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註 : 然德之所以成, 亦曰, 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不已焉耳.
덕을 이루는 방법이 꾸준히 공부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위 집주에서 朋이나 人不知而不慍 등의 구절이 전혀 없는 것이 보이네요.
問, 集註言, 君子而復歸於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何也. 勉齊黃氏曰, 學而至於成德, 又豈有他道哉. 其所自來者, 亦不過是而已, 非體之之實, 孰能知之哉.
군자(君子)는 이미 덕을 이룬 사람인데 다시 學之正, 習之熟, 說之深으로 되돌아 가는 까닭을 묻습니다. 다른 도(道)는 없다며 직접 느껴봐야 한답니다.
중국은 원래 도교가 성행했던 나라입니다. 마을마다 도관이 있었고 의천도룡기 등에 나오는 6대문파나 각종 무협에 나오는 9파일방이나 개방과 소림파, 그리고 아미파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도가계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만큼 도교가 중국에서 훨씬 더 성했는데, 주자 시대에는 불교도 성행했다고 합니다. 대학을 해설하는 책에 허령불매(虛靈不昧) 같은 개념은 불교에서 유래했다는 비판도 있고 그렇습니다.
당나라가 망하고 5대10국 시대가 되는데 그 와중에 송나라가 일어나면서 도교나 불교 외에도 여러 가지 사상들이 나타난 가운데 유학(儒學)의 전통을 회복하려 많은 노력을 했다네요. 불교를 모르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불교는 태어나는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대처승도 있기는 하지만 송나라 때 불교가 성행하는 모습에서 사회의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慶源輔氏曰, 此章總言始學. 始終三者之序有淺深, 而無二道也. 又慮夫敏者躐等而進, 怠者半途而止, 昧者又或離析以求之, 或失其正, 而陷於異端. 故復發此義, 而使之正其始之所學. 然後時習以熟之, 則夫說之與樂可以馴致, 初不待外求而得也. 又曰, 不極其至, 則無以成其德. 故又以此說終之.
민첩한 자는 단계를 뛰어 넘고 게으른 자는 중도에 그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바른 방법을 잃고는 이단에 빠지기도 한다는 내용인데, 위에서 말하는 도교나 불교 등을 말하기도 합니다. 당나라 때에는 경교(景敎)라는 것도 전파가 되었었는데, 경교가 송나라 때까지 전해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 때 국제적 교류가 가장 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만큼 많은 사상이 유입되었을 수도 있고요.
馴致 라는 말은 길들이다, 버릇이나 습관들이다 라는 뜻이던데, 배우고 익히면서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습관이 들도록 하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외부에서 구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대학에 그 과정이 설명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지이후 유정, 정이후 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한자 생략) 이러면서 설명하고 있지요?
○雙峯饒氏曰, 集註謂德之所以成, 亦在乎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不已焉. 此言極有意味.
집주를 반복설명한 것인데, 極有意味 라고 해서 極자를 써서 설명한 것이 차이네요. 오직 공부 뿐인 듯하기도 합니다만, 오히려 현재의 경제나 투자상황 등을 예로 들어 본다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기도 합니다. 집사라 주식 사라 코인 사라면서 경제적 자유를 외치고 그러는데, 경제를 바르게 배워서(學之正), 투자 연습을 하고(習之熟), 수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경제현상과 본질을 이해가고 기뻐하는(說之深)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면, 즉 누군가 나타나서 코인이 대박이 난다더라, 00 주식이 대박이라더라 하는 그런 말들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를 해 본다면 말입니다. 자칫 큰 수익을 기대하고 빚내서 투자하고 그러다 훅 가는 사람들 많다고 하지요?
유학(儒學)이 추구하는 것이 인륜의 도(道)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도교나 불교는 공(空)을 말하기도 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현실생활과는 이격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을 수 있는데, 하필 도교나 불교는 사원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시주를 한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헌금을 해야 한다고 할지 그리하여 재화가 쌓이기도 할텐데, 어쩌면 그런 모습들을 경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락(樂)이라는 글자가 보통 의미는 아닌 것 같이 느껴지네요. 물론 위 주석에는 첫 번째 집주처럼 붕이나 락, 인부지이불온(한자 생략) 같은 구가 없기는 합니다.
○此章六句, 其工夫, 只在第一句上, 其餘五句, 皆是效驗.
○雲峯胡氏曰, 此章重在第一節, 而第一句時習二字最重. 故上文釋習字曰, 學之不已. 此曰, 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又曰, 不已焉. 於此見朱子喫緊敎人處.
○新安陳氏曰, 此推本, 所以爲成德之由, 不過自學習說中來. 然, 學必貴乎正, 習必貴乎熟, 說必貴乎深, 而又加以不已焉. 學之時習而說, 乃後二節之本, 亦務本之意.
학이편 첫 장(章) 세 개의 문장은 6개 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學而時習之가 핵심이고 나머지는 효험이라네요. 이하의 두 주석도 시습(時習)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근본에 힘쓴다는 뜻이라고 했네요.
○程子曰, 樂由說而後得, 非樂, 不足以語君子.
朱子曰, 惟樂後方能進步, 不樂則, 何道以爲君子.
위 두 주석은 내용이 비슷한데, 위에서 락(樂)자의 뜻이 간단히 즐거울 락으로 옥편이나 자전에서 풀이한 뜻만을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상황에 대비해 본다면 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又曰, 不已焉의 과정을 거치는데다 또 다시 君子而復歸於學之正, 習之熟, 說之深라고 했으니 락(樂)에 이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해석에서는
즐거워하지 아니하면 군자라 말하기 부족하다.
오직 즐거워한 후에야 비로소 능히 진보할 수 있다.
라고 했는데, 한자나 한문이 가지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에는 충실하지만 즐거워한다고 이해하기 보다 즐거움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리라 생각되네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간사인데, 학교든 직장이든 어디서는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게다가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이고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시절이 다르기도 하고... 이전 포스트에서 惟자가 좀 아득한 뜻이라고 쓴 것이 있습니다.
○新安陳氏曰, 集註凡推說本章正, 意外之餘意, 必加一圈, 以間隔之. 此又以三節下三句, 發明餘意也. 必由成己之說, 方可進於及人之樂, 然非造於樂之地步. 又不足以言成德君子也. 夫學者所以學爲君子, 學由說以進於樂, 而至於能爲君子, 學之能事, 畢矣. 朱子云, 論語首曰, 學而時習之, 至不亦君子乎. 終曰, 不知命, 無以爲君子, 此深有意. 盖首篇首章末篇末章, 皆拳拳以君子望學者宜乎. 朱子以爲深有意焉.
논어 20편 마지막 장에 不知命, 無以爲君子 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위 주석에서 學之能事, 畢矣 라는 구를 책에서는 "배워서 능해지는 일은 끝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 것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ㅡ,.ㅡ
배워서 섬기는 것에 능해지는 것은 배우고 익힌 것을 다하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편이 나아보입니다. 앞에서 어느 학생이 君子而復歸於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何也 라고 묻지 않았습니까. 명(命)은 중용 첫 장에 나오는데 천명지위성(한자 생략) 성(性)을 알려면 대학(大學)을 읽어야 하고 그러니 너무 어렵지요. 그러나, 命卽樂 이라면... 明善而復其初而及人을 樂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락(樂)이라는 글자를 음악 틀어놓고 춤추고 노래하고 함께 즐기는 뭐 그런 즐거움으로 이해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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