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역사TV에서 우리의 역사와 중국사가 갈라지는 분기점을 설명하는 영상이 있네요. 역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우리 역사가 확실히 갈라지는 시기는 고당전쟁 이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나당연합군이라고 해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서 고구려와 백제를 군사적으로 이긴 사실은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나당연합이 우리 역사를 심하게 비틀어 놓은 시작이었을 수 있는 겁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이기고 나서 당나라의 관제를 따르거든요. 그러니 역사 기록이나 갖가지 제도나 풍속 등도 모두 당나라에 맞춰서 변혁하지 않았겠습니까. 하필 중국 삼국시대 진(晉)나라가 삼한 78개국을 기록한 사실도 있고... 그리하여 보다 큰 땅을 가진 것이 큰 임금이던 고대를 생각하면 고구려의 패배는 역사마저도 뒤틀 수 있는 바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 영상 보시면 주(周)나라가 성립하면서 사이(四夷)의 개념을 만들어 냈다면서 그런 설명을 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한족의 역사가 갈라지는 시점을 중국의 주나라에서부터 기원한다고 하는 것인데,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이(四夷)라는 개념이 중국 주나라부터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혹시나 춘추좌씨전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온 세상이 주나라 입장에서 보면 오랑캐였습니다. 사방이 오랑캐로 그득한 가운데 주나라가 존속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공자 역시 "주나라가 은나라를 이었으니 나(공자)는 주나라를 따르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왕조는 은에서 주로 바뀌었지만 당시 중국 전체는 여전히 은나라의 제도와 풍속이 존속했다는 말이고, 공자 역시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계승했으므로 주(周)나라를 따르겠다고 발언한 것입니다. 주나라가 단순히 역성혁명을 한 것이라면 주나라는 공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였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 공자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그 중간 쯤에 살었고, 주나라가 건국된지 5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살았던 사람이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lvf-FONEV48
이덕일 박사의 주장이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범위를 너무 멀리 잡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네요. 일본이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를 지우려고 카메라를 이리 틀고 저리 트는 장면들이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중국을, 한족을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어떤 면에서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이덕일 역사TV를 자주 보지만 저는 이덕일 박사나 한가람 역사문화연구회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위 영상만 해도 얼척없는 말씀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게 고대에 동이족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원 대륙을 통치하던 대제국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치 방법은 고대 진시황부터 시작된 중앙집권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김정민 박사가 고대 우리 선조들은 연방공동체였다는 설명을 합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연방공동체와 중앙집권이라는 정치나 통치 방식의 충돌이 주나라로부터 이어지는 갈등의 시발이었을 것으로, 뭣도 모르지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금속 농기구를 쓰게 되면서 생산력이 더욱 발달하고 보니 갑자기 환인천제로부터 이어온 재세이화 홍익인간이라는 가르침을 먼저 망각한 것은 단군조선을 살던 우리 선조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금속 무기와 농기구를 써 보니 생산력이 더욱 늘어 갑자기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는 하늘이, 하느님이 가르치신 것은 잊고 마구 돈벌이만 해 댄 것은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농경을 위주로 사는 당시의 고대 중국인들에게 갑질을 했을 수도 있고... 조선시대에도 있었잖습니까. 소작 준 농민에게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뜯어간...
우리 역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한 노력을 폄하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뭣도 모르는 서민이 봤을 때는 너무 멀리 간 듯 생각되기도 합니다. 한족(漢族)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귀족은 농땡이 치면서 맨날 놀고 먹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범을 보이라고 있는 것인데, 허구헌날 개차반 짓이나 하던 중에 귀족이 아닌 평민인 유방(劉邦)이 계천입극(繼天立極)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귀족이랍시고 얼마나 개차반짓을 했길래 한고조 유방이 중국을 사는 14억 인민들의 영원한 꿈이겠습니까.
예전에 예기 어느 편을 읽다가 옛날 관리들은 몸에 옥을 차고 다녔다는 부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옥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고 하더군요. 옥이 부딪히는 소리는 참 듣기에 좋습니다. 만인이 보아도 그 행동을 알 수 있도록 한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공직자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행동하나요? 50억 클럽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집이 1000억 클럽이라면서 SNS에서 공개하고 그러다가 들것에 실려가는 뉴스는 봤습니다. 예기 곡례편 첫부분이 무불경 엄약사 안정사 안민재(한자생략) 뭐 그러면서 매우 엄숙하게 시작하는데, 정작은 그런 다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몸의 양쪽에 옥을 차고 다니며 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사서오경 중 예기라는 책이 강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중국의 역사를 이족(夷族)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니...
이덕일 역사TV에 유익한 내용이 많지만 하필 이번에 본 내용은 몹시 황당한 내용으로 이해가 됩니다. 몇년 전부터 사마천 사기를 삼가주석과 함께 번역하고 했던 일들이 이족의 관점으로 중국사를 보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저를 포함해서 고려의 역사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할텐데...?
유튜브에서 역사 관련 영상들 보면 대부분이 고대역사랍니다. 아니면 조선왕조 역사든지... 고려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고구려 발해(대진고려) 왕건 고려... 뭐 그렇게 계보가 이어지잖습니까. 발해라는 국명은 중국이 대조영이 건국한 고려를 폄하하기 위해 붙인 것이고 실제 국명은 대진(大震) 또는 스스로 고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럼 그 후대를 이은 왕건 고려가 2020년대를 사는 작금의 우리에게서 보다 가깝울텐데, 도통 고려사 관련 영상을 보기가 힘들답니다. 중국을 동이족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이덕일 박사의 주장보다 도무지 보기 힘든 왕건이 개국한 고려사가 더 궁금하네요.
'글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식민사학 - 봉건제 결여설? (송시내 강사) (0) | 2023.03.31 |
---|---|
갈석산은 어디인가? (이덕일 역사TV) (0) | 2023.03.30 |
경기도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가 가진 의미 (0) | 2023.03.26 |
고대사에 대한 이해 - 김정민 박사 (0) | 2023.03.14 |
부도지 강의 영상 (0) | 2023.03.13 |