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절(禮節)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매너(Manner)로 번역되기도 하는가요? 뭐 사실 저는 예(禮)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느 유교의 영향으로 예(禮)가 오랫동안 강조되어 온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어째 주워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시기 사색당파로 대표되는 붕당들이 예송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데, 유교 경전들을 주구장창 혀가 닳도록 읽고 외우고 했으면서도 논쟁을 벌일 만큼 어려운 것을, 학문이라고는 거의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가 예(禮)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인터넷에서 어떤 동영상 강의라고 해야 할지 뭐 어쨌거나 어떤 영상을 보고 있는데 해당 영상 중에
예(禮)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규범?
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禮)가 아랫사람이 위사람을 모시는 규범이었나? 싶어서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이런 내용 포스트 하고 있습니다. 예(禮)가 뭔지도 모르면서... ㅡ,.ㅡ
예전에 예기(禮記)를 읽어보려 했던 적이 있는데 결국 다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 라는 말이 있지만 가다가 아니 가면 간 만큼은 이익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무지렁이에 불과하지만 예(禮)는 아랫사람이 위사람을 모시는 규범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한 것이지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일방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부자자효(父慈子孝)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버이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식은 효도를 해야 한다.
라는 뜻인데, 효도를 어떻게 하느냐면 주자의 사자소학으로부터 소학, 계몽편 등등 갖가지 책에 그 방법이 설명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기(禮記)라는 책에도 당연히 적혀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예(禮)라는 것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것만 나열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속이는 말을 하면 안된다.
짝다리를 짚지 마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지 마라
등등 아랫사람이 위사람에게 해야 할 행동 이외에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야 할 것과 평소의 몸가짐 등에 대해서도 골고루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禮)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경우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인간 상호간에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한 것이라고 봐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관계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말이 바로
부자자효(父慈子孝)
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어버이(아버지와 어머니)들과 자식들(아들과 딸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왕이든 재상이든 장관이든 또는 장군이든, 농부든, 어부든... 그러나, 왜 그 중에서 효(孝)만을 강조하였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慈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행하는 예(禮)라면 孝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하는 예(禮)라고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아랫사람이 해야 하는 예만 강조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년 정도가 되면 웬만하면 다 죽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자식들이 태어나는데 갓 태어난 자식들은 무지합니다. 효(孝)는 곧 자(慈)의 근원이고 뿌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효(孝)를 강조한 것입니다. 혹시 사서(四書) 중 대학을 읽어 보셨다면, 저도 대학을 두 세 번 밖에 읽어보지 못하였으나, 대학을 읽기 전에 반드시 소학을 읽어야 한다고 주자(朱子)가 강조합니다. 대학의 근원이고 뿌리가 되는 것이 소학이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속담에 어른들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자다가도 생긴 떡을 먹는 그는 어른이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떡만 먹으면 체하는 이에게 떡을 먹으라고 강권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자(慈)이고 예(禮)일까요?
예(禮)라는 것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규범이 아니라는 것은
사람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고 제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긴다
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역대 중국에서 황제의 표정만 일그러져도 죽어나간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고 역모에 얽히기라도 하면 3족이나 9족이 죽어 나간 사건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입니다. 신하들조차 그런데 허접한 찌그레기 같은 백성이 하늘이라...? 예(禮)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규범이라고 한다면 생길 수 없는 말 아니겠습니까.
예기(禮記)라는 책을 펴면 첫편이 곡례편인데, 곡례편 첫머리에
曲禮曰 毋不敬 儼若思 安定辭 安民哉
라고 적혀 있습니다. 해설을 보면 곡례 3000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오직 毋不敬 하나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安民哉(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윗사람이 한 말이겠지요? 아니면 성인(聖人)이랄 수 있는 분이 毋不敬 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위로 올라가서 더 무거운 책일을 맡을수록 더더욱 毋不敬 해야 하겠지요? 요즘 대한민국 백성들이 그닥 편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던데 총리나 장관 후보들의 인사청문회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세금을 장관후보자가 낼 때는 5%, 장관후보자가 받을 때는 43%, 총리 후보자는... 장관 보다 총리가 더 높지 않나요? 에이 모르겠어요. 정치 관련 뉴스나 보도는 잘 안 보는 편이라...
예(禮)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규범
이라고 설명하는 근거를 사실은 모르겠는데,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라는 무단통치를 받은 기간이 있습니다. 대략 한 35년여 되는데, 무단통치 라는 것이 한마디로 무식하고 무지하여 아무 것도 모르면서 통치를 했다 라는 뜻입니다. 애초에 예기(禮記)라는 전적조차 읽어 본 적 없는 무리(? : 당시 일본에서의 전통 그런 것은 모르지만 무사계급이 통치를 하던 나라이므로)들이 35년여를 통치했는데 그 때의 악습이 걷히지 않아서 지금껏 예(禮)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규범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윗사람이 갑(甲)이거든요. 하다 못해 도장을 찍을 때 조차도 최상위자만 똑바로 찍고 그 나머지는 모두 기울여서 찍지 않습니까. 예(禮)를 일본인 자신들 습속에 맞추어 강요한 것이 지금껏 주자 성리학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에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신독(愼獨)이라고 해서 혼자 있을 때도 방만하지 않은 것이 예(禮)라고 알고 있습니다.
100여년 전 영국이 중국에서 효(孝) 사상을 수입해 가서는 충격을 받았다는데, 영국이 효(孝) 사상만 알고
부자자효(父慈子孝)
라는 구에 내포된 사상까지 알았을까요? 그게 갑자기 궁금하기도 하네요.
아시다시피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는 어쩌면 일본이 해석해 주는 동양경전을 특히 참조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세계의 강국이었던 것이 사실이므로... 그러나, 동양 경전에 대한 번역과 해석을 일본에 의존했다면 그건 모두 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무사적 전통에 기반하여 편향적으로 해석된 것이 서구 제국주의적 논리에 부합하는(?) 그런 논리로 비쳐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책도 없고 읽어 본 적은 없는데 동생이 책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동생 집에 갔다가 잠깐 펴 봤는데 상황윤리에 관한 내용이라 책의 내용이 대충 짐작이 되길래 더 이상 보지 않았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아시다시피 유럽에서는 1차, 2차 대전이 있었는데, 독일군에게 쫓기던 어떤 아기 엄마가 있었다고 하십시다. 그 어미에게는 걸을 수 있는 아기와 걷지 못하는 젖먹이 아기가 있었는데, 추격하는 독일군에게 잡히지 않으려 보채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가 그만 젖먹이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미는 자식의 윗사람인데 자신이 살기 위해서 죽인 것이겠습니까? 걸을 수 있는 자식을 함께 데리고 있었으므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 것이겠습니까? 비슷한 내용은 자본론 노동일 부분에도 나옵니다. 아비는 일을 해야 했으므로 자식을 굶겼다는... 서구인들이 의외로 무식했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고...ㅡ,.ㅡ
조선왕조에서 당쟁이 발생한 원인을 아시지요? 이조정랑의 자리를 두고 누구를 앉히느냐가 쟁점이 되었지요. 정 5품? 정 6품? 품계도 높지 않습니다. 딱 중간인데, 그럼에도 이조정랑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무나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넘어 비판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한 것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삼봉 정도전 이라는 인물이 왕자의 난에 얽혀 죽기는 하였으나 위인이신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조선왕조가 이조정랑 자리를 두고 치고박고 싸울 줄 어떻게 또 알았겠습니까. 예(禮)가 단순히 아랫사람이 위사람을 모시는 규범 이라고 정의 될 수 있다면 이조정랑 같은 관직이 생겼을 수 있었을까요? 이조정랑 쯤 되면 왕(王, 至尊)도 깔 수 있지 않나요? 조말생이 그래가지고서는 장원급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말생은 이조정랑이 아니기는 했네요. 비판의 발언을 들을 수 있는 귀가 그래도 조선왕조에서는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붕당이 생기고 치고박기 전에는...
이쯤 이야기 했으면, 그렇다면 예(禮)라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어떤 결론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무지렁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저도 예(禮)라는 것이 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무불경(毋不敬)이나 신독(愼獨) 등을 보았을 때 예(禮)라는 것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규범 이라는 설명은 말도 안되는 궤변일 수도 있다는 것은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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