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천자문

한문학습의 커리큘럼?

참그놈 2023. 3. 2. 10:15

옛날에는 서당에 가서 천자문을 제일 먼저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뭘 배웠는지 혹시 아시나요? 그러니까 한문 학습의 커리큘럼을 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저 자신이 한문학습의 커리큘럼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것 때문에 겪은 뻘짓 때문입니다. ㅋ

 

살면서 공부는 고사하고 독서조차 잘 하지 않던 놈이 어느날 어떤 계기로 책읽기에 관심이 생깁니다. 그리고서 느낀 것 하나가 당시 우리가 보는 권장도서에 도무지 우리 선조들이 남긴 책이나 글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논어맹자대학중용 시경서경역경 등등 온통 중국 고전이거나 아니면 괴테, 단테, 데카메론, 명상록, 순수이상비판, 절대이성비판 등등 서양 고전이 가득한...  어느 권장도서 목록을 봐도 우리 선조들이 남긴 전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지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그렇게나 지대하지 않아서인지 그 쪽으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는데, 그리하여 천자문 해설서를 처음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천자문이 글자 1000개 모아놓은 책으로 생각했다가 거의 까무러쳤지요. 그럼에도 한문학습의 커리큘럼? 뭐 그런 것을 몰랐다는 까닭으로 천자문을 읽은 다음 제가 읽은 책이 춘추좌씨전입니다. ㅋ

 

명문당 춘추좌씨전 3권 읽는데 1년 걸렸습니다. 한문을 알았게요. 몰랐습니다. 그저 두꺼운 책 하나 읽고 나면 눈에 한문이 좀 보이려나 싶어서 춘추좌씨전 책을 들고 해석과 대조해가며 끼워맞춰가면서 읽는데도 정확하게는 10개월 정도 걸리더군요. 상권은 6개월 중권은 2개월, 하권은 1개월... 정도...?

 

춘추좌씨전을 읽고 나서 머리에 남는 것이 있었느냐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더군요. 다만 기억나는 것은 온 사방에 오랑캐(?)였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춘추좌씨전 읽어 보시면 오랑캐가 참 많이 나옵니다. 읽으면서도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땅이 중국인들이 사는 땅이야 오랑캐(?)들이 사는 땅이야?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저희 집 근처에 공립도서관이 있었거든요. 춘추좌씨전 하나 읽고 나면 뭔가 보이려나 해서 봤는데 제가 원했던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고, 어쨌거나 당시에 저는 한문공부를 나름 해보려고 했던 터라 도서관에 가서 한문에 관한 책을 보다가 어느 노인이 쓰셨다는 한문학습 관련 책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천자문을 처음 공부하고

사자소학, 계몽편, 동몽선습  중 하나를 떼고

명심보감 또는 소학을 떼고

그 다음에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로 진행된다네요.

사서를 다 읽고 나면 통감절요 같은 역사서도 읽고

그 다음에 시경 서경 역경 등을 읽는답니다.

예기나 춘추, 춘추좌씨전 등은 커리큘럼의 제일 마지막 과정이었던 것이지요. ㅋㅋㅋ

 

한 마디로 한 1년여간 뻘짓만 잔뜩한...  ㅠㅠ

 

그래서 늦게나마 그 할아버지가 쓰신 대로 사자소학도 읽어보고 계명편도 읽어보고 - 하나만 읽으라는 법 없잖아요. - 동몽선습도 읽어보고 그랬는데, 제 신상에 문제가 많아서 - 진짜로 많이 아팠습니다. 오랫동안 - 그래서 도무지 읽기도 힘들고 그랬는데도 그럼에도 세월이 지나면서 논어도 맹자도 대학도 중용도 읽어보려 끙끙거리긴 했는데, 최근에 문득 생각한 것이 맨날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포스트에 천자문을 우습게 봤다가 천자문에서 자빠졌다고 쓴 것 있는데,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잖습니까. 그래서 요즘 천자문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ㅋ

 

한문이나 한문학을 모르지만 천자문이 저는 대단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천자문 초반의 내용이 성경 창세기와 겹치면서 그 내용이 설명하는 깊이와 넓이에 그냥 꼬꾸라졌는데, 그러고도 제게는 천자문이 계속 쥐어져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세월이 있었는데, 나중에 봤더니 언재호야(焉哉乎也) 네 글자를 활용하면 간단한 문장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천자문을 역순으로 배열해도 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랬습니다. 관련 내용들은 이미 다른 곳에 포스트 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저처럼 뻘짓을 시도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뻘짓 하지 마시고 커리큘럼을 잘 따라서 읽으시기를... ㅋ

혹시 사서 중 대학을 읽어보시려는 분은 반드시 주석이 다 있는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대학 만큼은 주석이 있는 책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주자 만의 주석이든 전습록과 같이 양명학의 주창자인 왕양명의 주석이든, 사서 중 대학 만큼은 주석이 있는 책을 읽어야 유학(儒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략이라도 감이 잡힌다고 생각합니다.

 

천자문 한 권을 주석하고 설명하는데도 왜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글을 도무지 인용되는 것이 없나... 그러면서 불쾌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뭐 그랬던 시절이 있는데 - 천자문 해설서 어느 책에도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글을 인용해서 설명하는 경우는 잘 보기 어렵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라는데...  - 고려에서 안향이 유학을 가지고 온 이후에 조선왕조 내내 유학, 특히 주자학을 숭상했으니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관한 내용을 보다 보면 고구려나 신라에서 예기를 포함한 책을 읽었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럼 그 때는 그 책을 어떤 관점에서 읽었을까요? 그러니 정확하게는 안향이 유학을 가져온 것도 아닐 수 있다는 말이겠지만... 자세히 알지 못하는 문제이니 생략...

 

다른 포스트에 성호사설 첫번째 글인 천지문의 기지아동(한자생략)에 관한 글을 썼는데, 내용은 기자동래설이 얼척없다는 것이었지만, 성호선생이 기지아동을 첫번째 글에 쓰면서 기자동래설 지지하는 듯하나 은근히 단군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군을 기자 아래로 숨겼다고 할 수 있는데, 성호 이익이 살던 시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할 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천자문이 중국 역사를 담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답니다. 가령 천자문 13번째 구가

 

조민벌죄 주발은탕(弔民伐罪 周發殷湯)

 

이거든요. 그 해설에 주나라 무왕의 이름이 發이었다면서 은나라의 마지막 왕 紂가 정치를 잘못해서 백성이 괴로웠다면서 그렇게 해설을 합니다. 중국 역사에 끼워맞춘 것인데, 중국 역사 아니라도 문자 그대로 해석 가능합니다. 정치체제가 완비된 상황에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대체로 정치세력이잖아요. 그러니 백성을 위문하고 죄를 벌 주는 것은 주무왕의 혁명 아니라도 역사에 비일비재한 것으로 압니다. 周發殷湯 이라는 구를 보고 주 무왕 發을 생각할 필요없이 곳곳에서(周) 일어난다(發)라고 이해하셔도 됩니다. 殷은 성하다는 뜻이고 湯은 끓는다는 뜻인데, 백성을 괴롭히지 않으면 성하여 곳곳에서 끓어 더욱 넉넉해 질 것이지만, 백성을 괴로히면 원망과 원한, 폭동이 곳곳에서 성하고 끓겠지요. 반드시 또는 무조건 중국 역사에 끼워맞춰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꼭 천자문 13번째 구나 기타 다른 구라도 중국 역사에서 연원을 찾으면 이해가 쉬운 구도 있지만, 지과필개 득능막망이나 망담피단 미시기장이나 기타 등등의 구절들이 반드시 중국사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서고금에 다 그 만한 격언이나 잠언들이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옛날에 뻘짓한 일이 생각나서 몇자 끄적였습니다. 지금도 뻘짓 중이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