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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역사를 창작하는 까닭

참그놈 2021. 5. 6. 05:48

제가 쓴 포스트 중에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까닭을 일부 쓴 것이 있지만, 롯본기 김교수라는 분이 유튜브에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까닭에 관한 영상을 업로드 하셨네요.

 

1995년 경에 대한민국은 1인당 소득이 10000$ 정도에 이르렀지만,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서기 2000년 이전까지 아시아는 수 십억 거지떼만 그득하던 지역(일본인들의 시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그랬는지, 거지들에게 문명이 있을리 없고 교육 수준도 낮다고 생각했을까요?

 

www.youtube.com/watch?v=B7pRBZgM1Ho

 

영상 표면에 이완용 보다 나쁜 사람이라며 화살표로 표시된 분은 고(故) 두계 이병도 라는 분입니다. 대한민국 근대 역사학계의 태두? 뭐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식민사학의 대표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이어졌다는 설을 제시한 역사가이기도 하지요.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이어졌다는 설은 문헌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두계 이병도가 그렇게 비정하고 싶다고 했다더군요. 요즘은 학생들에게 체벌을 한다거나 하면 인권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하기도 하고 문제가 되지만, 군사부일체 라는 말의 의미를 아신다면, 동양 특히,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스승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병도 선생이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이어졌다는 설을 제시하기 전, 일본인 스승이 두계 이병도 박사를 찾아와 만난 일이 있었다는 것 같더군요.

 

지난 몇 년간 역사 관련 서적이나 영상을 보면서 두계 이병도 라는 분이 식민사학의 거두라는 비판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비판 때문인지 저 역시도 두계 이병도를 처음에는 나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한말과 대일항쟁기 625 등의 시련을 거치던 대한민국에서 두계 이병도는 진정 친일적인 식민사학을 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는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한국인은 한국 역사를 읽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원문에는 조선이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한국인이라고 썼습니다. 또, 조선상고사가 연재되던 시기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요? 또, 왕조시대에는 역사서를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즉, 경술국치 무렵에 조선에는 역사서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역사서는 소수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며, 문맹률 또한 높았다는 것입니다. 근대적 학문 연구 방식이 역시 없던 시기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날조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조차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많았는데 한문으로 된 역사책을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왕조시대에는 역사서는 아무나 볼 수 있는 책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서가 공개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던 그러한 시기에 이병도는 일본인들에게서 근대적 방법론으로 역사를 배웠습니다. 일본이 세운 학교에서 일본인 학자로부터 역사를 배우기 전에 이병도는 어떤 공부를 했을까요? 두계 이병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므로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역사서를 아무나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역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으신 을지문덕전 서문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발간되는 책의 절반은 조선왕조를 찬양하는 것이고, 30%는 유교 경전에 관한 책이며, 나머지 20%는 두보 이백 등의 시문집 등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한 책은 단 한 권도 발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신채호 선생이 지으신 을지문덕전을 한국 출판계의 효시 라고까지 평하고 있습니다.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은 후 일본의 통치가 조선총독부를 통해서 시행됩니다.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하여 가르치기 시작한 것인데, 그 이전에 조선의 인민들 대부부은 역사를 가르치거나 공부하지 않았으므로, 당시를 살던 조선인 대부분은 역사를 조작했는지 왜곡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선인 대부분이 역사를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으므로 역사라는 관점에서 조선은 무주공산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나 위당 정인보 선생 같은 분들이 계셨으니,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쏟아넣은 석주 이상룡 선생이나 그외 여러분들이 계셨던 까닭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중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사(朝鮮史)를 신문에 연재하였는데, 나중에 조선상고사 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 연구도 최근에 문성재 박사의 번역을 통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저명한 누군가가 단재 신채호는 넉자로 하면 정신병자고 석자로 하면 또라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나 조선상고문화사를 읽는 분들은 그닥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 연구도 출간된지 몇 년 되지 않아서 해당 서적 역시 읽어본 분이 별로 안계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친일 식민사학자로 비판받는 두계 이병도 선생과 그 제자들이 계속 그 학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위에서 조선시대의 말에 조선인 대부분이 역사를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는 근대적 학문 연구 방식도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일본인에게서 한국의 역사를 배워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가 된 이병도 박사는 진정 친일 식민 역사학자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한자성어에도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가 있습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투사들을 제외하면, 또, 조선인 대부분이 역사를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으므로 아무도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즉,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두계 이병도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친일 식민사학자일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반민특위의 실패로 친일청산에 실패했다는 사회적 상황 등도 고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책이 참 흔하지요?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책은 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인터넷 같은 것은 전혀 없어서 정보 전달의 속도도 지금보다 훨씬 느렸지요. 장기간 소위 친일 식민사학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죄다 서울에 모였을 것이잖아요. 요즘은 중학생들 중에도 갈석산 등에 관한 중국 사서의 원문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이 역사를 전공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내용을 언급하느냐면, 가령, 몇 년 전에 고려대 명예교수 김현구 라는 분이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 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비판하는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책도 뒤따라 발간되었습니다.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 라는 책이 만약 1960년대나 1970년대, 1980년대 또는 1990년대에 발간되었다면...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라는 책이 뒤따라 출간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니고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은 책이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려대학교가 어떤 학교입니까. 무려 SKY 대학 중 하나잖아요. 웹과 네트웤이 보편화 된 지금은 학문이 모든 대중에게 열려있는 시기이지만,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즉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무려 SKY 대학의 교수들이 제시하는 학설은 그냥 진리(眞理 : The Truth)라고 외워야 하는 시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중학생이 중국 역사서 원문을 알고 있어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의 경우처럼 누군가의 학설에 반박하여 중국 역사서 원문을 제시하며 중학생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중학생 따위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말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확하다고 해야 할까요.

 

두계 이병도 선생이 친일 식민사학의 거두로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죽기 전에 단군을 인정했다는 내용도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평생을 삼국사기 역주에 헌신하기도 했다더군요. 어쨌거나 두계 이병도 선생은 이미 고인(故人)이 되셨는데, 청출어람이라고 그 제자들은 단군은 신화라고 한다더군요. 두계 이병도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스승이 단군을 인정했는데 그 제자들은 단군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한국 역사학계의 진정한 태두는 누구냐? 하는 의문이 남기는 하는데, 저는 공사장 나가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놈이라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이 포스트는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는 까닭에 관한 것이지, 두계 이병도 선생에 대한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 따위가 뭐라고... 다만, 우연히 일본이 왜곡한 우리 역사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알게 되었고, 그 시작이 두계 이병도라는 학자라는 비판을 보면서, 일본이 역사 왜곡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몰상식과 몰염치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대표 역사학자가 식민사학자로 비판받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상황을 한 번 고려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중 갈등의 양상 속에서, 또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에 돋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한민국의 음식이나 문화,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세계 시민들이 늘어날 것이고, 국가간 이해관계에 따라 각국 정부 역시 손익계산서를 마구 작성하고 있을 것이므로, 우리 역사가 세계에 재조명되는 상황이 올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중학교 학생들도 중국 역사서의 원문을 알고 있는 시기인데 요즘 학생들이 영어를 또 잘해요. 그로 인해 한국 역사학계가 몸살을 하게 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