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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Viking)과 단군조선

참그놈 2022. 8. 9. 00:27

저는 바이킹에 대해서 거의 모르지만 어린 시절 슬기돌이 비키라는 만화 프로그래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국내 방송사에서 연재한 만화 프로그램인데 어린 시절 제가 봤던 슬기돌이 비키는 아래 링크한 바이킹이라는 드라마처럼 무력이나 폭력, 전투 전쟁이 난무하는 내용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봤던 만화 프로그램 덕분에 바이킹(Viking)이라는 이름을 사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봤던 TV 만화 프로그램과 달리 유튜브에 업르도 된 바이킹(Viking)이라는 드라마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보이기는 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mMMXejam_k 

 

목에 바이킹(Viking)과 단군조선이라 쓴 것은 어쩌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생겨 여러 책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윤내형 교수의 고조선 연구나 리지린 박사의 고조선 연구 외에도 고대사에 관한 여러 책들을 주제 넘게 - 저는 야동이나 좋아하고 무협만화나 즐겨보는 저질이거든요 - 읽어 보게 되었지요. 제가 읽었던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나 리지린 박사의 고조선 연구가 공통으로 추정하는 것이 고조선은 고도의 노예제 사회였다 라는 것이었는데,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단군조선이 성립했던 시기는 기원진 2500여년 전인데 그 때는 지금처럼 인구밀도가 높지도 않았고 한민족 특유의 생활상 때문에 고도의 노예제 사회가 성립할 만한 근거가 도무지 없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거대 건축물이 있습니까? 물론 동북 아시아 지역에 이집트 피라미드 만큼은 아니지면 거대 무덤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고인돌을 생각해도 적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지만 피라미드 만한 고인들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뭔가 상징적인 것을 지을 필요가 있었을 수는 있는데,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그렇게 거대한 건축물은 또 없기도 합니다. 피라미드가 사막에 지어진 것 아시지요? 물론, 고대 이집트의 기후는 지금처럼 사막은 아니었다고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많은 돌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미스테리라고 하더군요.

 

고려시대부터 본관 제도가 본격화 되었다고 합니다. 본관제도를 감안하면 씨족이나 부족사회의 특성이 강하다는 말인데, 그런 정치형태가 대규모 노예가 필요한 사회였을까요? 한 집 건너면 사촌이고 팔촌일 것이잖아요. 게다가 환단고기에는 책화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본관제도가 책화제도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면 도무지 고도의 노예제 사회를 상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더군요.

 

바이킹 이라는 드라마가 다루는 시기는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 기원후 10세기 입니다. AD 10세기 무렵인데 바이킹 사회에 대규모 노예가 있습니까? 물론 로마 사회나 이집트 사회에는 대규모 노예가 있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지요. 이스라엘이 에굽의 노예가 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예수께서는 훨씬 뒤에 태어나시잖아요. 그러니 고대에 노예제가 전혀 없었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고대 단군조선 사회가 고도의 노예제 사회였다면 로마의 역사처럼 단군조선의 역사도 이렇게까지 흐려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시아에서도 대규모 노예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중국에서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 고대 문명이 지금껏 그 역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런 계급화된 사회가 전제가 되었으니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단군조선이 어떤 형태로 정치나 행정을 추진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필 로마가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제국을 이루던 시기와 중국이 중앙집권적인 통치형태를 추구하는 시기는 겹치기도 합니다. 두 사회가 모두 중앙집권적이었던 통치형태인데, 하필 로마나 한 제국 이전의 역사는 또 자세히 전하지 않기도 합니다.

 

로마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로마의 역사가 공화정, 황제정 등을 번갈아 교차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핵심은 로마였다는 것... 그래서 로마는 로마 자체로는 공화정을 하던 황제정을 했던 로마 제국 전체로 봤을 때는 중앙집권적이었다는 말입니다.

 

바이킹이라는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 후 10세기입니다. 기원전 10세기 아닙니다. 로마나 한 제국처럼 인구가 밀집하는 지역이 있었던 반면,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씨족사회나 부족사회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군조선이 고도의 노예제 사회였다는 추정은 고대의 모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중세나 근세의 모습을 고대에 투영한 망발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Far and Away 라는 영화가 있는데 불과 200여년 전 까지만 해도 깃발 꽂으면 자기 땅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전투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여서 지금처럼 인구가 80억에 가까운 시기도 아니었지요.

 

바이킹이라는 드라마를 마구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대적 상황에 대해 고증도 했겠지요. 프랑크 왕국의 방어시스템은 위 영상을 보면서도 놀라웠는데, 그 보다 전쟁이 잦았던 로마라면 더 살벌했을 것이지만, 변방에서는 여전히 부족단위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

 

신단민사 라는 책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와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인 고대인의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토굴에 살고 남의 굴을 뺏고... 어쩌면 한민족 고대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환단고기 읽어 보시면 아주 화려하거든요. 중국의 고사변학파 사학자 고힐강인가? 역사가 후대로 갈 수록 보다 아름답게 치장된다고 하더라고요. 환단고기도 어쩌면 치장된 우리 선조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중세나 근세의 사상이나 철학으로 우리 고대의 모습을 치장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단군조선 사회가 고도의 노예제 사회였다면 이집트 피라미드 만큼은 아니라도 그 만한 건축물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거대 고인돌이 남아 있기도 하고 장군총이나 뭐 이집트 피라미드 만큼은 아니지만 거대 건축물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중국처럼 무식하게 크게 지은 건축물 또한 없기도 하고 중국과 맞상대 하면서 우리 고대의 건축 규모 역시 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우 동상 보셨지요?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현재는 철거되고 없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인구가 밀집하면 밀집할수록 거대 건축물이 더 많이 지어지지요. 건물이든 동상이든...  그리고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슬기돌이 비키 덕분에 바이킹(Viking) 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이킹 이라는 드라마 전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위 요약본을 보고 바이킹이 활동한 시기가 기원 후 10세기라는 것 때문에 우리 역사와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인류 발전의 공통점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우리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