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문무왕의 유언 중 일부

참그놈 2021. 9. 28. 02:55

삼국사기를 원문으로 읽어보려 용쓰는 중입니다. 오늘 읽던 부분에서 신라 30대 왕이셨던 문무왕의 유언을 보다가 그 일부를 여기에 옮깁니다.


원문,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 7 문무왕 下

且山谷遷貿, 人伐椎移, 吳王北山之墳, 詎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士, 樵牧歌其上, 狐兎穴其旁, 徒費資財, 貽譏簡牘, 空勞人力, 莫濟幽魂, 靜而思之, 傷痛無己, 如此之類, 非所樂焉.

 

해석 :

산천(산곡)은 변하고, 인간 세계는 대를 이어 옮겨간다. 오왕 손권의 북산 무덤에 금향로의 광채를 어찌 지금도 볼 수 있으며, 위왕 조조의 서릉을 바라보는 것도 오직 책 속에 적힌 동작대의 이름만을 듣게 되니, 옛날 만기(萬機)를 다스리던 뛰어난 임금들도 마침내 한 줌 흙무덤을 이루어, 초부와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부르고 여우와 토끼들은 그 곁에 구멍을 파고 있다. 이는 한갓 재물을 낭비하고 거짓과 비방만을 책에 남겨 공연히 사람들의 힘만 수고롭게 만들 뿐, 영혼을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도리가 아니다. 고요히 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상하고 아픔이 그지없을 따름이니 이와 같은 것은 나의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신라왕의 무덤에서 금관이 출토되거나 한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전 세계에서 발굴된 금관 12개 중 10개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라는데, 물론, 백제나 가야의 금관도 있겠지만, 신라지역에서 단지 금관만 출토된 것이 아니라 각종 부장품을 바탕으로 신라를 황금의 나라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무왕의 유서는 화려함이나 정교함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인 듯하여 적어 봅니다.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이 끝나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문무왕 본연의 생각이었을까요?

 

한편, 문무왕이 유언을 한 시기가 AD681년인데, 조조가 동작대를 지은 것이 AD210년 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략 47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데, 동작대가 이미 사라지고 책에 기록으로만 남아있었나 봅니다. 신라에서 당나라로 여러 차례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 직접 동작대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는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