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註 : 程子曰, 雖樂於及人, 不見是, 而無悶, 乃所謂君子.
위 집주에서 밑줄친 부분의 해석을 "비록 남에게 미침을 기뻐하지만" 이라고 해석했는데, 사실 해당 부분 외에도 한문 고전 상당부분에서 人자가 나오는 곳곳에 人을 "남"이라고 해석한 부분이 한문고전 해석본에는 아주 많습니다. 뭣모르고 한문 고전을 읽으려고 했을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인(人)자에는 남을 뜻하는 3인칭 대명사 기능이 없지는 않지만, 상당부분을 "남"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어느 것이라도 한문고전을 해석한 해설본을 보시면 人을 남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아래 문장은 대학장구 서문 조반에 나오는 문장인데,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이미 인의예지의 성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人은 "남"으로 해석한 경우를 자꾸 보다보면, 남들에게는 다 하늘이 인의예지의 성을 부여했는데, 자신에게는 인의예지의 성(性)이 부여되지 않은... 희안한 내용이 됩니다. 억지일까요?
盖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 以仁義禮智之性矣.
위와 같은 경우는 그나마 인(人)을 사람으로 해석을 했으므로 문제가 없지만, 제가 봤던 예기 어느 해석본에는 人之子를 "남의 아들"이라고 해석한 경우도 적지 않게 봤습니다.
남의 아들은 부모에게 효행을 잘 해야 되고,
남의 아들은 임금에게 충성해야 되고
남의 아들은...
내 아들은?
원래는 사람의 아들에게 누구나 가르치려고 했던 것을, 남의 아들들에게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까닭으로, 인(人)을 "남"이라고 해석하는 순간, 공자나 맹자나 주자가 한 훌륭한 말들이 다 개소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뭐 지금도 人을 "남"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저는 불만입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
는 우리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장구 서문의 경우처럼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이미 인의예지의 성을 부여했으므로 사람은 평등하지만 기질의 성(性)이 있으므로, 먼저 깨닫고 나중 깨닫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늘로부터 인의예지의 성을 부여받았으므로 대동(大同)을 이룰 수 있는 근간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人을 "남"으로 해석하면, 나와 남을 확연히 구분함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만 이해될 듯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인(人)을 남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성리학을 절대적으로 추종한 조선왕조 전통의 해석이라면, 이는 매우 실망스러운 해석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문자를 독점한 폐단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에게 소위 근대적 학문방법이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人이 3인칭 대명사로 쓰일 수 있다는 개념은 최근에 생긴 것이므로 일본식 문헌해석방법인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무식하니 힘만 쎘다지만, 해방된지 두 세대가 지난 후에도 긴가민가 하는 해석이 나온다는 것은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朱子曰, 樂公而慍私, 君子有公共之樂, 無私己之慍.
樂慍在物이라고 이전 포스트(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33), 에 쓴 것이 있는데, 樂은 공(公)적인 일이고 慍은 사적인 것이라는 내용과 대비해서 보셔야 할 주석으로 보입니다. 君子有公共之樂, 無私己之慍. 이라고 되어 있는데, 조선왕조가 동인서인남인북인으로 갈려 당쟁을 했던 역사가 있다는 것도 함께 고려를 해 보시고요. 조선왕조에서는 君子有公共之樂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 아닐까요?
○雙峯饒氏曰, 說之深, 然後, 能樂. 樂之深, 然後, 能不慍.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유학(儒學)이라는 획일적 학문은 타파되었다고 해야 할지 사라졌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그로부터 경제학, 법학, 공학 등등 문사철이라는 통일성과는 다른 학문이 개별적으로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학문에 기쁨(說)을 느끼는 사람들은 늘어갔지만, 원체 쓰이는 용어들이 복잡하고 난해하지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같은 말이야 역사를 배우면서 잠깐 배우지만, 상대성 이론이니 카오스 이론이니 하면서 그와 관련한 책을 펴면 생판 듣도보도 못한 말들이 마꾸 쏟아지잖아요. 일반인의 관점에서... 공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을 밝혀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명선(明善而復其初)에 비하면 분명히 현대 학문이 난해한데, 반면 명선이복기초(明善而復其初)는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 차이이긴 하겠네요. 하긴, 人之子를 남의 아들로 번역하는 판에...
○雲峯胡氏曰, 說是喜意慍, 是含怒意. 喜怒樂三者, 皆情也, 皆性之發也. 能復其性之善, 而情無不善, 學習之功大矣.
사람이 원래의 착한 본성을 찾을 수 있으면, 즉, 원래의 착한 본생을 찾게 되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정서들이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공자는 나이 70에 이르러 종심(從心)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하니, 공자 같은 성인도 70년이나 걸리는 일을... ㅡㅡ 에궁..
○新安陳氏曰, 不見是而無悶, 出易乾文言, 不見是於人, 而無悶於心, 引此語解, 不知不慍甚切. 此條聯樂與不慍言. 故居尹說之後.
저는 주역을 한 번도 다 읽어 본 적이 없는데, 부분적으로 조금 읽어본 것은 있어서, 건(乾)괘를 설명하는 내용을 빗댄 것 같네요. 지금 주역 관련 서적을 뒤지면 관련 구는 포스트에 추가할 수 있겠지만 생략합니다. 그럴 필요성도 못느끼겠네요. 저는 신안 진씨라는 분을 모릅니다. 저 보다 1000여년을 앞서 살았던 분이잖아요. 경전(經典)을 논하는데, - 경전(經典)은 곧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이지요? - 국적이니 뭐니 그런 것은 떠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학장구 서문을 읽어 보셨습니까? 공자가 시절을 잘못 만나서 제왕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는 제왕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말이지요. 다만 시절을 잘못 만난 것인데, 그렇다면 공자 이후의 유자(儒者)들은 그 만한 성과를 이루었나요? 공자는 무려 3000 제자가 있었다는데, 그러니 굳이 주역 건문언을 뒤질 그럴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말입니다.
포스트 써놓고 보니까 말을 막한 것 같기도 하고... ㅡ,.ㅡ
저는 유학자도 아니고 성리학는 더더욱 아닙니다. 성리학이 뭔지 몰라요. 요즘 세상에 성리학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러므로 이런 포스트를 쓸 수 있는 것인데 - 순전히 옥편이라 자전 들고 한문을 읽어보겠답시고 덤볐으니 - 저야 저 혼자 한문 고전을 이해해 보겠답시고 하는 일이지만, 이해도 납득도 안되는 해석을 자주 만나다 보니 이런 불경한 포스트를 쓰게 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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