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사(삼국사기)

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2 원문

참그놈 2021. 10. 9. 09:08

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2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삼국사기 권 14 고구려본기 02.o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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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본기에는 북명이라는 곳이 제가 보는책에는 강릉이라고 지명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무신왕을 도와 종군한 괴유가 죽자 그를 북명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도읍한 지역은 한반도 밖입니다. 만주와 한반도 사이에 백두산이 놓여 있는 것 아시지요? 백두산의 현재 높이기 2744M 인가 그렇습니다만 고구려 시대에는 더 놓았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백두산은 화산입니다. 백두산 천지에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연못이 있고 그 연못을 천지(天池)라고 부릅니다. 대진고려(발해)가 망한 원인도 백두산 화산 폭발일 수도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서기 950년 쯤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했다고 하는데 괴유를 북명(강릉에) 장사지냈다고 했으니 현재보다 산이 더 높고 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한반도 밖에서 강릉까지 시신을 옮겨 장사를 지냈겠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오래 전에 백두산의 높이는 3900M 정도였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려 시대의 백두산 높이는 얼마나 되었는지 기록이 없으니...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당 정인보 선생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선조들은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멋이 있었다는 말씀을 조선사 연구에 적으셨더군요. 옛날 우리 고대에는 우리 사회가 모계사회였다는 그런 내용을 얼핏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혹시나 우리 사회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그런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대의 모계사회가 어떻게 운용되었는지 몰라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사랑에 빠진 여성 이라는 어떤 정형을 볼 수 있지 않나 싶어서요. 사랑을 우선 하다 보니 국가의 안위보다 사랑을 우선하여 호동왕자에게 속았다? 뭐 그런 상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습니까. 여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민족 고대 사회가 중국 한나라가 성립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자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체제가 또 성립했다고는 할 수 없지요. 다만, 한나라가 성장하는 무렵부터 만주와 중국 하북성 산서, 섬서성 등등이 오랫동안 전란의 고통을 겪습니다. 모계사회라는 안정성보다 외적에 대처해야 하는 부계사회의 우선권이 성립하는 과정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좀 엉뚱하지요? ㅡ,.ㅡ 

 

제가 쓴 내용이 우리 고대 사회가 모계사회였다는 설명이 사실이라고 할 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전문 지식 없는 그냥 일개 서민입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혼인을 하면 여성이 자신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일본도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아내가 자신의 원래 성을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 중기 이전에는 족보에 딸이나 사위 이름도 모두 기록했다고도 합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점차 남성들 위주로 기록이 되지만요.

 

신라본기나 고구려본기나 낙랑이 너무 자주 나와서 헷갈립니다. 낙랑군인지 낙랑국인지 정확한 구분없이 그냥 낙랑이라고만 써 놔서 해당 낙랑이 낙랑국인지 낙랑군인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이름의 낙랑이 있는 것인지... 아시다시피 우리 역사에는 가야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비화가야 등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냥 통칭해서 가야라고 부릅니다. 혹시 낙랑도 A낙랑, B낙랑, C낙랑, D낙랑, E낙랑 등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냥 낙랑으로 퉁친 것은 아닐지...  어쨌거나 아랫 부분은 삼국사기 고구려 백제 신라 본기 곳곳에 낙랑이라는 명칭이 자꾸 나와서 그냥 헷갈려서 적어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