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朝鮮史 : 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史) 읽기 2 - 역사란 무엇인가, 주관적이란...

참그놈 2022. 5. 27. 20:55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史) 읽기 1 에 역사(史)의 정의 라고 쓴 것이 있는데, 제목을 보면 내용이 중복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부분은 본문을 두고 쓴 것입니다. 조선사(朝鮮史) 1편 총론의 첫 문장이

 

역사란 무엇인가(歷史란 무엇이뇨)

 

로 되어 있는데,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역사가 "인류 사회의 ‘我’와 ‘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 상태의 기록" 이라고 하셨는데, 역사의 아침 출판사 김종성 역본에는 

 

...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의 기록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김종성 역본은 대부분이 한글로 되어있는데 心的 이라는 한글세대가 한자어구를 눈여겨 볼런지는 모르겠네요. 마음(心) 가는데 몸이 가는지, 몸 가는데 마음(心)이 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심적(心的) 활동일 때는 뭔가 현장성 - 여기저기 뛰어다닐 것 같은 - 이 느껴지는데, 정신적(心的) 활동일 때는 책상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듭니다. 제목도 출판사마다

 

1장 역사의 정의와 조선사의 범위

 

라고 해서 범위라고 모두들 쓰고 있는데, 김종성 역본에는 범위라는 말 대신 범주라고 적혀 있네요.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출판사가 다른 세 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세 권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범위와 범주의 차이인데 비슷한 말이지만 어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말씀하시면서 아(我)를 "주관적(主觀的) 위치에 선 자" 라고 설명하시는데, 주관적이라는 말을 이해하기가 애매합니다. 인물연구소에서 펴낸 조선사(조선상고사)에는 "주관적(主觀的)"이라는 말에 대해

 

시공을 유전하는 심적활동 상태에 촛점을 맞춰 볼 때, 마명(馬鳴)의 대승기신론 해석분에 따라 적절한 풀이를 시도할 수 있다. 일심(一心)에 이문(二門)이 있는데, 진여문(眞如門)이 아(我) 라면 생멸문(生滅門)은 비아(非我)를 뜻하게 되어, 이들 이문(二門)은 갈등, 대립, 동요 속에 있으면서도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일체법을 포괄한다. 광명(光明)의 심상인 아(我)가 각(覺)의 경지라면, 무명(無明)의 심상인 비아(非我)는 불각(不覺)의 경지에 있게 되어... (이하 생략)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관적(主觀的)이라는 말은 올바르다(眞如)는 뜻이겠지요? 결국 역사는 올바른 자와 올바르지 못한자와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박기봉 역 조선사(조선상고사) P. 44에는

 

후에 일어난 왕조가 앞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살라 없애 버리기를 위주로 하므로, 신라가 흥하자 고구려ㆍ백제 두 나라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으며, 고려가 일어나자 신라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으며, 이조가 일어나자 고려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어, 언제나 현재로서 과거를 계속하려 하지 않고 말살하려고만 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에 쓰일 자료가 빈약하게 된 것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면, 근대적 학문방법이 도입되기 전이었고 주관적(主觀的)으로 썼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근대적 학문 방법이 도입되기 전에 역사서(歷史書)는 단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왕조의 정통성이나 권위, 군주의 위엄 등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문서였습니다. 앞의 왕조를 미워하기 위해서 미워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왕조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그 타락상과 죄상을 역사서에 기록하고 새로 일어난 왕조가 하느님께 백성들을 잘 한 번 다스려 보겠다고 올리는 주관적인 보고서이기도 했습니다. 왕조시대의 역사는 근대적 학문 방법에 근거한 보편적 학문의 대상이 원래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천재이셨으나 그런 부분은 간과하신 듯합니다.

 

저는 역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아와 비아의 투쟁이며 주관적(主觀的) 위치에 선 자를 아(我)라고 한다면, 한민족(韓民族)이 지금껏 걸어온 것이 올바르지만은 았았던 것 같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三國史 : 삼국사기)를 편찬하고 조선왕조에서 고려사를 편찬했으니까요. 왕조시대에는 나라가 망해야 후대의 나라가 전대의 역사를 편찬하니까요. 만약이지만 올바른 길을 계속 걸어왔다면 실록(實錄)만이 더욱 많이 전하고 있겠지요. 현대의 예를 들면 대통령 기록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부 때의 대통령 기록물을 모두 삭제했다던가 폐기했다던가 그러지요? 옛날에는 그나마 왕조단위라서 몇 백년씩은 유지가 되었는데 이제는 5년이나 10년마다 기록물을 없애려는지...

 

을사늑약 이후 우리에게 조선왕조사(朝鮮王朝史)는 편찬되지 않았습니다. 근대적 학문 방법이 도입된 이후 별도로 역사서 편찬을 하지 않았지요. 반면, 조선총독부가 조선사(朝鮮史)를 짓기는 했습니다. 2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사자료집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앞에서 나중의 왕조가 이전의 왕조를 미워하기 위해서 역사서를 편찬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그래서 나온 것이 조선총독부가 지은 조선사(朝鮮史)인지는 모르겠는데, 조선왕조는 비루하고 거지같고 정체되어 있는데다 맨날 당파싸움만 하다가 망했다라고 조선총독부가 지은 조선사(朝鮮史)에는 적혀 있나 봅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지은 조선사(朝鮮史)는 일체법(一切法)에 속한 아와 비아의 투쟁의 결과로 편찬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의 시기에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여 이민족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조선사(朝鮮史)라는 이름 자체가 가당치도 않은 것으로 생각되네요. 지금도 조선총독부가 지은 조선사(朝鮮史)는 국사편찬 위원회가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우연히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각각 다를 출판사 것으로 세 권 가지고 있게 되었는데, 역사의 아침 출판사에서 나온 김종성 역 조선상고사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조선사(조선상고사)보다 단어를 달리 쓴 것이 유독 많습니다. 가령, 역사의 두 가지 속성이라는 상속성(相續性)과 보편성(普遍性)을 시간성, 공간성으로 쓰기도 하였는데, 그 외에도 곳곳에 여타의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사(조선상고사)와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 외에 역사의 아침 출판사 김종성 역본에는 신채호의 역사철학 이라고 해서 별도로 마련한 페이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헷갈려서 몇 번이나 읽어 봤네요. 그럼에도 깊이 읽기가 아니라 하나마나 한 소리처럼 보이는 까닭이 뭔지... 저는 학창시절 거의 낙제생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일까요?

 


깊이 읽기(김종성 역 조선상고사 24~26)

 

신채호의 역사철학

 

신채호는 역사를 ‘아’의 활동에 관한 기록으로 보았다. 그는 역사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고 했다. 이 부분이 원문에서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에게 역사는 일기와 같은 것이었다. 아의 주체적 관점에서 아와 관련된 것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고 본 것이다.

 

그는 역사의 특징으로 시간성과 공간성을 들었다.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에서 역사적 행위를 추출한 것이다. 이것은 신채호가 역사의 3대 요소로 인간·시간·공간을 설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란 부분에 해당하는 원문은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다. 신채호가 사용한 ‘발전’이나 ‘확대’란 표현은 전개나 펼쳐짐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점은 제1편 제2장 역사의 3대 요소와 조선 고대사의 문제점에서 드러난다.

 

역사는 아의 주체적 관점에서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신채호의 역사학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아’다. 그런데 이 ‘아’는 개인적 차원의 ‘아’가 아니다. ○○○ 혹은 ○○○○라는 이름을 가진 일개인이 생각하는 ‘아’가 아닌 것이다. 신채호는 인류의 행위 중에서도 사회적 행위만이 역사적인 행위라고 했다. 이것은 신채호의 ‘아’가 소승적인 ‘아’가 아닌, 대승적인 ‘아’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채호의 ‘아’는 실제로는 ‘우리’다. 이 대승적인 ‘아’는 단순히 국가나 민족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무산계급이나 유산계급도 ‘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학술·기술·직업·의견표명을 포함한 제반 분야에서 ‘아’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싹틀 수 있는 곳에서 ‘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이해한 것이다. 이것은 신채호의 ‘아’가 점층적 단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의 ‘아’는 작은 ‘아’에서 더 큰 ‘아’로 확장될 수 있다. 일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족-사회-국가-민족-인류의 범위로 확장될 수 있는 ‘아’인 것이다.

 

계급·국가·민족을 ‘아’로 설정할 경우, ‘아’는 다른 계급·국가·민족에 대해 위험한 배타성을 띠지 않을까? 신채호의 ‘아’는 그처럼 위험한 ‘아’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그는 “주관적 입장에 선 쪽”을 ‘아’라고 했다. 이 말은 ‘아’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입장에 그칠 뿐 객관적 입장이 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 그는 “아 속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속에도 아와 비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아’의 상대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는 아의 아’와 ‘비아의 아’의 공존 가능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신채호의 ‘아’는 ‘비아의 아’에 대해 평화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채호의 ‘아’가 평화적인 ‘아’라면, 그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며 투쟁을 운운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의 투쟁이 넓은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고 선언하기 전에, 그는 “아에 대한 비아의 접근이 빈번해질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도 더욱 더 맹렬해지니, 인류 사회의 활동은 쉴 틈이 없고 역사의 전진은 완결될 날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접근·분투 같은 다양한 양상이 아와 비아의 관계에 나타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이것은 그가 말한 투쟁이 물리적인 충돌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포괄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아와 비아의 접근 및 분투를 ‘인류 사회의 활동’이란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그가 말한 투쟁이 넓은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채호는 ‘아’의 속성으로 시간성과 공간성을 제시했다. 원문에서는 이것을 ‘시간적 상속성’과 ‘공간적 보편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신채호가 방점을 찍은 부분은 시간과 공간이란 부분이다. 문맥을 분석하면, 시간성과 공간성은 ‘아’의 속성이 아니라 ‘아의 행위’ 즉 역사적 행위의 속성이다.

 

시간성과 공간성으로 역사적 행위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모든 역사적 행위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생각이다. 시간성 및 공간성의 파급력에 따라 역사적 가치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예컨대 김석문의 지동설은 조선 내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데 비해, 지오다노 부르노의 지동설은 유럽의 탐험 열기를 달구고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의 지동설은 똑같은 이론이지만 공간적 파급력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역사적 가치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아’의 성립 및 승리 조건도 설명했다. ‘아’는 ‘아’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비아’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고 했다.아가 생긴 뒤에 비아가 생기는 것이지만, 비아가 있은 뒤에 아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의 성립 조건에 관한 말이다. 그는 ‘아’를 올바로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아’와의 관계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아’의 승리 조건에 관한 말이다. 두 가지 조건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열심히 투쟁해도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저는 몇 번을 읽어봤는데도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하나마나 한 소리 같고... ㅡ,.ㅡ

 

 

 

신채호는 역사를 ‘아’의 활동에 관한 기록으로 보았다. -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데...

 

그에게 역사는 일기와 같은 것이었다. 아의 주체적 관점에서 아와 관련된 것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고 본 것이다. - 역사가 일기라...? 아와 관련된 것들을 기록한다? 무슨 말인지... 

 

신채호가 사용한 ‘발전’이나 ‘확대’란 표현은 전개나 펼쳐짐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점은 제1편 제2장 역사의 3대 요소와 조선 고대사의 문제점에서 드러난다. - 무슨 말인지? 하나마나한... ㅡ,.ㅡ

 

일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족-사회-국가-민족-인류의 범위로 확장될 수 있는 ‘아’인 것이다. - 그런 말이 어디 있나요? 글로벌 경제질서를 기반으로 지구촌화 되어 있어서 아리까리하기는 한데 인류의 범위로까지? 중국이나 일본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네요. 천하사상으로 온 세상이 중국이고 팔굉일우 사상으로 온 세계인이 일본 왕의 거시기들이니까. 

 

아의 아’와 ‘비아의 아’의 공존 가능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신채호의 ‘아’는 ‘비아의 아’에 대해 평화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아와 비아의 아의 공존 가능성을 인정했다? 어디에? 침략이 아니라면 공존이 가능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비아의 아에 대한 평화적 태도? 김종성 기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론은 안 읽어 보셨나 봅니다. 침략해야 된다는 말씀은 안하셨지만 침략을 당한 것에는 폭력투쟁을 주장하신 분이지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신채호의 ‘아’가 평화적인 ‘아’라면, 그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며 투쟁을 운운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의 투쟁이 넓은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고 선언하기 전에, 그는 “아에 대한 비아의 접근이 빈번해질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도 더욱 더 맹렬해지니, 인류 사회의 활동은 쉴 틈이 없고 역사의 전진은 완결될 날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접근·분투 같은 다양한 양상이 아와 비아의 관계에 나타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이것은 그가 말한 투쟁이 물리적인 충돌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포괄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아와 비아의 접근 및 분투를 ‘인류 사회의 활동’이란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그가 말한 투쟁이 넓은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넓은 의미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요? 다양한 형태의 관계라는 말이 있기는 한데 구체성이 떨어지지 않나요? 사람들이 일상 모두가 그럼 투쟁이 되지 않나요? 그럴 바에 역사라는 것을 왜 만들어서는...

 

시간성과 공간성은 ‘아’의 속성이 아니라 ‘아의 행위’ 즉 역사적 행위의 속성이다.

 

시간성과 공간성으로 역사적 행위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모든 역사적 행위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생각이다. 시간성 및 공간성의 파급력에 따라 역사적 가치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예컨대 김석문의 지동설은 조선 내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데 비해, 지오다노 부르노의 지동설은 유럽의 탐험 열기를 달구고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의 지동설은 똑같은 이론이지만 공간적 파급력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역사적 가치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한민족(韓民族:한국인)은 반만년 역사에서 세계로 파급될 만한 역사적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뜻인지?

 

신채호는 ‘아’의 성립 및 승리 조건도 설명했다. ‘아’는 ‘아’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비아’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고 했다.아가 생긴 뒤에 비아가 생기는 것이지만, 비아가 있은 뒤에 아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의 성립 조건에 관한 말이다. 그는 ‘아’를 올바로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아’와의 관계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아’의 승리 조건에 관한 말이다. 두 가지 조건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열심히 투쟁해도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말이다. -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대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아를 올바로 정립한 이후 비아와의 관계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투쟁이 적응이에요? 

 

 

혹시라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구입해서 읽어 보시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서점에 가셔서 비교해 보고 구입하시기를 권하겠습니다. 헷갈리는 데가 한 두군데가 아니라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아래는 김종성 역 조선상고사 22족에 있는 내용입니다.

 

사회를 떠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아와 비아의 투쟁도 없지 않지만, 아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면 시간성 공간성을 띨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행위일 때만 역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 책에는 협소하면 이라는 조건문(?)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약하여, 약소하여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당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의 범위가 협소하지 않으면 시간성 공간성을 띨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긴, 요즘은 슈퍼맨의 시절이기도 하잖아요. 1990년대에 조지 소로스 한 명이 아시아 어느 한 나라의 경제를 파괴할 수 있다고까지 했거든요. 누군지 모르지만 개인 재산이 100조원 정도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경제 관련 도서에서 신용창출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100조원이면 최소 1000조원까지 신용창출이 가능하지요? 펀드 메니저라면... 요즘 같은 능력있고 역량있는 개인이 많은 시절을 전제하면 뭐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한데, 그래서 현대사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기는 하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 원전과는 의미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로은...

 

역사란 인류 사회의 ‘我’와 ‘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 상태의 기록

 

이며, 주관적(主觀的)이라는 말은

 

올바른 일을 한다

 

는 뜻이라는 것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