모든 역사문헌들을 불태우거나 파쇄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 꾸란이나 성서(Bible)마저도 불태우거나 파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유대인 학살놀이나 중국인 학살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단군은 우리에게 도무지 신화가 아닌데 왜 역사책에서 역사가 아니라고 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