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註 : 尹氏曰, 曾子守約故, 動必求諸身.
증자가 세 가지 내용으로 간단하게 지키려 하여 여러 가지 일들로 수신(修身)하기를 구했다는 내용인데, 제가 보는 책에는
曾子守約 故 動必求諸身.
처럼 故자를 띄워놓았습니다. 책처럼 띄어서 읽어야 할지 아니면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
朱子曰, 守約不是守那約, 言所守者約爾.
수약(守約)이라는 것이 약속을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간략하다는 설명인데, 어떤 내용을 기억할 때 핵심어만 챙기는 그런 경우와 비슷하게 이해가 되네요. 세 가지 내용으로 반성했다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경우는 세 가지가 아니듯이. 사과나무, 뽕나무, 소나무, 참나무, 박달나무 등등을 모두 나무라고 하지 않습니까.
集註 : 謝氏曰, 諸子之學, 皆出於聖人. 其後愈遠而愈失其眞.
新安陳氏曰, 如子夏傳田子方, 其流爲莊周之類.
제자(諸子)의 학문이 모두 성인에게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 때의 성인은 공자를 말하는 것인지 또 諸子는 정자(程子)나 주자(朱子) 등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묵자나 노자 등이 공자로부터 유래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공자에서 난 학문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 진면목을 잃었고, 자하(子夏)가 전자방에게 전한 것은 장주(莊周)의 유파가 되었답니다.
중국이 춘추전국의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면 묵자, 양자, 관자 등의 사상가들이 출현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 이전에도 어떤 성인의 가르침을 추종하였다면 그 성인은 요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인지... 아래 주석을 보면 공자를 지칭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集註 : 獨曾子之學, 專用心於內. 故傳之無弊, 觀於子思孟子可見矣. 惜乎, 其嘉言善行,【去聲】不盡傳於世也. 1 - 其幸存而未泯【彌盡反, 盡也】者, 學者其可不盡心乎. - 인터넷에서 받은 파일
集註 : 獨曾子之學, 專用心於內. 故傳之無弊, 觀於子思孟子可見矣. 惜乎, 其嘉言善行,【去聲】不盡傳於世也. 2 - 其幸存而未泯【彌盡反】 盡也者, 學者其可不盡心乎.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책에 표시된
오직 증자(曾子)만이 마음으로부터 구하는 학문의 요체를 깨달아 자사나 맹자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성인은 공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합니다. 하지만, 대학장구 서문에 중국이 혼란한 시기를 만나 위태롭던 가운데 오직 공자만이 옛날의 전적을 모두 외워서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증자만이 그 도통을 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네요. 오늘 밤이 고빕니다! 라는 농담처럼 유학(儒學)은 숨이 끊어질듯 말듯 그렇게 이어져 왔나 봅니다.
위에 번호와 함께 빨갛게 표시해 둔 부분은 제가 인터넷에서 받은 파일에는 1번처럼 되어 있습니다. 한문을 잘 모르는데 어느 경우라도 말이 되는 것 같아서 두 가지를 다 표시했습니다.
廣平游氏曰, 此特曾子之省身者而已. 若夫學者之所省, 又不止此, 事親有不足於孝, 事長有不足於敬歟. 行或愧於心, 而言或浮於行歟, 慾有所未窒, 而忿有所未懲歟, 推是類而日省之, 則曾子之誠身庶乎, 可以趾及矣. 古之人, 所謂夜以計過無憾, 而後卽安者, 亦曾子之意.
증자삼성의 경우를 보고 세 가지만 반성하면 곤란하고 효제로부터 마음 다스리는 부분 등등을 다 살펴야 한다며, 옛날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중국 역사 드라마에는 그런 모습이 잘 안그려지잖습니까. 역사가 노출되는 매체가 역사서나 뭐 그런 것보다는 드라마나 영화가 비중이 훨씬 높을텐데 주석을 단 광평유씨라는 분이 뻥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딱히 옛날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사서대전이나 기타 유가 13경에 주석을 단 분들은 말을 하자면 구도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問, 三省忠信, 是聞一貫之後, 抑未聞之前. 朱子曰, 不見得. 然, 未一貫前也, 要得忠信, 旣一貫後也, 要忠信, 此是徹頭徹尾底.
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로 일관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책을 계속 읽다 보면 나중에 나오겠지요. 증자삼성이 일관(一貫)을 듣기 전이냐 후이냐 라는 질문이 풋풋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지... ㅡ,.ㅡ 주자의 대답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나 증자를 모범으로 삼기는 하지만 학문이라는 것이 공자나 증자와는 별개의 일이다라고 답한 것처럼 느껴져서입니다. 공자나 증자도 결국 구도의 길(학문의 길)을 걸은 것이다. 뭐 그런 대답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필 이 부분 주석을 읽을 때 위당 정인보 선생의 '얼'에 관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얼 사상에 대해서 읽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 연구 라는 책의 초반에 나오는데, 읽다가 지겨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 속에서 위당 정인보 선생이 "내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러지만.." 이러면서 내용을 계속 이어간답니다. 안그래도 지겨워 죽겠는데 그 부분을 읽다가
이 양반이 누굴 약을 올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답니다. 사실이에요. ㅡ,.ㅡ 그런데, 정작 '얼'에 대해서 말씀하신 위당 선생의 그 지겨운 글을 다 읽고 나서는, 히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지겨운 글이었지만 지루함을 참고 끝까지 읽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사람이 살면서 철두철미하기 힘들다는 것이 상식이고 보면 얼에 관해 말씀하시는 내용은 너무나 지겨웠는데, 위 주석을 읽다 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얼에 관한 내용이 떠올랐는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언제 시간 나시면 조선사 연구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겠습니다. 저의 경우 조선사 연구를 읽다 뭔가 온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북공정이니 임나일본부니 해서 역사 논쟁이 치열한데 위당 정인보 선생의 글에서 그런 치열함과 동떨어진 듯 느껴지는 온화함에 어리둥절 하기도 했습니다.
○問, 曾子三省之事, 何故, 只就接物上做工夫. 南軒張氏曰, 若是他人合省之事, 更多在. 曾子自省察, 則只有此三者, 當省也. 不是下爲己篤實工夫, 不能如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는데 -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 증자니까 그럴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이면 그러지 못한다는 식의 그런 내용의 주석을 보게 되면, 책을 읽다가 느끼던 아! 그게 그런 뜻이었어? 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송두리째 잊혀지는 듯한 느낌도 받고 그럽니다. 최소한 증자 라는 인물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한 주석 아닐까요?
논어에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 라는 구가 있습니다. 논어 해설을 책이든 인터넷이든 설명한 내용을 읽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는데,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처럼 주석을 모아놓은 책을 보다 보니 그나마 무슨 말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더군요. 모르던 구절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기분좋기도 하지만 위와 같은 주석을 만나면 또 다시 미궁에 빠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말 나온 김에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 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자면, 금지를 뜻하는 여러 글자들이 있습니다. 無, 不, 弗, 勿, 毋 등인데, 무(無)라는 글자에는 어떤 여지(Room) 있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도덕경을 2장까지만 읽어봤는데,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다음에 나오는 것이 무명 천지지시(한자생략)지요? 그 때의 무(無)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 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뭔가가 결정되기 전까지 숱한 이름들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인(仁), 겸애(兼愛), 공(空) 등등... 하필 그런 개념어들 중에 도(道)라는 말이 채택되었다는, 언제부터 도(道)라는 말이 있었습니까. 즉 도덕경의 예를 보아서는 무(無)는 미정(未定)이라는 말이고 벗(友)의 학습이나 수신 수양 정도에 따라 상당한 유동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즉, 20살에 불여기한 친구였는데 헤어져 있다가 몇 년 후 만났더니 일취월장 하고 괄목상대하여 자신보다 모범적인 사람이 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자신이 20살이나 30살에 일어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가 毋友不如己者나 勿友不如己者 등으로 쓰여져 있지 않음으로 어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雲峯胡氏曰, 曾子早悟一貫之旨, 晩加三省之功, 愈可見其至誠不已之學. 盖其所省者, 無非推己及人, 因人返己之學, 卽其所謂忠恕者也. 或以爲一唯在三省後, 非矣.
수기치인이라는 말은 들어왔는데 추기급인이나 인인반기 라는 말은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어쨌거나 증자는 공자의 일관의 도를 깨닫고 만년에 삼성(三省)공부를 더하였다 라고 해석했는데, 오일삼성오신~의 문장이 증자가 몇 살 때 한 말을 기록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면 그런 출전은 또 애매하다고 생각되네요.
○新安陳氏曰, 吾道一貫章(이인 15장), 及孟子時雨化之章(맹자 진심 상 40장), 朱子訓釋, 非不明白. 謂曾子於聖人, 泛應曲當處, 已隨事精察, 而力行之, 但未知其體之一耳. 夫子知其眞積力久, 將有所得, 是以呼而告之. 曾子果能默契其旨, 卽應之速而無疑. 孟子謂, 君子之所以敎者五, 其一卽有如時雨化之, 如農人種植之功, 其力已盡, 惟待時雨之至, 卽浡然奮發, 而收成. 朱子以孔子之於顔曾當之, 參二章, 以觀三省章, 此正是隨察力行處. 其悟一貫之旨, 而一唯正是人力已盡, 而時雨化之之時, 如何反以悟一貫, 爲早年事, 加三省爲晩年事乎.
군자가 가르침을 펴는 방법이 다섯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가 시우화지(時雨化之) 라고 합니다. 농부가 파종 후 씨를 뿌리고 비를 기다려 곡식들이 자라면 수확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농부가 농사에 힘쓰듯 공부를 꾸준히 해야 된다는 뜻일 듯합니다.
이 단락에서도 삼성공부는 만년에 더해진 것이라는데, 후대의 유자(儒者)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증자도 자(子) 붙여 성인의 반열에 올렸는데, 주석들을 읽어 보면 증자는 일관의 도를 깨닫고 나머지 자잘한 것들마저 떨쳐버리려 삼성공부를 더했다고 하는데 후대의 유자들은 논어라는 책이 있으니 일관의 공부와 삼성의 공부를 함께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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