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사(삼국사기)

삼국사기 권20 고구려본기 8 원문 (평양은 어디인가?)

참그놈 2021. 10. 14. 15:32

삼국사기 권20 고구려본기 8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삼국사기 권 20 고구려본기 08.o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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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본기에도 고흥이 서기를 지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고구려도 600년에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했다고 나옵니다.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문자는 아마 한자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한자를 이용하여 신집을 지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전에 쓰인 유기 100권은 한자가 아니라 다른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고유의 문자가 있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발해(대진고려)와 당나라 간의 외교 관계에서 발해(대진고려) 문자를 이해하지 못해 이태백이 번역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이태백이 여행을 하여 동방으로 왔다가 고구려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태백이 살았던 시기가 고구려와 발해(대진고려) 두 왕조에 걸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태백이 고구려 사람들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감탄했을 정도면 고대 고구려인들이나 발해(대진고려)인들이 전투력만 강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수나라가 2차 침공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일까요? 배구가 고구려가 있는 자리가 기자가 봉받은 지역이라 말하면서 한나라나 진나라 때 군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자묘는 하북성에서 발견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고구려 본기 마지막에 김부식이 쓴 것을 보면 고구려는 중국의 동북부에 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고구려의 원래 위치는 하북성이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 파일 주석에 적어 놓았지만 기자가 조선으로 갔고 주나라 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했지만 신하는 아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는 상서대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는데, 한나라 때 조한전쟁에서 한나라가 우위를 점하기도 하고 고대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기 시작하는 때라서 어쩌면 기자를 조선에 봉했는데 신하는 아니었다는 말이 나중에는 중국의 영토인 것처럼 당연시 되었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수나라 양제가 2차 침공을 준비하는데 탁군에 모입니다. 삼국연의를 읽어보셨다면 탁군이 어디인지 아실 것입니다. 또 삼국연의 지도로 검색하면 탁군이 현재의 북경 왼쪽에 표시되는 것도 보실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세상이지요? 그러나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탁군에 집결했다는 것은 고구려의 경게가 탁군에서 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수나라 양제의 고구려 침공에 대해서는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도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는 것과 달리 실제로 읽어보니까 좀 더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도 들을 수 있지만, 평소 역사 서적을 가까이 하지 않던 사람에게는 음성으로 진행되는지라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 역사를 누군가 왜곡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가 쏠려서 그랬는지 뭔가 반감은 생기고, 반면 그다지 이해는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니 차이가 나는 것 같네요.

 

아래 보시면 좌12군, 우12군, 어영군 12위 해서 100만 대군이 진격하는데 40일이 걸리고 그 길이가 960리, 거의 400km에 이른다고 이만한 군세는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평양이 현재의 북한 평양이라면 요하도 건너야 하고 압록강도 건너야 하고 백두산도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탁군과 압록강 사이에만도 적잖은 강들이 있지요. 그리고 그 거리는요. 탁군에서부터 백두산까지도 거리가 가깝지 않지만 고구려 시대에는 백두산도 지금보다 높았을 수 있습니다. 발해(대진고려)의 멸망원인으로 백두산 화산폭발을 들기도 합니다. 즉, 화산 폭발로 인해 백두산 높이가 현재의 2744M로 낮아진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험한 산이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예전에 봤던 어떤 책에서 고대의 백두산은 3900M가 넘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고구려 당시의 백두산 높이는 알지 못하지만요.

 

 

수나라의 2차 고구려 침공때 평양이 현재의 북한 평양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북한 평양을 공격하기 위해서 탁군에 모여 거기서부터 행군한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살수가 청천강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했지만 삼국사기 원문과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탁군 등의 지도를 펴보고 지금 생각하니까 웃음밖에 안나오네요. 학교다닐 때야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만 어이가 다 없습니다. 도무지 우리나라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것인지 다 궁금하네요. 현재의 북한 평양을 치기 위해서 탁군에서 모여 행군한다! ㅋㅋㅋㅋ

 

옛날 국사 선생님들이 거짓말을 하셨을까요? 그 보다는 세계지도를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시대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요즘에야 구글(Google), 빙(Bing) 할 것이 지명 입력하면 곧바로 지도를 확인할 수 있잖아요. 축도까지 다 표시해주고... 그런데 1980년대까지는 다 책으로 된 지도책을 보던지 해야 했는데 요즘처럼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던 때도 아니고 아무래도 실질적인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자기 주변만 보게 되고 멀리 보지 않게 됩니다. 1988년에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기는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가 형편이 넉넉한 나라는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게다가 지도 관련 책이 비싸기도 비싸요.

 

아래 스크린샷 보시면 진대덕이라는 간첩이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본사군지이(한자생략)라는 문장을 보고서 어쩌면 저곳이 고구려의 발상지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