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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의 치욕? (역사를 의심하면 역사가 보인다)

참그놈 2021. 10. 4. 18:50

우리 역사에는 삼전도의 치욕이나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조 임금님이 병자호란을 당해 청나라 황제에게 삼고구두례를 행한 것을 두고 그리 일컫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아마 그 사건을 두고 삼전도의 치욕이라거나 굴욕으로 알고들 계실 것이고 저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유튜브에서 삼전도의 굴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는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청나라 황제가 즉위식을 하는데 조선에서 사신 두 명이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이었으므로 청나라 황제 즉위식에서 사신으로 갔던 조선 신하들이 난동을 부렸다고 합니다. 뭐 오랭캐 따위가 천명이니 황제니 하면서 소리를 질렀겠지요. 그럼에도 죽이지 않고 왕에게 전하는 칙서를 주어 돌려보냈다고 하는데, 그 신하들이 그 칙서를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을 넘기 전에 여관 쓰레기통에 버리고 귀국했다고 하네요. 당연히 그 소식이 청나라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겠지요? 그리고 나서 8개월 후에 청나라가 쳐들어 왔다고 합니다. 강이 얼어야 말을 달릴 수 있으므로 8개월을 기다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파발마보다 더 빨리 공격해 왔다고 합니다. 놀랍지요?

 

청나라가 정복한 나라의 항복 예식에는 패한 나라의 임금이 자신의 관을 자신이 스스로 등에 지고 와서 항복에 관한 절차를 밟는 것이 청나라, 즉 여진족의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병자호란이라고 하는 그 때에는 청나라 황제가 먼저 하늘에 제사지내면서 삼고구두례를 행하고 인조임금님께 삼고구두례를 행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즉, 조선 사신으로 인해 온전히 치러지지 못했던 즉위식을 완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인조 임금님은 관을 자신이 짊어지지도 않았고 의전상 서열 2번째에 해당하는 자리에 배석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치욕일까요?

 

제가 본 영상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청나라로서는 조선을 극히 예우한 것이 아닐까요? 청나라군이 파발마보다 먼저 당도했다지 않습니까. 쳐들어오는 청나라 병사들과 일전을 겨룬 것도 아니고 그 결과로 삼고구두례를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치욕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청나라 황제 즉위식에서 난동을 부리고도 조선 사신들을 살려 보냈을 정도면 그리고 병자호란은 임진왜란과 달리 순식간에 당할만큼 아무런 대비가 안되어 있었지요? 임진왜란도 불과 10여일만에 부산포에 내렸던 왜군들이 한양에 당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둘 다 무력하게 당했지요.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계셨고 의병들도 있었습니다. 승병들도 참여를 하였지요. 그러나 병자호란 때는 도무지 청나라를 대적하지 못하기도 했고 않았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우면 노비도 면천해 주겠다거나 하는 여러 정책을 발표했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서애 유성룡이 약속했던 정책들을 모두 뒤엎었습니다. 수도 한양을 버리고 도망을 간 건도 백성들 입장에서는 황망한 일일텐데 한 나라의 재상이 약속한 것을 임금이 뒤엎은 것입니다. 재상은 왕이 아닙니다. 즉, 당시 서애 유성룡이 백성들에게 알린 것은 재상의 뜻이 아니라 임금의 뜻이 그러하다 라는 것이었을텐데 그걸 폐기처분해 버리지요. 그리고는 예송논쟁에 빠졌습니다.

 

기차 여행을 하다가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라는 문고판을 구입했습니다. 해당 책 앞부분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모습과 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장면은 어떤 것일까?며 저자인 최용범님이 쓰신 것이 있네요. 저자인 최용범님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장면으로 서희와 강감찬 장군이 거란을 막은 일을 꼽고 있고, 가장 치욕스런 장면으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당시의 지배층의 태도를 꼽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한 일을 심도있게 연구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장면은 한글 창제와 반포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치욕스런 장면은 저자인 최용범님과 같습니다. 다만, 제가 봤던 삼전도의 치욕에 관한 설명이 사실이라고 할때, 삼전도에서의 사건을 치욕으로 생각해야 할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저자 최용범님이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다고 하는 말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나라 왕이던지 왕이 어디 혼자서 왕노릇을 합니까. 그렇게 보면 삼전도의 삼고구두례는 치욕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필 삼전도의 치욕을 말하는 단락은 귀납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의심하면 역사가 보인다고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앞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삼전도의 치욕에 관한 영상을 본 것이 한 달도 채 안됩니다. 50이 넘었는데 지금껏 삼전도의 치욕에 관한 앞에서 적은 그런 내용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무식하고 천박하게 살았다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도무지 의심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에 관한 사실을 사실대로 설명한 것 역시 본 적이 없기도 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삼전도 삼고구두례 사건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청나라 황제? 인조임금님?

 

정신승리를 잘하는 나라가 우리 곁에 있습니다. 뻑하면 정신승리를 하곤 하지요.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저 나라 또 정신승리한다!면서 은근 웃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 정신승리가 우리나라에서도 350여년 전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정신승리를 획득한 세력이 계속 집권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려 300년 이상을 집권하고 있는 것이지요.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코흘리고 다니던 어릴 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우와~~! 하면서 감탄하기도 했지만 나이 들고 십만양병설을 비판하는 어떤 내용을 책에서 보고 나서야,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못한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십만양병설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고 임진왜란 이후에 변명삼아 만들어 낸 조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병자호란에서 순식간에 깨진 것을 보면 알 일입니다. 도무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니까요. 그와 반대로 어떻게든 양민들을 쥐어짜서 결국에는 애절양이라는 시가 다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지 않으셨다면 무슨 수로 그런 사실들을 알 수 있었을까요.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현재의 대한민국 IT 환경이 한글없이 가능했을까요? 역대 중국의 문맹률이 80%가 넘어 90%에 이른다고 하지만 조선의 문맹률 역시 그에 못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문자는 아무에게나 가르치지 않았으니까요.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역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세종대왕 역을 맡은 한석규씨가 말합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경학을 공부하라 했느냐...(이하 생략)" 죽어가는 백성들을 안타까워 하며 그렇게 절규했지만, 백성의 입에서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데 글자요?" 라며 반문합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지 않으셨다면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한문으로 된 책만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문으로 된 책만 있다면 한글로 해설된 옥편이나 자전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역사 대중화 같은 것은 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오직 구전으로만 한문을 학습하는 행태가 계속되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한글로 된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50년 이상을 살면서 삼전도의 삼고구두례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도 역사적인 어떤 사실이 왜곡이나 조작된 채, 또는 일방의 의견만을 반영한 채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 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에는 소위 금서(禁書)가 있다고 합니다. 저야 역사학도가 아니므로 사실 여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절대로 읽으면 안되는 책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들은 요사, 금사, 만주원류고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나라 황제가 김씨의 후손이라고 하지요? 청나라도 애신각라가 성(姓)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인접한 민족들이었는데 쏙 빼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는 고구려조차 4세기까지 한반도에 없었다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내세워 주장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을 그리지만 역사책에는 고구려 태조대왕이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적고 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의하면 태조대왕 이전의 고구려 왕들은 다 조작이라고 한다네요. 하긴, 을지문덕, 연개소문이나 양만춘은 모두 4세기 이후의 인물들이기는 합니다.

 

고려의 강역이 고려사나 송나라 때의 중국 사서나 지도를 참고하면 요동반도와 길림성 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표시가 되는데 현재 국사교과서에서는 의주 아래로 그려지고 있지요? 서쪽은 그렇고 동쪽은 안변인가? 해서 지금의 원산 부근으로 표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의 강역 역시 세종실록 지리지나 성호사설 등의 문헌을 고려하면 고려의 강역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시대를 더 올라가 신라의 9주 5소경을 검색하면 발해(대진고려)와의 국경이 한강보다 조금 높고 평양 아래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발해(대진고려)를 동북공정에서 중국사라고 한다지요? 지도 검색하면 보실 수 있고 이덕일 역사TV나 복기대 인하대 교수 등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으므로 링크나 지도는 생략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조선인들이 조선의 역사를 읽지 않아서 모르다가 외국인들이 조선사람보다 더 조선사를 잘 알고 있는 것에 부끄러워 그제서야 조선사를 읽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연해주 부근에서 발굴하고 있는 발해(대진고려)의 유적을 러시아가 한국의 역사다 라고 한다지요? 홍산문명 역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라고 해외에서는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를 방치하는 수준을 넘어서 레고랜드가 들어서느니 하는 문제에 대해서 독일 고고학자가 비판하는 영상도 유튜브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워낙 묘해서 해외에서 한국사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한반도 한사군설은 제대로 된 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기고 임나일본부설이 뻑하면 튀어나오지요?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가야 특별전 전시회를 열면서 일본서기를 전시한 사건 등등 임나일본부설이 곳곳에 있습니다. 해외에서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역사를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망신 개망신 당할 날이 그닥 멀지 않아 보입니다. 앞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언급하는 단락이 귀납으로 되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삼전도의 치욕은 누구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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