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김부식의 삼국사를 원문으로 한 번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에 하나가 이사부가 울릉도를 점령하려고 나무로 사자를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나 표범이라고 했으면 고개를 갸우뚱 하거나 하지 않았을텐데 하필 사자라서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사자는 호랑이나 표범처럼 고양이과 맹수인 것은 맞지만 기후가 더운 곳에서 주로 살지 않나요? 호랑이는 단독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지만 사자는 무리지어 사는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이야 TV 등으로 사자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무려 1500여년 전에 경상도에서 사자를 볼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묘하게 느껴지더군요. 이는 우산국(울릉도) 사람들이 사자를 모르는 것과 무관하게 이사부가 나무 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사부나 그 부하들은 사자를 익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사부가 직접 칼이나 끌, 망치 등으로 직접 깎았겠습니까. 부하들더러
부관! 나무 사자 몇 마리 만들어 봐!
그랬을 거잖아요. 이사부 이하 부하들 전부가 사자를 알고 있어야 나무 사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나요?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기 전에는 한반도에도 호랑이나 표범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초반에 마지막 표범이 경남 합천인가? 어디에서 잡혔다고 뉴스에 난 것은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 검색하면 나올 겁니다. 호랑이나 표범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인데, 이사부 이하 신라 사람 대부분이 사자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니 놀랍지 않으세요?
신라에 관한 기록 중에 관직의 등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옷 색깔, 비단의 종류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는 자단목이라는 나무가 나옵니다. 침향목이라는 나무도 봤던 것 같은데, 둘 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나는 나무입니다. 중국 남부나 동남아 등지에서 나는 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나무 중에서 고급나무라 비싼 나무이기도 합니다. 신라가 부유하여 수입해서 썼을 가능성도 있지만 요즘처럼 항해가 자유롭지 않을 시기에 자단목이나 침향목이 등장하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배에 싣고 오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무역수지 균형은 또 무엇으로 맞추고...?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목재 수입할 때, 그 나무들 배에다 싣고 오는 것이 아니라 배에다 묶어서 바다에 담근 채로 옮긴다고 합니다. 해충이나 기생충의 알 등을 바닷물에 저려서 죽이려고 나무를 배에 묶은 채 바닷물에 담궈서 수입한다고 하는데, 동력선도 없던 고대에 그것이 가능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배에 싣고 온다고 한다면 그 양은 소량일 것이니 더욱 비쌌을 것인데, 거칠부가 등장하는 500년대에는 신라가 막 성장하던 시기이므로 500년대부터 자단목이나 침향목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유튜브 역사 관련 채널을 보시면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인데,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하북성, 산서성 등에 걸쳐 있고, 백제는 산동성, 강소성과 한반도 서쪽, 그리고 일본 열도에 결쳐 있고, 신라는 중국 동남부에 걸쳐 있었다며 대충을 보여줍니다. 그럴 경우 자단목이나 침향목, 나무 사자 등이 이해가 됩니다.
아래 그림은 대륙 삼국을 설명하는 그림인데, 포스트 마지막에 링크를 걸어놓겠습니다.
역사를 가지고 땅따먹기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왜 역사를 그렇게나 비틀고 조작하고 삭제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어쩌겠습니까. 중국에 삼국시대가 있었다면 비슷한 시기에 우리에게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삼국시대와 오호십육국시대를 포함하면 우리의 삼국시대와 시기가 비슷해지지요? 그런데, 중국의 정사 삼국지에도 사마씨의 진서에도 삼국시대에 대해서 기록이 부실하다고 합니다. 뭣도 모르는 서민이지만 저는 중국의 삼국시대와 우리의 삼국시대를 합쳐서 아시아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한족과 한민족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고대로 올라갈수록 그 구분 역시 불명확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구분이 비교적 명확해진 것은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한 이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야가 멸망한 것이 6세기 무렵이고 고구려 백제는 모두 7세기 중엽에 망합니다. 6세기 때 가야가 6가야 형태로 존속한 것을 보면 명나라나 청나라처럼 거대 영토를 확정한 것과 대비해 보면 고구려와 당나라가 싸우기 전에는 그 만한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소설 삼국지, 즉, 삼국연의 지도는 우습기까지 합니다. 위촉오 삼국시대가 끝나고 중국에 남아 있던 인구가 700만명 정도였다고 중국 역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1000리를 가도 사람을 볼 수 없었다면서... 그런데, 삼국연의 지도 검색하면 영토가 어마어마 하지요? 순 뻥인 지도에요. 그런 지도를 국고를 50여억원이나 들여서 동북아 역사지도나 만들고 있고... ㅋ
춘추좌씨전을 어쩌다 실수로 한 번 읽어 본 적 있는데, 곳곳에 이민족이 등장합니다. 춘추좌씨전은 전국시대 초엽에 쓴 것이잖아요. 주나라가 성립해 있었다지만, 중국 전역에 중국인들 기준으로 이민족들이 훨씬 더 많이 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공자 사후 100여년 후에 맹자도 맥국이랑 중국의 세율을 비교하는데, 이는 당시에 맥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거나 거리가 가까웠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다지만 문자와 도량형 등을 통일한 업적이 있기는 하지만 금방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는데, 한고조 유방 때 흉노에게 약세였고 무제가 등장하고서야 근근히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조한전쟁(고조선 VS 중국 한漢나라)이 일어나는데, 그 과정이 조선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한(漢)나라가 이겼다고 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삼국연의에 뻑하면 등장하는 것이 연인 장비가 여기 있다 라는 것인데, 무제를 이어 또 다시 세월이 흘러 광무제가 등장하지만 한나라가 망할 무렵까지 연인 장비를 주장하는 것은 - 물론 소설이기는 하지만 - 한나라의 위상이 대단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삼국연의에 최고 맹장이라는 여포도 한족(漢族)이 아니라지 않습니까. 대륙삼국설이 만약이 틀리지 않는 주장이라면 위촉오 삼국시대는 정확하게는 중국 한족들간의 내전이 아니라 아시아 여러 민족이 어울려 싸운 것이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그 때부터 구분을 지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마씨의 진나라가 멸망하고 오호십육국 시대가 되지 않습니까. 무려 한 100년 이상 지속되지요? 한족보다 이민족이 훨씬 더 많았다는 말이지요. 실제로는 16국이 넘었다고 하는데, 북위의 누군가가 16국춘추라는 책을 쓰면서 16국으로 제한되었다고 해야 하나?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나무 사자, 자단목, 침향목 등을 감안하면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무턱대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단재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어보면 김부식이 숱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지 않았다거나 중국의 역사서들도 왜곡이나 삭제, 변형이 많다고 하기도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삼국시대부터 오호십육국, 수나라 당나라까지 두루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되기는 하네요.
아래는 위 지도를 복사해 온 곳입니다. 대륙삼국설 중에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내용인데, 백제의 대표성씨가 8개 있습니다. 부여씨나 해씨 목씨 등인데, 대한민국에는 별로 없는데 중국에는 숱하게 있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씩 보시기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etymo/IGkf/4395?q=%EB%8C%80%EB%A5%99%EC%82%BC%EA%B5%AD%EC%84%A4&re=1
'조선사(朝鮮史 : 조선상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6 - 사대주의 비판 (0) | 2022.06.09 |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5 -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0) | 2022.06.09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3 - 임나가야가 여러 번 나오네...? (0) | 2022.06.06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2 - 백제의 관직명,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라? (0) | 2022.06.06 |
단재 신채호 조선사(조선상고사) 읽기 11 - 요서경략? 산동경략? (0) | 2022.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