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논어

논어 읽기 22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58

참그놈 2022. 6. 28. 08:49

集註 : 傳謂受之於師, 習謂熟之於己. 曾子以此三者, 日省其身.

전(傳)은 스승에게서 받은 가르침이라는데, 이 말이 도통(道通)의 전승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증자는 공자의 제자라고 하는데, 주자 이전에 불교나 도교 등이 융성하기도 하고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이 제대로 전수되기 어려웠다는 내용을 대학장구 서문에서 봤습니다.

 

한편, 전습록이라는 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자 성리학만을 추종했지만 중국에서는 주자 성리학 외에 양명학도 흥했다고 합니다. 왕양명의 생각을 모은 책의 제목이 전습록(傳習錄)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양명학이 그닥 보편화 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曾子三省, 無非忠信學習之事. 然人之一身大倫之目, 自爲人謀, 交朋友之外, 得無猶有在所省乎. 朱子曰, 曾子也, 不是截然不省別底. 只是見得此三事上, 實有纖毫未到處, 其他固不可不自省, 特此三事, 較急耳.

질문이 재밌네요(?). 증자의 세 가지 반성 외에 다른 것은 반성할 필요가 없느냐? 라고 묻는데, 증자라고 꼭 세 가지만 반성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세 가지를 급하다고 생각했다네요. 주자가 증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위 주석들의 원문이 되는 아래 원문은 학이편 첫문장과 역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集註 : 有則改之, 無則加勉.

朱子曰, 曾子三省, 看來是當下, 便省得纔, 有不是處, 便改. 不是事過後, 方始去改省了, 却休也. 只是合下省得, 便與他改.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일텐데, 옳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곧바로 고쳐야지 나중에 고치는 것은 제대로 반성한 것이 아니라네요.

 

○新安陳氏曰, 易蹇卦大象曰, 山上有水蹇, 君子以反身脩德. 程傳曰, 君子遇艱蹇, 必自省於身有失而致之乎. 有所未善, 則改之, 無歉於心, 則加勉. 集註二句之所本, 盖在此, 有則改之, 易知也, 無則加勉, 非深知曾子之心, 不及此. 使自省而無失, 只如此而已, 則三失將又生矣. 豈曰省勉勉不已之誠心乎. 無則加勉, 四字可補, 本文意之所未盡.

주역 건(蹇)괘를 예를 들어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주역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쓰는 것이 중요하고, 無則加勉 네 글자가 본문의 미진한 뜻을 보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보다 앞서서 非深知曾子之心, 不及此 라는 구가 있는데, 증자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면 그에 이를 수 없다는 내용이고 보면 막막한 느낌도 생기지 않나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는데, 하필 증자(曾子)라고 해서 자(子)자를 붙여서 존경하는 분이지요? 그런 분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ㅡ,.ㅡ

 

 

공자의 생애도 모르고 유학이 말하려는 대강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옥편 자전만 들고 논어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자왈(子曰)을 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라고 해석하는지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논어 곳곳에 어느 때는 중니(仲尼)라고 말하기도 하고 부자(夫子)라고 하기도 하고 뭐 그래가지고 헷갈리더라고요. 유자(有子)가 유하혜인지도 몰랐고 도척의 형이었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주변에 사서를 자주 읽는 분이 계셨던 것이 아니라서 진짜로 아무 것도 모른 채 혼자서 논어를 해석하다가,

 

자왈(子曰)을 사람의 품성이란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예기(禮記)라는 책을 읽어보려 한 적이 있는데, 처음 곡례편에 곡례왈(曲禮曰)로 시작합니다. 곡례(曲禮)가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왈(曰)를 누군가가 말했다로 해석하지 않고 ...라는 것은 말을 하자면... 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했던 것이지요. 요즘처럼 인터넷이 많고 논어 등의 해설 강의 영상이 많을 때여서 그런 영상이라도 한 번 보고 그랬으면 그렇게 해석을 안했을텐데, 제가 논어를 읽을 무렵에는 그런 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자(子)를 공자가 아니라 사람의 품성이라고 이해를 한 것이지요. 그 이후로 유자(有子)도 증자(曾子)도 그냥 저 혼자 생각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유자(有子)는 사람의 품성을 갖춘 이는 효제의 심성을 가지고 있다. 증자(曾子)는 사람의 품성이 더욱 돈후해진다고 해야 하나요? 뭐 그렇게 생각을 했었지요. 물론 증자(曾子)의 이름에 쓰인 증(曾)자는 증가한다는 뜻의 글자가 아니기는 합니다. 공자의 제자가 3000명이나 되는지도 몰랐고 공문십철이 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하필 제가 구입한 논어 해설본은 문고판이라서 그런 배경 지식이 부족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ㅡ,.ㅡ

 

세월이 흐르면서 유하혜가 유자였다는 것도 알게 되고 증자는 공자의 제자였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순 엉터리로 이해를 했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는 했는데... 뜬금없이 옛날 생각이 나네요. ㅋ

 

集註 : 其自治誠切如此, 可謂得爲學之本矣,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 爲傳習之本也.

증자가 반성한 순서가 배우는 것의 근본이랍니다. 그것이 곧 충신(忠信)이기도 하고 전습(傳習)의 근본이라네요. 앞에서 전습과 도통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있는데, 그렇다면 도통 전승의 근본이라는 말일까요?

 

朱子曰, 謀不忠, 則欺於人. 言不信, 則欺於友, 傳不習, 則欺於師.

각각의 경우에 속일 기(欺)자가 들어있네요. 속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속인 결과가 된다면... 그런 경우는 또 어떤 경우일까요. 예를 들면, 요즘 영끌 빚투 등이 문제라고 하는데, 한때 갭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갭투자에 성공(?)해서 집을 마련하거나 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금리 인상기가 다가오자 갑자기 경제위기를 말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갭투자에 대한 책을 쓰고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권한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속이려고 한 것이었을까요? 속일 기(欺)자가 들어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네요.

 

○三省固非聖人之事. 然是曾子晩年進德工夫. 盖微有這些子渣滓去未盡耳. 在學者則當隨事省察, 非但此三者而已.

성인의 단계에 이르면 세 가지 반성은 안하나 봅니다. 위정 편에 공자가 나이에 따라 공부한 단계(?)라고 해야 할지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만사가 다 이치와 도리에 맞았다고 나오더군요. 三省이 증자의 만년공부라고 했는데 유학에서 추구하는 공부도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돈오 점수 뭐 그런 것이 있는 것인지... 양명학이 주자학을 비판하는 맹점이라고 해야 할지... 공부해서 알고 난 이후 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증자가 만년에까지 공부를 계속하고 있으니 언제 실천하느냐? 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주장하는 것이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는데 양명학은 고사하고 전습록도 읽어보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주자 성리학이 뭔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성인은 출현하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고...

 

○爲人謀時, 須竭盡自己之心, 這箇便是忠. 問如此, 則忠是箇待人底道理. , 且如自家事親有不盡處, 亦是不忠.

질문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질문하는데 집에서 자신의 부모나 형제에게 소흘한 것도 역시 불충이라고 답합니다. 유자가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한자 생략) 이라고 했는데, 전습(傳習)은 효제충신을 말한 것이려나요?

 

○爲他人謀一件事, 須盡自家伎倆與他思量便盡己之心, 不得鹵莽滅裂, 姑伎倆他謀, 如烏喙, 是殺人之藥, 須向他道是殺人, 不得只說道有毒. 如火須向他道會焚灼人, 不得說道只是熱.

이 주석을 보고는 조금 놀랐습니다. 오훼(烏喙)는 새 부리인데 매우 강한 독이라고 합니다. 비상이나 부자가 보통 옛날에 쓰이던 독약인데 그 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런 독약으로 해설이 되어있던데 오훼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약이라는 것을 말해주어야지 단지 독이 있다고만 말해주면 안된다거나 불이 사람을 태워죽일 수 있는데 뜨겁다고만 말해 줘도 안된다고 합니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말일텐데, 보통의 해설서에서는 보지 못한 예라서 그런지, 그리고 빨간 밑줄 그은 구에서 보듯 소흘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해서도 안되고 진지해야 한답니다. 잘못된 정보전달은 사람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말이라면, 대학(大學)의 차서에 수신으로부터 평천하 까지를 말하던데... 그런 범위까지 생각을 해 보려니 너무 큰 범위라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어쨌거나 의미심장한 주석으로 여겨지네요.

 

○爲人謀而不忠, 是主一事說, 朋友交而不信, 是汎說人自爲謀, 必盡其心, 到得爲他人謀. 便不仔細, 致悞他事, 便是不忠. 若爲人謀事, 一似爲己爲盡心.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떠오르는 구절이네요.

 

○問, 爲人謀, 交朋友, 是應事接物之時, 若未爲人謀, 未交朋友之時, 所謂忠信, 便如何做工夫. , 程子謂, 舜雞鳴而起, 孜孜爲善. 若未接物時, 如何爲善. 只是主於敬, 此亦只是存養此心在這裏, 照管勿差失, 便是戒謹乎, 其所不睹, 恐懼乎, 其所不聞, 不動而敬, 不言而信處.

충신(忠信)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묻는데 순임금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닭우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 계속 선을 행했다면서... 주자가 살던 시대로 부터 순임금의 시대는 최소 2000년 이전일 터인데, 서경 순전에 그렇게 적혀 있나 봅니다. 순임금을 인용한 것은 여러 수 천년 전부터 주자가 살던 당시까지 그런 성인과 현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뜻을 암시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중용에서 보던 구도 보이네요. 그런데 신(愼)자가 아니라 근(謹)자인데, 하필 계신호 기소부도 공구호 기소불문이라는 구는 쓸 줄은 몰라도 음은 외우고 있었는지라 글자가 한 자 다른 것이 보이네요.

 

○勉齋黃氏曰, 爲人謀, 則必欲實盡其心. 交朋友, 則必欲實踐其言. 講學於師, 則必欲實用其力. 盖曾子天資, 醇厚志學懇篤, 其於大學, 旣推明誠意之旨, 而傳之子思. 又斷以誠身之義, 至其自省, 又皆一本乎誠. 盖不極乎誠, 則凡所作爲, 無非苟簡滅裂. 是豈足以盡人事之當然, 合天理之本然也哉.

역시 증자삼성(曾子三省)은 도통의 전승과 관계가 있나 봅니다. 증자의 천품이 순후하고 공부에 뜻이 있고 그렇다면서 대학이 이미 성의(誠意)의 뜻을 밝혀 자사에게 전했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근본은 바로 성(誠)이다 라고 하는데, 성(誠)은 천리(天理)와 합치하는 것이랍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되게 어려워 보이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