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가 있듯, 일본에도 일본서기라는 대표 역사서가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아시아 왕조시대에서의 역사는 아무나 함부로 소지하거나 읽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왕조의 정통성이나 권위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공식문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는 사관이나 귀족 등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어느 때부터 서구와의 교역이 크게 통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경우 근대화를 가장 먼저 선취한 일본이 크게 손상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겨난 여러 이론이나 학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한사군(낙랑군) 한반도설 (북한 평양설)
주갑제
임나일본부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건국연도인 BC57년부터 고구려와 백제 등이 패하는 660년대를 경유하여 통일신라까지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려가 918년에 건국되고 그 전에 후삼국시대가 있었으므로 대략 고려 건국까지 잡으면 1000여년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최초 기록으로부터 400년간 정도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미스터 가야사 라고 불리는 어느 학자가 "가야사700년" 이라는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책을 읽어보면 "가야는 3세기에 건국되었다"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가야가 6세기 말에 신라에 병합되는데 3세기에 건국되었다면 4백년 정도가 사라지고 없는 겁니다. 제목에는 700년을 적고 내용에는 400년만 언급한 것이지요. - 이덕일 박사TV 참고
2019년에 가야사 특별전 전시회가 있었는데, 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전시회에서 일부 역사 설명을 일본서기로 설명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 유튜브에서 가야사 전시회로 검색하시면 내용 보실 수 있습니다 - 그 외에도 현재 남부지방의 옛 가야유적이나 고분들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하려 추진하고 있다는데 그 근거 역시 일본서기로 설명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사군(낙랑군) 한반도설 (북한 평양설)
한사군은 낙랑, 임둔, 현도, 대방 등 중국 한(漢)나라가 설치한 행정단위라는 뜻입니다. 군(郡)은 현(縣)보다 높은 행정단위입니다. 기존의 교과서 등을 보면 한사군이 모두 백두산을 기준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중 낙랑군은 현재의 북한 평양지역이라는 이론입니다. 한사군이 설치된 것은 조한전쟁(고조선 VS 한나라) 이후이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건국시기인 BC 37년보다 이전입니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근거하여 제시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군국도나 서진군국도 등 고대 중국에서 제작된 지도에도 한사군은 현재의 북경지역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는 중국의 위촉오 삼국시대를 거쳐 260년대에 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13년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을 쫒아낼 때까지 존손하고 있었다는 회괴한 주장입니다. 2차 대전(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동남아시아 여러 섬에서 패잔병 일본군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패잔병이 남아있었으니 그 지역이 일본의 점령지였을까요? 그런 말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본국은 망했는데 지방행정단위는 50년이 넘도록 유지가 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갑제
주갑제라는 것은, 나라마다 역사서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사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시기의 다른 나라 역사서와 교차검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은 120년이나 240년 등으로 60갑자 간지 계산방식으로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걸 일본은 주갑제라고 해서 년대를 일본서기에 맞춰서 올렸다 내렸다 하며 맞추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군대에 가면 옷이 크거나 작은 것이 보급되기도 했는데, 그 때 하던 농담이 옷이 안맞으면 "몸을 옷에 맞추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기가 차는 방식이지요. ㅡ,.ㅡ
아시아 역사를 모두 그렇게 할 수있겠습니까. 특히 중국 역사는 25사라고 해서 방대한 문헌을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 역사에는 가져다 대지 못하고 우리나라 역사는 만만하게 보였는지 수십 만권을 불태우기도 하고 일본으로 훔쳐가기도 했다는 내용이 "나다니엘 페퍼(Nathaniel Peffer, 1890~1964)"라는 외국인 기자에 의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목격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4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를 장악했다는 이론입니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을 보면 문무왕 재위당시인 670년, 즉, 백제 멸망 이후라는 것입니다. 신라본기 보시면 "670년에 왜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7세기에 이르러서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했으면서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해괴망측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덕일 역사TV를 보시면 "임나" 라는 말과 "일본" 이라는 말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나타난다고 합니다.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 용어들을 합쳐서 "임나일본부" 라는 말을 창작해 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창조했다고 할지, 어쨌거나 일본에서 날조라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일본이 "임나일본부" 라는 말을 만든 것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일본보, 만주일본부, 미국일본부 등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USA)를 한자로 미국(美國)으로 표시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USA)를 한자로 미국(米國)으로 표시합니다. 아시아 역사에서 쌀이 얼마나 중요했습니까. 그러므로 쌀 미(米)자가 나오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 국(國)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일본"이라는 명칭이 일본서기에 있다니까 쌀 미(米)자랑 나라 국(國)자를 합치면 "미국일본부"가 창출될 수 있는 겁니다. 중국일본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서에 나라 국(國)자는 안빠질 것이고 가운데 중(中)자 역시 여럿 쓰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중국일본부"도 거뜬히 만들어 낼 수 있지요. 개소리를 학설로 포장하는 능력인 것인지...
위에 언급한 것 이외에도 더 많은 이론(?)들이 있을 수 있으나 평펌한 서민이 책이나 역사 관련 영상들을 보며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문 해석"에 대한 것도 떠오르기는 하네요. 기경량이라고 하던가? 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 중 한 명이지요.광개토대왕 비문의 모든 기록은 허구지만 왜가 활동했다는 신묘년 기록만 정확한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희안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를 들면, 감자탕 먹으로 스테이크 전문점에 갈 사람이지요. 여러분들은 감자탕 먹으로 감자탕 전문점에 가시지요? 감자탕 전문점에서 감자탕을 잘 하지 않겠습니까. 광개토대왕비를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하고 알리려 만들어 세웠지 일본 업적을 기록하려고 세웠을까요.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뭐 어쨌든 기경량이라는 학자는 감자탕 먹으로 꼭 스테이크 전문점에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감자탕 먹으로 감자탕 전문점에 가는 사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자탕 먹으로 중국집에 가려나? 횟집? 어디 가서 먹으려나요. 짜장면 먹으러는 또 감자탕 전문점이나 스테이크 전문점, 또는 쌀국수 전문점에 갈지도 모르긴 합니다. 갈비탕 먹으로 회전초밥집이나 중국집 들르려나... 감자탕을 먹으려면 감자탕 전문점에 가야한다고 알려주고는 싶네요. 짜장면 짬봉 난자완스 등은 중국집에서 베트남 쌀국수는 베트남 쌀국수 집에... 당연히 광개토대왕비는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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