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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와 함길도, 그리고 대동여지도

참그놈 2021. 9. 28. 06:03

남북이 분단된지 70년이 넘었습니다. 서민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 지역에 가보지 못하고 북한 주민들 역시 임의로 남한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렇게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남북의 경제발전 정도나 의식의 차이 등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경제교류는 고사하고 역사나 언어 등 가장 기초적인 교류조차 없는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꾸 축소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아래 사진에 표시된 분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다만 백두산이 우리 역사와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일까요?

 

 

사진 보니까 단박의 한국사 라는 책의 저자 같은데, 그렇다면 대동여지도는 뭣하러 만들었을까요? 제가 알기로 김정호는 백두산만 수 십차례 올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할일이 없어서 그래 전국을 돌아가면서, 그 시절에 차가 있나 비행기가 있나. 김정호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대동여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그렇게나 걸어다녀야 할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요?

 

혹시 함길도 라는 지명을 들어보았는지. 함길도는 함경도의 옛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사극에서 함길도 라는 말이 가끔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고려와 조선의 강역이 잘못 그려졌다는 복기대, 남의현, 이덕일 박사 등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그러고 보니까 함길도 라는 지명이 함경도와 길림을 포괄하여 부른 지명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경도 북쪽으로 공험진까지면 함경도와 길림성을 아우르는 지역이 되지요?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에서 함길도 라는 지명을 썼다는 것은 사실이므로 확인을 하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요.

 

일본이 남북 분단을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쓴 것은 알고 있는데, 국내 학자들까지 백두산이 우리 역사와 관련이 없다는 말은 참 어이가 없네요. 한중 수교가 된 이후 백두산에 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요즘은 이런 산맥 저런 산맥 해 가면서 산을 다 쪼개 놨지만 우리에게는 산경표(山經表) 라는 것이 전해지고 있어서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이나 낙남정맥, 한남정맥 등등 우리 고유의 산줄기를 지칭하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산경표를 왜 만들고 백두대간 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산경표도 그럼 최남선이랑 이광수가 만든 거에요?

 

임나일본부 이야기는 들었지만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보게 되네요. 아무리 초고속 네트워크로 영상이나 음악 등 해외문물의 교류 속도가 빨라지고 넘쳐난다고, 단박의 한국사라는 책 제목을 보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20대 정도를 대상으로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기(禮記)에도 아이들에게는 속이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제는 대놓고 백두산이 그다지 우리 역사와 상관이 없다? 그러게 70여년간은 우리 역사와 관계가 좀 소원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남북이 분단되어 있으니까.

 

조선시대에 와서야 압록강 두만강을 확보했다? 세종(世宗)이라는 묘호는 아무한테나 준답니까? 한무제 유절의 묘효가 세종이잖아요.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땅을 확보했다고 세종이라는 묘호를 준 것으로 아는데, 중국 역사상 최초의 세종이지요? 도무지 철령이나 공험진은... 그러게 일개 서민이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