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쓴 모든 유적 발굴에서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문장은 윤내현 교수의 한국 열국사 연구 서문에 있는 것입니다. 원체 무식한지라 예전에 읽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뭐 잘 모르긴 하지만, 몹시 한맺힌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네요. 내용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위 문장이 적힌 나머지를 여기다 옮깁니다. (윤내현, 한국 열국사 연구 P27~28. 1999. 4. 24, 초판 2쇄)
모든 유적 발굴에서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발굴이 완전히 끝난 뒤에는 그 유적에 대해서 다시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유적들과 구조나 유물의 형태 또는 지층을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서 유적의 연대를 추정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다른 유적이나 유물과의 상대적인 선후 관계를 밝히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그 유적의 절대연대를 말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새로운 유적의 연대는 기존 유적의 연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유적의 연대가 정확하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 기존 유적들의 연대는 대부뿐 추정연대일 뿐 과학적으로 측정된 연대는 아니다. 그리고 지난날 국내 유적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는 중국의 유적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경우 중국과 같은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의 연대는 중국의 유적보다 수백 년 늦게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황하 유역이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하여 그것이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유입되는 시간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는 이후에 발굴되는 유적들의 연대를 추정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그런데, 황하 유역을 비롯한 중국 유적들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하게 된 뒤로 크게 올라갔다. 그들은 거의 모든 유적들에 대해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추측 연대를 크게 수정하였던 것이다. 초기의 추정 연대가 부정확하면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얻은 이후 유적들의 연대는 모두 잘못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거치지 않은 기존의 국내 유적들의 연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는 길은 모든 유적에 방사성탄소측정법과 같은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유적들의 연대를 체계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각 유적과 유물들은 역사에서 순서대로 제자리를 찾아 진정한 가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문장이 2009년 개정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추가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각각 제 7차, 제 6차 국사교과서인데, 그 이전 대한민국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추이를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저런 문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중국(China) 한(漢)나라가 세운 한사군을 배웠지요.
중국사를 모르지만, 중국(China)역사에서 한(漢)나라의 의미는 통일 중국과 천하사상으로서의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고 유학(儒學)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시기입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로 책들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했으며, 그 이전 전국시대나 춘추시대는 백가쟁명의 시대였습니다. 공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노자, 묵자, 손자, 관자 등등 숱한 자(子)들이 자신들의 사상이 옮다며 외치던 시대였지요. 통합적 정치체계도 없었고 통합적 사상도 없는...
아시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습니다. 유학의 교화를 입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영광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우리나라 역사는 한사군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뭐 다른 관점으로야 중국의 속국 또는 식민지였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요. 제가 인용한 윤내현 교수의 한국 열국사 연구 서문에다 빨간색이나 진하게 표시한 부분을 생각해 보면, 유학(儒學)을 전한 중국이 우선이고 우리(한민족)는 나중이 되는 식으로 발굴되는 유물의 연대를 추정했다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윤내현 교수가 한국 열국사 연구를 출판하던 시기도 그랬지만 지금까지 여전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에 대해서 무슨 청원도 하고 그랬는데, 발굴된지 50여년이 되었는데도 교과서에는 일언반구도 볼 수 없는 까닭이 뭘까요? 제가 다른 포스트에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는 결국 훼손되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데 쓰이고 있다고 썼는데,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를 읽어보면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청동기들이 BC25세기보다 앞서는 연대의 청동기가 있음에도 우리나라 고대사 분야에서는 전혀 반영이 안되고 있습니다. 역시 다른 포스트에 썼는데, 하필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에서 고조선 표지유물이 발굴되는 바람에 아마 대한민국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요. ㅋㅋㅋ
에잉... 모르겠네요. ㅡ,.ㅡ
어쨌거나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나 한국 열국사 연구 두 권의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환단고기처럼 환국, 신시, 단군세기 등등으로 계보를 알려주는 책과는 또 다른 문제인데, 가령, 환단고기에는 초대 단군 왕검의 재위기간이 있고, 2세 단군 부루, 3세 가륵.... 이러면서 47세 고열가 단군까지의 계보와 연대를 모두 표시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반면, 윤내현 고조선 연구나 한국 열국사 연구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역사 문헌이 부족하기에 중국 사료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중국 사료를 대하는 방법에 관한 설명이 있는데 내용을 읽어 보면 놀라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닙니다.
환단고기나 고조선 연구 그리고 한국 열국사 연구의 차이를 대별해서 언급했습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환단고기가 역사서라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일개 서민이거든요. 하지만, 환단고기를 인용하지 않는데도 고조선 연구나 한국 열국사 연구 등에서 보이는 내용은 그 안목(眼目)이 훨씬 돋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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