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한글로 된 책임에도 옛날의 이두문을 번역한 것을 보거나 하면 낯선 느낌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뭐 그런 것 외에도 인명, 지명 등등 곳곳에 이두문자가 쓰인 것이 있는데, 오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다가 백제의 관직명 중에 보통의 한문이름으로 된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삭녕장군(朔寧將軍) 면중왕(面中王) 저근(姐瑾)
건위장군(建威將軍) 팔중후(八中侯) 부여고(扶餘古)
건위장군 부여역(扶餘歷),
광무장군(廣武將軍) 부여고(扶餘固)
정로장군(征虜將軍) 매라왕(邁羅王) 사법명(沙法名)
안국장군(安國將軍) 벽중왕(辟中王) 찬수류(贊首流)
무위장군(武威將軍) 불중후(弗中侯) 해례곤(解禮昆)
광위장군(廣威將軍) 면중후(面中侯) 목간나(木干那)
등입니다.
이름을 보면 여전히 이두자로 표시한 것 같은데, 장수에게는 모두 깃발이 여럿일 것이므로 깃발에는 삭녕장군, 건위장군, 광무장군 등등으로 썼겠지요? 해당 부분을 보고서야 고구려나 신라 백제 가야 등이 서로 다툴 때는 깃발을 이두로 썼을까? 아니면 한문으로 썼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어봐도 누가 누구를 언제 공격하고 승패는 어떤지 그런 것, 또는, 연나 순나 이러면서 5부와 5군제도 등을 설명하기는 하는데, 정작 깃발에는 어떻게 표기를 하고 출천했는지 전혀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 위 부분을 보고서야 알겠더라고요.
이두로 썼을까요 아니면 한문으로 썼을까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은 모두 이두를 쓴 것 같은데, 백제가 활발하게 중국의 동부지역을 장악할 때 한문식 칭호를 사용했다면, 일단 당시 중국 측에서는 이두를 몰랐기 때문에 한문 칭호를 썼다고 봐야 합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다지 않습니까.
백제가 대륙진출을 활발히 하던 때는 4세기 말부터 5세기 무렵으로 알고 있는데, 신라는 5세기 말까지 왕을 마립간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 관직명에는 한문식 관직명이 적혀 있다지만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고 쓴 것을 보면 삼국사(삼국사기)의 신라 관직명은 모두 신라 말에 한문식으로 고쳐진 것을 쓴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해당 내용을 생각하면 대륙삼국설이 조금 회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네요. 유튜브에 보면 백제가 대륙으로 진출한 적이 있다면서 요서경략설을 주장하는가 하면, 원래부터 대륙에 있었다는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중국에서 살던 사람들 역시 백제의 관직명이나 그 지위의 높낮이 등을 알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좌평이니 달솔이니 하는 관직명을 쓴 것이 아니라 한문식 관직명을 썼다는 것은 백제에 대해서 중국에서는 생소한 나라였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요?
대륙삼국설에 대한 어느 영상을 보고, 또 삼국연의가 너무 허무 맹랑한 기록이었다는 것을 느낀 후, 그리고 사마씨가 진서(晉書)를 쓰면서 동시대에 있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를 쏙 빼버렸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대륙삼국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핬습니다. 아래 지도는 소설 삼국지, 즉 삼국연의의 지도입니다. 위촉오 삼국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인구가 700만명이었다는 것 혹시 아시나요? 아래 지도는 사람이 살았던 지역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귀신들만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말입니다. 1000리를 가도 사람을 볼 수 없었다고 중국의 역사책에는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구라 중의 상 개구라라는 말이지요. 그걸 재밌다고 여포가 쎄니 관우가 쎄니 했던 것이 참... ㅡ,.ㅡ
하지만, 삼국시대가 280년 쯤에 끝나는데, 그 시절에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대륙에서 삼국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위촉오 삼국시대에 전쟁에 휘말려 당시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대륙에 살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도 상당히 죽어버려서, 고구려는 약간 동쪽으로 이동하고 백제는 대륙 근거지를 잃었다가 새로 성장하여 대륙으로 진출해 봤더니, 이두문으로 깃발을 쓰면 못알아 먹는 상황이 되었다는... 그런 추정은 해 볼 수 있겠네요.
우리는 흔히 중국의 삼국시대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를 별개로 생각하는데, 단재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다 보니 아시아 동부에서는 선비족이나 흉노, 오환 등등 여러 유목민들과 아시아 서부에서는 위촉오 외에 중국 서부의 유목민 등등 아시아 전체가 어우러저 싸운 아시아의 전국시대(戰國時代)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지도에서 한(漢) 나라가 위촉오 삼국시대에 저 만큼 넓은 영역을 확보하고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는 헛소리는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대적인 침공을 버티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하면서 당나라는 세계적인 나라가 됩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당나라의 의전을 흉내내는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한나라 시기의 영역을 표시한 위 지도는 당나라 때에나 가능했을 것이니까요.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으로 진출했다거나 비단길이 있었다거나 하는 등등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중국이라는 영역으로 설정된 것은 당나라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연의 관련 책들 보면 황건적 뿐만 아니라 적미의 난이라거나 태평도니 오두미도니 하면서 중국 전역에서 난이 일어납니다. 한나라의 행정력이 그닥 대단하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요?
어쨌거나 백제가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한문식 칭호를 썼다는 것은 백제 내부에서의 이두문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당시 중국에는 없었다는 말이 되기는 할 것입니다.
요약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는 대륙에도 걸쳐 있었다.
아시아 전국시대를 맞아 숱하게 죽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역이 아시아 전국시대의 변란기를 맞아 축소된다.
백제가 강성하여 대륙으로 다시 진출했을 때는 백제의 관직명 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정도 되겠네요. 물론 순 뇌피셜이지만...
'조선사(朝鮮史 : 조선상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4 - 이사부가 나무 사자를 만들었다? (0) | 2022.06.07 |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3 - 임나가야가 여러 번 나오네...? (0) | 2022.06.06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1 - 요서경략? 산동경략? (0) | 2022.06.05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9 - '침략'이라는 단어가 또 나온다. (0) | 2022.06.02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0 - 상호참조 오류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