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읽은 책 중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게 마련입니다. 최근에 읽은 신영복 선생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과 함께 제게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조선사)가 그런 책 중의 하나입니다.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몸이 아프기도 하고 여러 사정 때문에 다시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다 붙박이로 카테고리 하나 만들어서 포스트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읽어보려 합니다.
우리 역사가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다시 읽으려 하는 것은 역사 문제 때문은 아닙니다. 역사 왜곡이라거나 하는 그런 큰 문제는 저 따위 무지한 촌놈이 생각하기는 주제넘은 일이고, 다만, 살다 보면 생각하는 삶을 살라거나 생각하고 말을 하라거나 하는 말들을 여러 번 듣게 되는데, 참 생각없이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 제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였습니다. 생각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여전히 생각없이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또 읽으려 합니다.
각설하고, 흔히 알려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의 원래 제목은 조선사(朝鮮史) 였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제목의 조선(朝鮮)을 단군 조선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의 조선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군 조선이라면 단군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역사이지만 조선왕조를 가리키는 조선이라면 지금으로부터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주 먼 시기의 일이라는 단절감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역사 라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토막나지 않는 것이고 조각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사를 신문에 연재한 것을 나중에 조선사(朝鮮史) 라는 단행본으로 출간하였고 더 나중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로 다시 제목이 바뀌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사 마지막 부분이 백제가 부흥 운동을 하는 부분인데 그 부분에서 연재가 종료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서가 많이 없기는 하지만 고려사도 있고 조선왕조실록도 있으므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라는 제목 보다는 조선사(朝鮮史)가 합당하게 여겨집니다. 포스트 제목에는 조선상고사라고 썼는데 보통은 그렇게 알려져 있어서 그렇게 썼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는 박기봉 역 비봉출판사에서 2012년 4월에 펴낸 초판 13쇄네요. 이후 나오는 페이지 표시는 모두 비봉출판사 박기봉 역 조선상고사(朝鮮史)의 페이지 번호입니다.
P. 24에 역사(史)의 정의와 조선역사의 범위라고 제목이 붙어 있는데, 1930년대에 신문에 연재될 때는
史의 定義와 朝鮮歷史의 範圍(사의 정의와 조선역사의 범위)
라고 되어 있었나 봅니다. 박기봉 역본에는 "역사(史)" 라고 적혀 있는데, 역사(歷史)라는 어구로 쓴 것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 史로 적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한글본인 역사의 아침 출판사 김종성 역본에는 한자 표시 없이 그냥 "역사"라고 적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조선상고사 파일이 배포된 것이 있는데 그 파일에도 한글로 그냥 "역사"라고 써져 있고 한자 표기는 없습니다. 史는 말 그대로 역사(歷史)일 수도 있고 역사서(歷史書)일 수도 있고 사관(史官)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사관(史官)들이 가지고 있는 평가 기준이나 역사서를 저술하거나 편찬하는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 첫 장에서 史가 어떤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그런 것을 따지느냐며 비난하실 분이 계실 듯한데, 단재 선생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중국에 계실 때 신문에 논설인지 사설인지를 쓰신 적이 있는데, 단재 선생께서 쓰신 글을 편집자가 글자 몇 자를 바꾸어 실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편집자에게는 고작 글자 몇 자였지만 단재 선생께는 그 글자 몇 자가 어떤 의미였는지 곧바로 신문에 글을 쓰지 않겠다며 절필 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그 사건으로 단재 선생과 신문사간에 어떤 말썽이 있었다고 합니다. 글자 몇 자의 차이지만 단재 선생께는 몹시 중요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해당 내용은 P.574에 나옵니다. 당시 단재 선생께서 글을 쓰시면 신문의 발행부수가 4~5천부 정도 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나 우국지사들의 규모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당시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궁금한 중국 내 지식인들의 구독자 규모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때부터 역사대중화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 전문가들의 영역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알려지고 있다는 말인텐데, P.33에 크롬웰의 초상화를 예로 들면서 조선사 다운 조선사가 아니라 무수히 혹이 붙은 조선사조차도 조선인들이 읽지 않다가 외국인들이 조선사를 더 많이 알고 있어서 창피를 당한 끝에 그제서야 조선사를 읽는 이가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역사대중화의 시작은 어쩌면 단재 신채호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덕일 박사의 역사 관련 영상을 보면 대한민국 대학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강의하는 대학은 한 곳도 없다고 하네요.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P. 10에 조선상고사는 1931년 6월 10일부터 10월 14일까지 총 103회 걸쳐 연재되었고 독자들의 절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하는데, 국한문 혼용인 당시의 상황과 인구나 신문 발행부수, 문맹률 등을 고려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맹율은 거의 0%에 가깝지만 1930년대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신영복 교수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이라는 책에 "시제(時制)" 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테타인지 혁명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병역 기간을 3개월 추가하여 한글을 가르쳐 전역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경제성장과 함께 현재는 문맹률 0%에 가깝게 되었는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기 전에는 저 스스로 따져 보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령, 한사군이 현재의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런가 보다!" 했고, 한사군은 북한 평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들으면 역시 "그런가?" 라고 생각하는, 어느 쪽의 주장이 옳거나 그른지 알 수 없는 어리벙벙한 상황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고 난 이후에야 그나마 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생각없이 살았구나 싶더군요. 예로 든 한사군 문제는 지금도 저는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읽어 본 몇 권 책들이나 영상 등을 기준으로 하면 한사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게 되기는 하는데, 이덕일 박사가 한사군에 대해서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 중국측 사서에는 한사군이 모두 재요동(在遼東) 이라고 해서 북한 평양은 전혀 언급을 안한다고 하지만 저 자신은 중국측 사서를 전부 읽어 본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들은 모두 읽어들 보셨나요? 그런 책이 어떤어떤 책들이 있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대부분이 모른채 살고 있지 않나요?
공영방송에 나와서 누군가 단군은 신화다 라고 말합니다. 유명 역사학자를 섭외했을 것이므로 방송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군! 하지 않겠습니까. 반면 개인 방송이지만 역사 채널을 운영하는 이덕일 박사나 기타 여러 역사 전문가들은 단군은 역사다 라며 그 반대의 주장을 한다고 하는 경우,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여러분은 판단하실 수 있습니까? 한사군 문제도 그렇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재요동(在遼東) 이라는 구를 읽어 본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지금도 한사군 으로 검색하면 재요동(在遼東)이라고 적힌 한문 원문 다 검색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책에 적혀 있는지도 대중인 우리는 모릅니다. 그렇잖아요. 관심있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요?
내가 읽어 봤더니 중국측 역사서에는 하나같이 한사군재요동(漢四郡在遼東)이라고 적혀 있더라!
라고 주장하는데, 일단 한사군이라는 말이 어느 사서 어느 부분에 적혀 있는지 우리(대중)는 모르잖아요. 그렇게 주장하는 이덕일 박사가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느냐면 그것조차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니 사이비역사학이니 유사역사학이니 하는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일관성은 있지요. 지속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업로드도 하고 출판도 하니까요. 그렇게 치면 소위 강단사학자들도 일관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개인방송도 아니고 공영방송에서 당당하게 주장하잖아요. 이덕일 박사 외에 여러 역사 관련 종사자들이 비판을 할 때마다 그 때마다 그럼 책도 사고 영상도 봐야 하고 뭐 그래야 되나요? 개인방송이 아니라 공영방송에서 한사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고 하는데?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그럴 시간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요?
이덕일 박사가 운영하는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자료실을 들른 적이 있습니다. 한사군(漢四郡)에 대해서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 있나 해서요. 하지만 없었습니다. 반면, 이덕일 박사가 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라는 책에는 한사군을 처음 언급하는 책은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이다 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기정의나 사기집해 같은 사기 주석을 인용하며 2군이라고도 했다가 3군이라고도 했다가 오락가락 한다는 설명은 있습니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라는 책은 몇 명이나 읽었을까요?
이덕일 박사나 역사학계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나 자신이 읽어 본 적 없고 역사서 원문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역사서를 모두 읽어들 보셨습니까? 원문은 다 보유하고 계시고요? 파일(File)로라도 혹시 다 가지고 계신 분 있나요?
저는 50대라 어려서부터 단군 할아버지라는 말을 듵으며 자랐습니다. 역사인지 신화인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라는 말 때문인지 그저 친숙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단군이 역사인지 신화인지도 제게는 중요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된 것이 단군이 역사냐 신화냐에 따라 뭔가가 크게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공사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놈이 이제 와서 역사학도를 꿈꾸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 나고 자라 얻어먹고 살았으면 나고 자란 나라의 역사는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학교에서 국사도 가르치고 그러는 거잖아요. 뭐 어쨌거나 단군이 역사인지 신화인지, 한사군이 북경 쪽에 있었는지 평양에 있었는지 모르겠는 가운데 무지렁이 주제에 그런 유식한 분들을 본받으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다 들고 그러더군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다시 읽으려 하는 것이, 민족사학의 입장에서 단군 조선과 삼조선을 언급한다고 해서 읽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단군이 역사냐 신화냐 또는 한사군이 북경 근처에 있었으냐 현재의 북한 평양에 있었느냐 하는 논쟁 이전에, 조선사(조선상고사) 라는 책 속에는 역사서를 읽고 그 전후 관계를 어떻게 따져야 하는지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입니다. 단군이 역사이고 삼조선을 주장하는 것보다 어떻게 이해를 하고 파악을 해야 하는가, 즉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여겨져서입니다.
그럼 여기서 다시
史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텐데, 史가 역사인지 아니면 역사서(歷史書)인지 그도 아니면 사관(史官)이나 사관(史官)들이 가지고 있는 평가 기준이나 역사서를 저술하거나 편찬하는 기준인지가 중요하리라 여겨지네요. 史를 옥편이나 자전에서 찾아보면 "역사 사(史)"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사(史)는 판단하거나 평가한다는 의미가 강하리라 생각합니다.
사관(史官)은 임금의 말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고 행동을 기록하는 사관이 별도로 있었다고 합니다. 말과 행동(言行)을 모두 기록하여 모았다가 역사에 기록할 것과 기록하지 않거나 말아야 할 것을 평가하고 가려서 실록이 되던지 역사서가 되던지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어서 나오는 내용에 아(我)와 비아(非我)를 설명하면서 주관적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주관적이겠지요? 그러므로 사(史)는 주관적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한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네요.
'조선사(朝鮮史 : 조선상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8 - 조선열전은 분리된 것이었다 : 대륙삼국설 (0) | 2022.05.31 |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7 - 세조의 만주침략의 꿈? (0) | 2022.05.31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6 - 수 백원이 있으면 묘를 파 볼 수 있을텐데 (0) | 2022.05.31 |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史) 읽기 5 - 이두형의 비판 (0) | 2022.05.29 |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史) 읽기 2 - 역사란 무엇인가, 주관적이란... (0) | 2022.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