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매일 역사 관련 컨텐츠를 하루에 최소 1개는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 내용은 훈구와 사림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 중 소격서라는 관청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 때문에 살짝 흥분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에 대해 생각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저의 경우 태종임금님, 세종임금님, 그리고 계유정난, 연산군, 이순신 장군, 대동법, 병자호란, 임진왜란, 사색당쟁 등입니다. 일차적으로 떠오른 것 외에 계속 생각하면 추가로 떠오르는 것이 훈구와 사림입니다. 사림하면 조광조가 대표지요.
조선왕조를 사림이 장악하여 사색당파로 붕당하기 전에는 훈구와 사림이라는 두 갈래가 있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조선초기에는 훈구파의 영향력이 보다 강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학을 중시하던 조선왕조에서 소격서가 설치됩니다. 학교 다닐 때, 소격서는 무속신앙을 위한 관청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소격서에서 단군께 제사를 지냈다는 설명을 듣고 소격서에 대해서 검색을 했더니 위키백과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다른 백과사전 항목에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온라인상의 어느 백과사전에도 단군 이야기는 한 자도 없습니다.
소격서(昭格署)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조선의 관청이다.
고려 시대에 소격서와 유사한 도교 관련 관청은 복원궁, 신격전, 정사색, 소전색, 태청관, 태일전, 구요당 청계배성소 등 여러 곳이 있었는데 태조 원년(1392년)에 모두 합하여 소격전(昭格殿)이라 하였으며 세조 12년(1467년)에 소격서로 이름을 고쳤다. 중종 13년(1518년)에 조광조를 필두로 한 사림파의 강한 요구로 혁파되었다가 기묘사화로 사림이 실각하자 이듬해인 1520년에 다시 세워졌다. 그 뒤 임진왜란 와중에 제사가 폐해졌고 다시 세워지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다.
문제는 오늘 유튜브에서 황현필이라는 강사의 영상을 보았는데, 소격서에서 단군께 제사를 지냈다는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한지 30년이 넘었는데, 그 30여년이 넘는 세월을 내내 소격서 = 무속신앙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 역사를 전공하여 역사사료를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고 지금껏 역사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소격서가 도교행사를 위한 관청이었다거나 특히, 단군께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소격서에 대해 배울 때 무속신앙을 위한 관청으로 배운 이후 지금껏,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역사 드라마 중 조선 초기를 다루는 드라마 등에서도 소격서는 무속신앙을 위한 관청 정도로 나오는 것만 본 것 같습니다. 도교 이야기는 고사하고 단군께 제사를 지냈다는 말은 뻥긋하지도 않지요. 이건 제가 속은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국사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최종 역사 학습 과정이잖아요. 대중을 향해 공개적으로 강의를 하는 분이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셨을리는 없을 것입니다.
www.youtube.com/watch?v=p9hArCWySDs&list=TLPQMDQwMjIwMjGe1OOfyRxRrA&index=2
소격서에 대한 백과사전 항목들을 살펴보면, 조선의 선비들이 "조선은 제후국인데, 제후국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영화 천문(天問)에서 혼천의를 만들고 자격루(물시계) 등을 만들지만, 칠정산이라는 달력도 있었습니다. 하늘을 관측하고 달력을 만든다는 행위는 요즘의 기준으로라면 미국의 동의없이 핵무장을 하고 원화를 달러와 함께 기축통화로 쓰겠다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는 행위였습니다. 현대에서 미국을 거스르고 무사할 수 있는 나라가 있나요? 한편,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같은 시대의 중국(China)은 성리학의 나라였을까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중국은 차라리 도교의 나라였습니다. 한(漢) 나라로부터 유학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고 민간에서는 도교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컸습니다.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하면서 삼조당이라는 건물을 지어 복희, 치우, 공손헌원을 안치했습니다. 그건 성리학을 근거로 한 것일까요? 그럴리가요. 모택동(마오쩌둥)이 문화혁명을 전개하면서 자신들에게 내려오던 전통과 문화를 싸그리 자신들의 손으로 부쉈습니다. 도교적 사고가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어쨌거나 오늘 소격서에서 단군께 제사를 지냈다는 설명을 듣고 놀라기도 하고, 그럼으로 해서 소격서에 대해서 검색을 하여 도교적 행사를 위한 관청이었다는 것을 추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아직까지 성리학 또는 주자학의 나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국사 교과 과정 뿐만 아니라 드라마 대본까지 통제하고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 앞부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역사를 쓰는 사람은 있어도 읽는 사람은 없다. 외국인이 조선사람보다 조선사를 더 잘 안다는 것에 놀라 그때서야 조선사를 읽는다. 뭐 그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을지문덕전을 읽어 보면 을지문덕전이 한국 출판계의 효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을지문덕전이 나오기 전까지 조선에서 나오는 서적의 50%는 조선왕조를 찬양하는 책이었고, 30%는 유가 경전과 관련된 책들, 그리고 나머지 20%는 중국의 시인들이 남긴 시집 등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출간되는 책의 100%가 우리 역사나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전혀 없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효시라고까지 했겠지요.
하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런 포스트를 쓰고 있는 저도 사실은 맨날 야동이나 보고 무협만화나 보고 전자오락실에나 들락거리고 만화방에 당구장 출입이나 하고 살았으니까요. 또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했어요. 철이 들려고 그랬는지 어느 날 책을 읽어보자 싶은 생각에 이책 저책 읽기 시작하니까, 주변에서 "야! 니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냐?"면서 싫다는데도 허구헌날 술을 사겠다는 사람은 어찌 그리고 많고, 새로 나온 화질좋은 야동이라면서...
묘청의 서경천도를 조선사 1천년래의 제 1대사건이라고 하셨다더군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조선사 5천년래의 제 1대 사건은 아마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가 아닐까 싶네요. 조선상고사의 내용은 무조건 옳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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