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고당전쟁을 이끈 인물인데, 그에 대해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에는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고 계획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사 시작 부분에 역사가 무엇이냐?로 시작하여 역사를 역사를 위해서 쓰는 것이지 역사가의 생각을 가미시키면 안된다는 설명을 하시고서는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 했다는 내용은 이해가 힘드네요.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고 했을까요?
청나라는 30만의 군사로 중국을 점령하고 250여년 정도 통치했습니다. 청나라의 경우로 생각을 하면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추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청나라 때와 당나라 때는 또 다르지요.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한 이후 당나라에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납니다. 절도사의 난이었는데, 그 만큼 중국 사회는 불안했고 아시아 전체가 무력에 기반하여 움직이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나라가 중국을 점령하여 통치한 것은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나 - 그 만큼 사회가 제도화 되고 안정화 되어서 무력에 기반하는 사회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 고구려가 당나라를 부용국으로 만들려 했다는 확신은 어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재 선생께서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연재한 것은 1930년대인데 나라잃은 설움을 역사에 기대어 연개소문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기를 바랬는지, 역사란 역사를 위해서 쓰는 것이라는 조선사(조선상고사) 초반부의 내용과는 맞지 않는 내용으로 생각되네요.
단재 선생 스스로 말합니다. 연개소문에 대한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의 기록은 거의 없고 중국측 사서에서 몇 마디 전하는 것을 쓴다고, 즉,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는 계획 같은 것은 전하는 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하는 문적이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평가한 것일까요.
조선사(조선상고사)와 관련한 다른 포스트에 조선사(조선상고사)의 상호참조가 어긋나 있는 것이 꽤 된다고 쓴 것이 있습니다. 가령, 무엇무엇에 대해서는 모편 몇장에 기술하였다 라는 그런 것인데, 그렇게 어긋나 있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저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검열로 인한 편집이나 삭제가 있었지 않나! 라고 추정한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상을 알 수 없으니 그런 가능성에 대한 추정만 하는 것이지요.
여러 역사서를 비교하며 어느 부분이 탈락되었고 위조된 것인지 등에 대한 내용은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를 읽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겠지만, 문헌으로 검증되지 않는 내용, 즉, 연개소문이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그런 주장은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개소문과 관련된 내용 중에 해라장이 삼불제국의 첩자를 잡는다거나 당나라를 대적이라 생각하는 그런 맥락은 수나라 때 문제와 양제가 몇 번이나 침공을 해 왔고, 당나라에 대한 내부 정황을 당시 고구려에서 알고 있었으므로 방어를 위한 선제공격을 연개소문은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실제 고당전쟁에서 당나라가 쳐들어오지 연개소문이 당나라를 쳐들어갔다는 내용은 없지 않습니까. 연개소문이 당시의 중국을 부용국으로 만들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연개소문이 먼저 당나라를 쳐들어갔어야 하지 않나요?
어쩌다 단재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 외에 조선혁명론도 한 번 읽어 본 적이 있는데, 단재 선생이 의외로 과격한 분이지만 외부의 공격에 대해 폭력투쟁을 주장하지만 침략을 선동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역시 조선사(조선상고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검열 과정에서 부분 편집되거나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기네요.
조선사(조선상고사) 내용 중에 일본서기를 인용하는 부분이 조금 있는데, 을사늑약이나 경술국치 등 여러 사건 등을 통해국권을 잃은 대상은 일본이지 중국인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일본은 만주국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중국도 침략을 했었지요. 하필 조선사(조선상고사)가 북방에 관련한 내용으로 가득한데, 조선사(조선상고사) 초반부에 조선사의 서술요목을 설명하면서
아(我)의 문화의 강보에서 자란 일본이 아(我)의 巨X 이었는데 현재는 그리 되지 못한 사실과
이러면서 일본을 논하겠다는 내용이 있음에도 일본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조선사(조선상고사)를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때, 백제와 관련해서 왜(倭)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 외에, 위 서술 요목에서 말하는 주제와 상응하는 내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연재가 끝나는데, 책을 쓰는 사람이 이러이러한 내용을 쓰겠다고 하고서는 안 썼을리는 없고, 일본 제국주의의 검열과정에서 통편집을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는 내용은 P.308에 나옵니다(비봉출판사 박기봉 역 조선사(조선상고사). 하지만 매우 단편적이어서 논어나 천자문을 전한 것으로 일본이 우리의 강보에서 자랐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보다는 곳곳에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 쓴 것이 있었는데 통편집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상호참조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니까.
어쨌거나 연개소문에 관한 내용도 이해가 좀 힘듭니다. 문헌들마다 모순이나 년대삭감, 기타 오류 등을 지적하면서 아무런 기록이 없는데도 단재 선생이 억단을 하고서는 사실인 것처럼 쓰고 있지 않습니까. 단재 선생 답지 않은 내용 아닐까요?
뒤에(P.452 비봉출판사 박기봉 역 조선사)에 당나라와 고구려의 정황을 설명하며서 연개소문이 집권을 몇 년만 더 빨리 했으면 당 태종이 동침(東侵)하기 전에 연개소문이 먼저 서정(西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러고 적혀 있습니다. 이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부용국으로 만들 계획이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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