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朝鮮史 : 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史) 읽기 5 - 이두형의 비판

참그놈 2022. 5. 29. 13:37

비봉출판사 박기봉 역 조선사(조선상고사) P33에 이두형이라는 분의 아래와 비판이 나옵니다. 해당 문제는 비단 이두형이라는 분만 비판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도 이미 그런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 까닭인지 연암 박지원을 조명하는 책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이태준 님의 문장강화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실상과 부합하지 않은 채 문자와 자구만을 취해서 시절도 감정도 무시된 글을 썼노라며 비판하시고는 글쓰기 요령을 설명하시더군요.

 

 

이두형(李斗馨 : 조선 정조때의 인물? 원주)이 말하기를, “요즘 어느 행장(行狀)과 묘지명(墓誌銘)을 보든지, 그 글 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반드시 용모는 단정하고 엄숙하며, 덕성은 충후(忠厚)하고, 학문은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를 본받고, 문장은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를 숭상하여 거의 천편일률(千篇一律)이니, 이는 그 사람을 속일 뿐 아니라, 그 글도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이두형 이라는 분이 어떤 분이지 모르지만, 성리학(性理學)을 추종하면 누구나 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해지고 덕성은 충후해 지고 문장은 한유와 유종원 처럼 된다는 말로 이해가 되네요. 천편일률이라고 비판하지만 그것이 아마 중용(中庸)의 도에 이르렀다는 찬사로 쓰인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살면서 중용을 두어번 읽어 봤는데, 중용을 고작 두어번 읽은 것으로 중용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습니까만, 중용은 중국 형이상학의 최고봉이라고 한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았다는 그런 경지를 성리학에서는 중용이 대변하고 있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의병 뿐만 아니라 승병(僧兵)들도 일어났지요. 그래서 한국 불교는 호국불교(護國佛敎)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까닭을 설명하면서, 임진왜란 때 서애 유성룡 대감이 왜(倭)와의 전쟁에서 이룬 전공에 따라 노비를 면천하거나 하는 각종 공약을 내걸었는데, 유성룡은 파면(?)되고 다음 번 재상이 된 누군가가 유성룡 대감의 약속들을 모두 파기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예송논쟁만 발생했다고 합니다.

 

공자 맹자를 언급하며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사서(四書)가 권장도서에 빠지지 않는 나라에서 해괴한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닐까요? 예송논쟁 이후로는 백골징포나 황구첨정 같은 말도 생겨나니까요. 공자가 인(仁)을 강조하면서 맨날 책만 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춘추좌씨전에 나옵니다. 공자는 병법의 대가이기도 했지요. 춘추좌씨전을 한 번만 읽어 봐서 어느 부분에 나오는 나오는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나라 군주와 제나라(?) 군주가 만나는 자리에서 공자가 했던 일을 기록한 부분을 읽은 기억은 있네요.

 

혹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라는 책을 읽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입니다. 그 책에는 유가의 경전들을 읽은 다음에 역사와 병법을 읽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책도 오래 전에 한 번만 읽어 봐서 어디에 나오는 내용인지는 모르겠네요. 조선왕조의 선비들이 인의(仁義)와 예(禮) 만을 좇아 매일 탁상공론만 한 것도 아니라는 말일텐데, 게다가, 예악사어서수 육예(六藝)에는 말타기와 활쏘기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왜 묘비명에 활을 잘 쐈다거나 말을 잘 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요?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나 중용의 도가 같은 것이라면 그 전제는 무엇일까요? 물으나마나 나라와 백성일 것이잖아요. 중용의 이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라와 백성을 도외시한 채 단정하고 엄숙한 외모와 충후학 덕성 그리고 한유와 유종원의 문장 만을 추구했다는 뜻일까요? 그래서는 임진왜란도 겪고 병자호란도 겪고?

 

요즘 고위공직자 후보들을 보면 그 자녀들이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국적도 이중국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은 군역을 지지 않았지요? 그런 것을 전통이랍시고 고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소위 잘 먹고 잘 살게 되나요?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후 당시의 서인들이 인조 임금님은 우리의 임금이 아니라 명나라 황제가 임금이라며 조선의 임금을 제 1 사대부라고 했다는 내용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인조 임금님 때에는 이미 중원에 청나라가 성립해 있을 때임에도 명나라 연호를 계속 쓰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하고 해방이 된 이후에는 이제 미국을 좇아 살겠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도무지 대학이나 중용(中庸)이 가르치는 것이 뭘까요? 식읍(食邑)을 잘 챙기고 온 백성을 노비로 만들라는 그런 것일까요? 저는 대학을 세 번인가 읽어보고 중용도 두어번 읽어 봤는데 하필 대학이나 중용에는 노비(奴婢)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직분(職分)이 있다면서 직분에 따라 살게 한다는 그런 내용만 있었던 것 같네요. 혹시 대학이나 중용을 읽어 보신 분들 중에 그 책들 속에서 노비(奴婢)라는 말을 보신 적이 있나요?

 

20대 30대 영끌족이나 빚투한 이들이 40년 금융노예(奴婢)가 될 것이라며 경제 관련 영상에서 설명을 하던데, 월급 받아서 40여년간 월급의 상당부분을 빚갚는데 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사서 중 대학(大學)의 혈구장이 경제학 논술이라는데 혈구장에서도 노비(奴婢)라는 말을 읽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유가 경전 13개 중에 노비(奴婢)나 노예(奴隸) 라는 말은 몇 번이나 나올까요?

 

주자의 대학장구 서문에

 

蓋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이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모두에게 주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인의예지의 성을 모두에게 부여했으나 성품과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차별하지 말고 제왕된 자는 사람을 잘 이끌어 복기성초(復其性初) 하도록 하라는 것이 유학(儒學)의 가르침 아닌가요? 그런 것을 왕도정치(王道政治) 라고 하고...  그런데, 고대에 노비나 노예는 사고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물건이나 진배 없다는 말인데, 추노(推奴)라는 드라마에서 보듯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면 조선 초기에는 그닥 많지 않았던 노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그 통계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사람을, 인의예지의 성(性)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모조리 물건이 되도록 정치를 했다는 말이잖아요. ㅡ,.ㅡ

 

어째 우연히 살다가 지치(至治)라는 말도 들어보고 그랬는데, 지치(至治)란 지극한 정치 라는 뜻이랍니다. 지치(至治)가 행해지면 온 세상이 노비(奴婢)가 된다는 말일까요? 금융노예? 누가 공자를 4대 성인이라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청출어람이라고 하잖아요. 하긴 지금은 성리학(性理學)의 시대가 아니기는 하네요. 성리학(性理學)이 원래 성리학(性利學)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쨌거나 지금도 사서(四書)는 권장도서에 꼭 포함되어 있고 오경(五經) 역시 권장도서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렇게 포스트를 써 놓으면 공자나 맹자 주자를 성인이라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이 마구 나무라시겠지요? ㅡ,.ㅡ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가 경전 13권을 모두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읽어 본 내용에는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인의예지의 성을 부여했다거나 뭐 그런 내용은 있었도 사람을 노비(奴婢)로 전락시키라는 그런 내용은 도무지 못 본 것 같은데, 조선왕조의 역사에도 노비는 점점 늘어갔고 현대 사회도 금융노예가 증가하고 있다고 하고... 책에는 성리학(性理學)으로 적고 실천은 성리학(性利學)을 추구한 것 같은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최근 유튜브를 보니까 플라톤의 대화나 자본론 국부로 같은 경제 고전 외에도 서구의 여러 고전들 뿐만 아니라 논어나 맹자 같은 동양의 고전들도 강의를 하고 그러더군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0%에 가까운데 그런 까닭으로 성리학(性利學)처럼 실천된 것 같은 성리학(性理學)의 본래 의미를 깨우치는 분들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한편, 주자 성리학(性理學)이 21세기에 맞는 논리인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주석까지 있는 대학(大學)을 읽어 보면 주자가 여성은 교화되기 어렵거나 교화가 안된다며 설명하고 있거든요. 왜 여성은 교화가 안되거나 어렵다고 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여성은 교화가 안된다, 어렵다 라고만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녀평등을 외치는 시대에... 하필, 주자 성리학이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풍습이 유입되면서, 그리하여 유곽이나 집창촌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성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말을 2022년 지금도 하지 않습니까. 여성은 교화가 안되거나 어렵다는 는 주자의 가르침과 여성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하는 일본 풍습과 얄궂은 결합을 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살면서 대학이나 중용 논어 맹자는 그래도 한 번씩은 읽어 봤고 무슨 일이지 춘추좌씨전을 한 번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거의 1년이 걸리던데, 그 외에 예기(禮記)도 조금 읽어보고 서경(書經)도 조금 읽어보고 그랬는데, 유가 경전을 모두 읽어보지 않아서 저는 유학(儒學)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노비없는 세상을 추구한 것이 유학의 가르침인 것은 아닐까요?

 

중용(中庸)의 도리를 추구하다 이두형의 비판처럼 용모는 단정하고 엄숙하며 덕성은 충후하고 문장은 한유와 유종원을 본받다가 임진왜란도 겪고 병자호란도 겪고 을사늑약에 뭐 갖가지 희안한 일을 겪었는데, 말타기를 잘하고 활쏘기는 주몽과 같고 병법은 강태공의 육도삼략을 본받았다는 그런 구절이 조선 선비들의 묘비명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것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