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17 고구려본기 5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아래 스크린샷 보시면 관구검이 쳐들어 온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만을 이끌고 왔다고 하는데, 그에 맞서는 동천왕은 2만의 병력으로 맞서 싸웁니다. 그런데, 동천왕이 말하기를 관구검의 군사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상하지요? 해당 내용에 대해 검색을 해 봤는데, 삼국지 정사에는 관구검이 2차례 고구려를 공격했다고 하는데 기록이 애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구검이 고구려를 이기고 후(侯)로 봉해진 자가 100여명이나 되었다고 단재 신채호 선생도 비판을 하셨다고 합니다. 삼국연의 보시면 관우가 한수정후인가 그렇지요? 아무나 후(侯) 봉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고구려를 공격한 당시 위나라 군사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수도에까지 쳐들어가서 도살을 하는 경우는 원한관계가 심하다던지 한 경우에나 하는 짓이랍니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보시면 진린이 이순신 장군과 협력하면서 황제의 군대는 함부로 나대는 것이 아니다. 위엄을 보이는 것이다 뭐 그런 이야기 나옵니다. 하긴, 사마병법은 후대에 나온 것이기는 할 겁니다. 사마병법은 옛날 중국군의 공식 병법서? 뭐 그런 것이라네요. 그런데 수도에까지 쳐들어가서 사람을 마구 죽였다는 것은 관구검이 맺힌 게 많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평양에 대해서 나옵니다.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평양자선인왕검지택야) 라고 적혀 있는데 해당 구는 중국 사서에 종종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도상에서 지금의 북경 약간 오른쪽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양이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곳이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도 남평양을 순수(巡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아래 스크린샷에는 서위(西魏)가 나오는데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네요. 6세기 경에 중국에 서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기록보다 300여년 후에 성립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책을 보면 숙신, 식신, 동호, 산융 등 여러 족속(?)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측에서 개별 족속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시대에도 숙신이 있었나본데 숙신은 주나라 초기에 활과 화살을 조공했다는 기록이 중국 측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주 무왕 때에요.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1000년을 이어온 민족이라는 말이 됩니다. 고대의 여러 종족들이 씨족, 부족으로 증가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족속들이 파생될 터인데 1000여년간이나 한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한쪽은 중국측의 기록이고 또 한쪽은 우리의 기록이라는 차이가 있기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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